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동물임을 실감하게 된 건 전염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거대한 규모로축산업을 휩쓴 전염병들이 있었다. - P38
이미 죽어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서다. 살아있는 동물은 겁에 질려 있고 안간힘을 다해 탈출하려한다. 본능적인 도망이다. 나 역시 그 본능을 지녔다. 달아나는 동물의 얼굴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유사성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그곳에서라면 우리 중 누구라도 도망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대개의 동물은 달아나지 못하며 이런 일은 무참하게 반복된다. - P40
식탁 위 요리나 매대 위 제품에서 동물은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고통 같은 건 매끈하게 닦여 나간 뒤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동물이라 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 이 상상력은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화된 동물의 생을 그리게 한다. - P44
고기라니, 너무 이상한 말이다. 식재료가 되기 이전과 이후의 이름을 굳이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던가. 양파는 팔리기 전에도양파라 불리고 땅속에서도 감자는 감자이며 바닷속에서도 미역은 미역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나 닭은 식재료가 되고 나면 이름 뒤에 고기라는말이 붙는다. […] - P54
게 말한다. "수를 세는 단위인 ‘명‘은 현재 ‘名(이름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목숨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 P62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절멸』에 적힌 문장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박쥐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일부를 옮겨 왔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는 ‘박쥐의 입장에서‘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썼다 지운다. 감히 어떻게 대변할 수 있겠는가. 박쥐의 입장을 말이다.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유치한 실패로 돌아간다 - P74
이야기와 동물과 시는 세 단어이면서도 하나의의미라고 이동시는 말한다. 동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다.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힘으로 살고 싶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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