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질문을 던지는 동안 문학공모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 P17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入試)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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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동물임을 실감하게 된 건 전염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거대한 규모로축산업을 휩쓴 전염병들이 있었다. - P38

이미 죽어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서다. 살아있는 동물은 겁에 질려 있고 안간힘을 다해 탈출하려한다. 본능적인 도망이다. 나 역시 그 본능을 지녔다.
달아나는 동물의 얼굴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유사성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그곳에서라면 우리 중 누구라도 도망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대개의 동물은 달아나지 못하며 이런 일은 무참하게 반복된다. - P40

식탁 위 요리나 매대 위 제품에서 동물은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고통 같은 건 매끈하게 닦여 나간 뒤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동물이라 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 이 상상력은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화된 동물의 생을 그리게 한다. - P44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식재료가 되기 이전과 이후의 이름을 굳이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던가. 양파는 팔리기 전에도양파라 불리고 땅속에서도 감자는 감자이며 바닷속에서도 미역은 미역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나 닭은 식재료가 되고 나면 이름 뒤에 고기라는말이 붙는다. […] - P54

게 말한다. "수를 세는 단위인 ‘명‘은 현재 ‘名(이름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목숨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 P62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절멸』에 적힌 문장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일부를 옮겨 왔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는 ‘박쥐의 입장에서‘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운다. 감히 어떻게 대변할 수 있겠는가. 박쥐의 입장을 말이다.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유치한 실패로 돌아간다 - P74

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세 단어이면서도 하나의의미라고 이동시는 말한다.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다.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힘으로 살고 싶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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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고 유리창 너머 구름 낀 코펜하겐 하늘을 보자, 저 멀리 은빛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 P10

"두 나라가 하나가 된 것뿐이지 나라가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아니요. 제가 살던 나라는 사라졌습니다." - P11

"당신은 아직 젊은데요. 옛날이야기를 하는 원숙한 인상은 아니시네요."

"어제 있었던 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제도 오랜 옛날입니다." - P16

"그건 스시가 아니라 Sisu*겠지. 스시는 절대로 핀란드 요리가아니야." - P23

맛은 접어두고 이름으로 정하자. 메뉴판은일종의 문학 장르라고 문학을 연구하는 동료가 말한 적이 있다.
"Sa va?"라는 물고기도 있네." - P29

서예가의 눈에는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글씨를 우리는 매일 쓰고 있으니, 예술가의 눈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림을 그려도 좋을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글씨와 그림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는 듯하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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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날씨가 좋을 때면 손바닥만한 발코니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집에서 햇살이 최대로 비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발코니에 작은 정원용 탁자와소파를 갖다놓고 거기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 P17

언젠가 나는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오스트리아 작가인 FM의 집을 묘사하는 말을 들었다. "그곳은 엄청난 혼돈이었죠.
원고와 책이 사방에 가득 쌓여 있었어요. 사실 그녀의 집에는그랜드피아노가 있었는데, 방문자들 누구도 피아노를 보지 못했을 정도랍니다…………" - P18

눈부신 여름날, 한 여자와 한 남자. 기나긴 대화 자기 자신을 향한 침묵과 관찰로 이루어진 대화이자 독백. 센강 하구가내려다보이는 해변의 카페, 마치 무대와 같은 고정된 공간,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이인극이며 대화극. 그러나동시에 모놀로그인 죽음과 공포가 언어로 표현된다. - P29

나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에게 아마도 나는 추리소설을 쓰고 있다고, 그런데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탐정도 나오지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러나 뭔가를 찾는사람들이 나오겠지. 그게 범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 P32

5월의 정원은 잊게 만든다. 우리는 잊는다. 말과 우리 자신을 - P37

봄이 돌아오고, 겨울 동안 비워둔 정원을 처음 찾는 일은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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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배우 김신록입니다. 2004년에 <서바이벌 캘린더〉라는 작품으로 대학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후로 연극을 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그러다 2020년,
tvN의 <방법>이라는 드라마에서 무당 석희 역을 연기한 것을 계기로 영상 매체와 인연이 닿았고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서 박정자를 연기하면서 여러 매체와인터뷰할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 P5

이미 죽었거나 나이 든 대가의 연기론을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역동하고 있는 현장의 배우들과나눈 연기에 대한 지적인 대화가 얼마나 생생하고 벅찼는지모릅니다. - P7

김신록 근래에 무용 공연을 보면서 너무 쿨하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몸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도 흥미롭고. 그러면서 동시에 연극에는 그와 다른 할 일,
배우의 몸이 할 수 있는 탐구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간을 보여주는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매 순간 모든 개인의 욕구가 더 드러났으면좋겠다. - P17

황혜란 오히려 인식이 촘촘해질수록 어디로든 갈 수 있는힘, 충동이 생긴다. 찰나까지 인식해낼 때, 뭉텅이가 아니라세밀한 부분부분까지, 듬성듬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매 순간을 인식해낼 때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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