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자석이 되는것 같다. 시간의 자력. 마카판스갓 조약돌을 처음 본 순간에도 그랬다. - P39
매뉴포트는 사람이 옮긴 사람의 자취가 없는 외래의 이질의 작은 물체다. 사람은 오로지 매체다. - P42
망치나 투석으로 쓰여 손상된 흠집조차 없다. 틈, 구멍, 빗금, 얼룩, 그 모든 표면의 자취는 차후의 정밀한 조사를 통해 아무런 인위적 행위의 개입 없이 오로지 물의 힘과 작용으로만 생겨난 것이라 확실히 증명되었다. 돌멩이 얼굴은 순전히 자연의 우발성으로 창조된 것이다.[14] - P46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소반에 공책을 펼치고 기역 니은 디귿을 그릴 것이다. 얼굴과 이름과 몸짓을 바꾸겠다. 나를 잊어다오. 네가 알았던 나는 없다. 처음부터 사랑한다. - P51
2017년 7월 30일의 꿈음악을 따뜻하게 쪼이면 벽 물질이 조금 녹는다. 너는 녹은물질을 손으로 파낸다. 나는 움푹 팬 곳에 음악을 쬐어준다. 물질이 조금 더 녹고 너는 파낸다. 우리는 이렇게 한다. 물질세계에 굴이 생긴다. 너와 나는 음악의 자국 속에 기거한다. - P55
구석의 아이는 동요하지 않는다. 구석의 아이는 늙는다. 구석의 아이는 딱딱해진다. - P61
그동안 내 꿈의 공방에서 제작한 책들의 목록은 이렇다. - P73
내용의 몰이해 너머에서 이처럼 가없이 율동하는 필치에 현혹되는 데서도, 줄거리 모르게 오로지 리듬으로 확장하는 시를 상상하는 데서도, 독서의희열은 있다. - P75
자국을 가리킨다. 반면, 음화의 손을 만들려면, 우선 입에 색깔 있는 흙가루를 섞은 물을 머금은 다음, 맨손을활짝 펴 벽에 대고, 손 주변에 불어 뿌려야 한다. 안료뿌리개로 가느다란 갈대나 새의 뼈 같은 대롱형 도구를사용했을 수도 있다.[24] 벽에서 손을 떼면 손 바깥으로색 입자의 윤곽만 남고 손이 닿았던 자리는 무색으로깨끗하게 비어 나타날 것이다. - P79
한 사람이 모호의 물결과 숲 너머 수만 년 후에 도래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듯. 저기, 내가 번역한 게 있는데, 저작권 법의 바깥에서, 너무 아름다운 거야, 자칫 잘못이라는 것 알아, 그러니 대낮의 공중에 함부로 떠들어 보이지 말고, 우리끼리의 어둠 속에서라면. 서로를 신뢰하며 즉흥에 몸 던지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너도 그러한가. - P86
집의 책들을 다 처분할까 고민하는 찰나 그것들은각각 자개빛 물고기 비늘로 변한다. - P89
문득 알고 싶다. 혀는 어떻게 생겨날까. - P92
창은 자연과 내가 때로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우애롭게 서로의 실존을 체감하는 접면이다. 내게 주어진창을 통해 나는 자연계 전체에서 일어나는 무수하고 복잡한 사건들의 일부를 실감하고 체험한다. 숲과 경계한사람의 방은 자연계 사건의 표본실이 된다. - P99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의 귀환은 급습, 침범, 잠입 같은 무법의 사건으로, 혹은 선물을 동반한 방문 같은 우호적인 만남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으로서는 본래 그것 자신이었던 장소를 탈환하는 것이며 본래 그것 자신이었던 성질을 복원하는 것일 뿐이 - P99
새 정보를 검색하면 체중 항목도 있다. 박새 16그램, 동고비 20그램, 참새 24그램… 너희는 얼마나 자그많고 여린 동물들인 것이냐.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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