빛의 소진에도 망막에 머무르는 잔상, 파괴의 잔해위에 재건된 도시], 죽지 말라는 목소리에 눈꺼풀을뜨는 아기, 그 이야기 속에서 자라온 아이, 타인이 공여한 차가운 피에 깨어나는 여인, 헐거워진 배를 다시채운 아이, 모두 이듬의 생을 살아간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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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본 것이 마치 여전히 있는 듯, 어슴푸레한 허공에하염없이 손을 뻗어본다. 기억 잔여물의 일부는 따라서착오적 허구이지만, 허구는 생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생성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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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떤 체험인가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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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이다.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급하게 챙긴 짐에는 무언가 빠져 있기 마련이고, 급하게 죽어 버리면 제대로 죽지도 못하니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어제 새벽 나는 급하게 죽어 버리는바람에 이승을 떠돌게 되었다. 지 - P237

그럼 저는 유령인가요? 내가 물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비둘기가 대답했다. 일반적으로는 사망과 동시에 이승을 벗어나지만, 급사한 경우에 한해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제공된다고 비둘기는 설명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이승을 떠나길거부하는 유령들 때문에 만들어진 규칙이라고 했다. - P238

빠르구나, 빨라. 서울에서 내 죽음이 잊히는 속도는 한밤중의 배달 오토바이만큼이나 빠르다. 하기야 서울은 사람이 아쉽지 않은 도시, 사람 하나쯤은 티 나지 않는 도시이니까. 같은 이유로 나는 서울을 좋아하기도 했다. - P240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나는 유령인 채로 이승을떠돌게 되었다. 언젠가 담배로 인해 죽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이런 식일 줄이야. 사람 일은 역시 알 수가 없고 그것은 죽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주어진 셈이었다. 공연으로 치면 커튼콜, 야구로치면 연장전, 게임으로 치면 라스트팡이라고나 할까. - P241

청소기는 소속사에서 15킬로그램을 빼야 데뷔시켜준다고 해서 죽어라고 살을 빼다가 죽었다. 죽은 청소기는 회사로 찾아가 노래 부르는 연습생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고, 춤추는 연습생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 P250

걷는 동안에도 이랑은 조금씩 더 환하고 가벼워졌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나중에 이랑은 내 손을 잡고서도둥둥 떠다니듯 걸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지자 우리는 그들을 피해 뛰어다녔다. 아무리뛰어도 숨이 차지 않았고, 달리는 와중에 나는 스쳐 지나가는 거리를 눈에 담았다. 안녕, 지긋지긋했던 서울.
안녕, 지저분한 간판들. 안녕, 정류장 벤치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 모두 안녕, 안녕, 안녕 - P257

그러자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수많은 얼굴을, 주말 아침의 영화를,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던 야구공을 다시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들을 마지막으로떠올려 보기 위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 P259

시리 허스트베트의 불타는 세계 (뮤진트리, 2016)에등장하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공책에 적어둔 다음 수시로 꺼내 읽었다. 고빌라트론을 구한 것이 고빌라트론이었다는 사실이, 뜨거운 생각이 마침내근사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는 늘 생각이너무 많았고, 한때는 그것을 고쳐야 할 단점으로 여겼다. 유령의 마음으로』를 쓰면서 나의 생각이 나의 자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 P261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다음과 같은 장면들로부터 흘러나왔음을 적어 둔다.
침대 발치에 놓인 거울,
방 안에서 내려다보던 새벽의 고속도로,
폐업한 가게 내부에서 죽어가던 식물들,
흐르는 물,
더 세게 흐르는 물,
독립 영화관 스크린에 닿던 지하의 빛과 가로수에 닿던 지상의 빛,
나무라는 이름의 나무,
새벽 첫차와 자정의 택시,
신경증과 환영들,
낮 같았던 밤과 밤 같았던 무수한 낮들. - P262

그런 식으로 ‘나‘는 버티기 위해 모른 척해 왔던 감정들을 유령과 함께하는 동안 하나하나 느끼고 받아들여 간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유령의 이런 역할이다.
소설에서 유령이라는 환상은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일을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서 인물이 가장 바라고 있을 법한, 그러나 결코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식물인간인 남자 친구를 다시 깨어나게 만드는 일 아닌가? 하지만유령은 감정의 수용을 도울 뿐이다. 고작? 아니 무려.
당위적인 응원만큼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격언 또한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나. 그게 어떻게 가능해지는 건지 우리는 경험한 바 없으니까. - P267

수건 두 장,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작가는 거기서도 온기를 느끼고야 마는 마음을 분명하게새겨 두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온 힘을 다해 슬퍼하는 밤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온 마음으로 위로받는 밤도 아닌, 그저 작은 장치가 부서진 마음을 아주조금이나마 떠받치는 밤. 나는 이 작가가 만들어 낸딱 그만큼의 힘에 확실히 부축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P273

희애는 금옥의 종교에 대해, 금옥은 희애의 결혼 생활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을 표현하지도,
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관계 설정 속에는 작가의 단호하리만치 분명한 삶의 태도가담겨 있는 듯하다. 제 삶은 어디까지나 제힘으로, 이를냉담하게 느끼는 독자는 없으리라, 두 사람이 소반을사이에 두고 함께했던 따뜻한 식사 시간이 서로에게힘이 되어 주었음은 틀림없으니까.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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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내가 해야만 해’라는 말은 주인공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한다. 사랑을 할 때 세계의 주인공은 ‘나’와 내가 택한 ‘당신’이므로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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