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과 나의 의문은 급기야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닿았다. 일찍이 루소는 태초의 대지에 말뚝을 박고 ‘이 땅은 내 땅‘이라고 외친 사람을 소환하며 이렇게 썼다. - P90
대지에 이름표를 붙이고 "여기는 내 땅"이라고 말할 생각을 대체 누가 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공기를 한 움큼감아쥔 다음 병에 넣어서 "이것은 내 공기이니 돈을 내는사람만 숨을 쉴 수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 P91
탈호칭은 서로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도록 부추겼는데, 그건 대개 다툼으로 이어졌으니까. 사실 막내인 나는 탈호칭의 최대 수혜자였지만 다툼이 시작되면 얘기가달라졌다. 뭐랄까, 그동안 편하게 대화하면서 무덤도 함께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 P98
왜소한 몸만큼이나 마음도 쪼그라들었던 학창시절에도 박소영하고만 대화를 나누면 어쩐지 좀 커진기분이 들었다. 박소영은 모두가 나를 의심할 때도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를 의심할 때도 나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박소영보다 네 살이나 어렸지만 우리는 진짜 ‘친구‘였다. - P98
어느 날 수영이 내게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는더 이상 SNS에 올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수영은 SNS는 계정 주인의 공간이지만 그게시물을 보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무슨말인지 즉각 이해했다. 동물 돌봄 활동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올리는 것은 자칫 모두에게 "지금 당장 활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물론 내게 그럴 의도가 없다는 것은 수영이 더 잘 알고 있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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