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동료들과 작은 책을 쓰고 싶었다. 신연선 작가, 김동신 작가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흔쾌히 맞잡아주었다. 세 사람 모두 10년차에서 20년차를 향해 가고 있는 업계의 허리 세대에 속한다. 꾸준히 걸어왔지만 남은 길도 많은 상태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무겁지 않게 해보고 싶었다. 하필 책을 지나치게사랑하여, 직업으로 삼게 된 이들의 여전한 애정과 가끔 찾아오는 머뭇거림에 대해서 드문드문 나누는 말들을 담아보았다. 분석이라기보다는 빠른 미디어의 시대에 가장 느린 미디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표면에 천천히 떠오른 질문들을 모은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 말들은 출판계 안쪽을 향하기도, 바깥쪽을 향하기도 한다. - P7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무슨 추천사를 그렇게 많이 쓰니?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뒤집어도네 추천사, 저 책을 뒤집어도 네 추천사더라." - P11

이런 몰림 현상은 추천사를 쓰는 이들 자체가 워낙적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책에 대해말하는 게, 또 그것이 그 책의 표지나 띠지에 남는게 버거울 수 있다. 책을 오래 꼭꼭 씹어서 읽는 사람, 짧은 글을 압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에겐 더욱 무거운 일일 것이다. - P13

기후 위기의 시대에 증정의 규모가 대폭 줄어도 좋지 않을까? 따뜻한 마음을 담은 일들도 줄여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 슬프긴 해도. - P19

각 출판사 마케팅 부와 서점의 굿즈 담당자 분들이은은하게 원망하고 계실 듯하다. 경쟁이 심한 시장인데자꾸 저자가 ‘하지 맙시다‘ 하고 김을 빼는 게 곱게 느껴질리 없다. 책은 저자의 것만이 아니고 마케팅과 홍보는 저자의 영역이 아니니 월권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기껏 인쇄 방식을 바꾸고 나서 굿즈를 왕창 생산하면 일관성도 노력한 소용도 없어져 늘 팽팽한 상황을 만들고 만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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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강원도 응랑에서 발생한 인질극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이 시신 2구를 발견했다. 시신의 신원은 산장의 원소유주이자 얼마전 타계한 나래어린이재단 이사장 최경섭씨 (74)의 외손자 신 모씨(20)와 서면파출소 소속 순경 서 모씨(26)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응랑 산장 인질극 관련 사망자는 범인 이 모씨(40)를 포함, 총 3명으로 늘어났다. 실종자는 1명이다. - P7

하지만 모든 찬사는 그애의 입술 아래 무너집니다. 활 모양의윗입술과 도톰한 아랫입술. 물고기의 내장처럼 부드러운 그 입술엔 무지가 묻어 있거든요. 노인의 입술은 비겁한 자들의 입술처럼안쪽으로 말려들어가 있다는 걸 모르는 무지요. 무지는 젊은 모두의 특권입니다. 성급한 시간은 그 권리를 앗아가지요. 그러나 모두가 음울한 학자처럼 많은 걸 알아버려도 그애만은 영원히 백치입니다. 그 순백의 무지가 내게 달콤한 슬픔을 안겨줍니다.……… - P13

자기도 모르는 새 이를 앙다물어 빳빳해져 있던 뺨에서 힘을 풀었다. 멍하니 닫힌 방문에 눈길을 두다가 동물원의 철창은 동물을가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론 동물을 인간에게서 보호하는지도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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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자주 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집 안의 물건이 새로 제 자리를 찾고, 낯선 냄새가 익숙한 향기로 바뀌면서 비로소 내 집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있잖아요. - P7

, <2시의 데이트>는 출연자가 노래 한 곡 부르고 인사 꾸벅 한 뒤 금방 화면에서 사라지는 가요 프로그램도 아니었으니까. 요즘말로 최애의 얘기를 한 시간 내내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칠까 봐 나는 애가 탔다. - P11

"그래가지고 2학년 수학 선생이 오늘 출근을안 해가지고, 언니...."
이모의 목소리였다. 맙소사.
"엄마 통화하잖니! 누구야, 수화기 내려놔." - P17

역시 지나온 시간은 좋게든 나쁘게든 내게 고스란히 쌓이고 남아 있다. 세상이 그러하듯.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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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는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4)부터 근 20년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한 감독이다. - P187

오기가미 나오코는 대중에게 익숙하거나 역량이 과대평가된 대도시에서 벗어나 전통적 개념의 마을과 동네를 복원하려 한다. - P187

영화는 인물들이 피부 아래 숨겨 놓은 누추한 감정을 곱씹어 내린 끝에, 죽음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삶에는 존재하는 귀중한 것을 제시한다. - P191

<강변의 무코리타>를 보고 나서 한밤중에 유서를 썼다. 삶을 고민하는 것은 힘에 부치니, 거꾸로 죽음을 들춰 보기로 했던 것이다. - P193

• 일시: 미정(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을거라고 단언한다. 너희 덕분에 그런 용기는사라졌으니, 나는 평범하게 질병 혹은 사고로사망할 예정이다.) - P199

.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단지 시대와인물을 효과적으로 연결한 대사여서가 아니라.
그 발화의 주체가 김혜수이기에 계속 회자된다. - P224

집안일이 끝나도 할 일은 많다. 서명하고 행진하고 후원한다. 돈을 벌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산책하러 나간다. 지금도 무섭지만, 지금은 그렇게 싸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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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얼 포기할 수 없는지, 무얼 구태여 지킬만큼 사랑하는지. - P135

눈앞에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장이 성소수자를 기괴한 멸칭으로 부르며 증오하는 사이,
얼굴들은 점차 선명해져서 나를 붙들었다. - P137

나만 너무 많은 공간에서 어떻게 계속할수 있을까. 새로움과 명랑함을 잃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단히 쓰려면 나 아닌 것과 나보다 나은 것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 P151

결국 하나로 통한다. 다들 제 분야가 아닌 것에잠시 한눈을 팔며 시간을 번다고 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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