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일기
박소영.박수영 지음 / 무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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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택하는 순간에는 때로는 전부가 필요하다. 지금을 다 걸고 나서도 매일 마음을 조금씩 더 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 어떤 대답이 있다. 의심과 확신을 나눠 가진 동지를 찾아 내는 것, 아주 밝은 등잔의 밑, 이 자매가 만들어내고 있는 둥지들의 동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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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놓인 파라솔 의자에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여자에게꽤 당돌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여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 P15

"그러니까 출판을 의뢰하러 오신 게 아니네요."
"네."
"아까 원고를 가져오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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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언어는 소란을 몰랐다. 물속에 머리를 담그면 바깥의 소리가 ‘웅얼웅얼 보글보글‘로 자동 번역됐다. - P111

배영은 또 어떻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타일을 따라가는지루함이 특히 좋았다. 시작할 때 정해놓은 타일 배열만 놓치지 않으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딴생각이 비집고 들어와서 방향을 잃어도 초급반 동기들과박치기만 한 번 하면 그뿐인 세상에서 나는 도리 없이 느른해졌다. - P112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에는 유독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고양이 ‘모리‘를 만나러 산에 다니던지난 2년 동안 나는 영화와 똑같은 과정을 육지에서 겪었다. 상어에게 쫓기는 문어의 모습에 들개들에게 쫓기던 모리가 겹쳐 보였다. - P114

곧바로 두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당연히!
‘동물‘, 다른 하나는 ‘동생‘이었다. 동물 혹은 동물권은 내 삶의 마지막 어휘이고,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사람이자 내 인생의 반려인이 바로 동생이니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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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웃기 시작했다.
"뭔데요, 어머니?"
"아니, 자꾸 웃음이 나네."
나도 자꾸 웃음이 났다. - P116

오랜만인데도 전화를 받자마자 금세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특이하거나 개성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평범한 음성이었지만, 아, 하고 2, 3초 만에 알아들었다. 그의 목소리 속에 미묘하고 독특한 머뭇거림이 실핏줄처럼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음색은 순간적으로 내 시간을 정지시켰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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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과 나의 의문은 급기야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닿았다. 일찍이 루소는 태초의 대지에 말뚝을 박고
‘이 땅은 내 땅‘이라고 외친 사람을 소환하며 이렇게 썼다. - P90

대지에 이름표를 붙이고 "여기는 내 땅"이라고 말할 생각을 대체 누가 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공기를 한 움큼감아쥔 다음 병에 넣어서 "이것은 내 공기이니 돈을 내는사람만 숨을 쉴 수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 P91

탈호칭은 서로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도록 부추겼는데, 그건 대개 다툼으로 이어졌으니까. 사실 막내인 나는 탈호칭의 최대 수혜자였지만 다툼이 시작되면 얘기가달라졌다. 뭐랄까, 그동안 편하게 대화하면서 무덤도 함께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 P98

왜소한 몸만큼이나 마음도 쪼그라들었던 학창시절에도 박소영하고만 대화를 나누면 어쩐지 좀 커진기분이 들었다. 박소영은 모두가 나를 의심할 때도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를 의심할 때도 나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박소영보다 네 살이나 어렸지만 우리는 진짜
‘친구‘였다. - P98

어느 날 수영이 내게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는더 이상 SNS에 올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수영은 SNS는 계정 주인의 공간이지만 그게시물을 보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무슨말인지 즉각 이해했다. 동물 돌봄 활동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올리는 것은 자칫 모두에게 "지금 당장 활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물론 내게 그럴 의도가 없다는 것은 수영이 더 잘 알고 있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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