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감정소모가 너무 심해진다. - P31

이를 갈던 시절이아득할 만큼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진심이 초라해지지 않게,
영화의 자랑스러운 팬으로 남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덕〉이 내가 영화의 ‘성덕’이 되는 첫번째 발걸음이길. - P29

"그러니까. 장편을 끌고 가는 일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어요. 공부를 좀 더 하고 장편을 들어가든가 필모그래피를 좀 더쌓는 쪽이 좋지 않을까? 아직 어리니까.세연 감독님 너무 좋은사람이고, 〈성덕〉도 너무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 P27

우상화와 팬덤 현상에 대한 이야기.
우상을 촬영하는 일은 최소화.
상징을 찍자.
상징조차도 우러러볼 수 있는? 각도로! - P46

극장을 옮겨 <성덕>의 서울독립영화제 첫 상영을 기다리다가 부끄럽지만 팬을 만났다. 부산독립영화제 GV에서 어떤 남자관객 분이 나에게 "감독님에게도, 감독님 영화에도 팬이 생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실 거냐"고 물었던 게 생각났다. 나는 뭐라답할지 고민하다가 다리를 발발 떨면서 "처신 잘하고 착하게 똑바로 살겠다"고 했었다. 그렇지,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놓고〈성덕〉의 팬을 망한 덕후로 만들면 안 되는 거지. 아무튼 오늘만난 팬은 벌써 내 영화를 세번째 보러 오는 거라, 이제 얼굴도이름도 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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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면 다시 할머니와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막걸리도 마셨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데 내가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끝도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자신감도 없고 너무나 괴로웠지만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때 우연히 얀니의 트윗을 보게 되었다. - P8

그렇게 백배는 ‘요상한 색깔의 토사물과 함께 서른을맞이하는 중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봉은사에서새해 기도를 올리고 있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백배의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마흔이 시작되었다. - P14

사람들은 우리를 하우스 메이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열살 차이가 나는 언니 동생, 때로는 선생과 제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그냥 하나의 개인들이다. 나는 나 김얀이고, 백배는 하나의 백배다. - P17

단벌숙녀에 가까운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얀니에게도 태초에 책이 있었다. 우리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짐 더미를 정리하며 농담으로 이 짐들을 ‘업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얀니의 업보도 만만치 않았다. 무거운 책들을 이고 지고 살기란 정말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 P28

‘그 수많은 물건을 살 돈으로 그 물건을 둘 수 있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로 시작된부동산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무소유로까지 비약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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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며칠 전 도착한 메일에는 바람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강연 전날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결항될 수 있으니 하루 더 일찍 섬으로 들어와달라는 것이었다. 정현은 섬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많지 않았다. 그래서 메일 속 바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요청받은 대로 그는 강연일보다 이틀 먼저 출발했다. 지금 생각하면다행이었다. 그날은 12월 중순이었지만 온화하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은 상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P39

"그게 아니라면?"
내가 물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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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주를 마시며 존에게 답장을 보냈다.
‘해피 버스데이, 존.’ - P174

-화장터 가죠? 우리도 놓쳤어요! - P169

m의 장례식을 치른 뒤, 나는 남자친구와 나 사이의 무엇인가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가 끝났는데도 아무도나가지 않는 영화관에 앉아 영화보다 더 긴 엔딩 크레디트를 함께지켜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애초에 우리의 연애는 절대적인것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살아온 것처럼 나는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남자친구를 사랑했다. - P167

-내 심장이 타고 있다. 그런 거 아니지? - P129

진강이의 반응에 갑자기 이 여정이 해볼 만한 일처럼 느껴졌다.
진강이의 고향까지는 사백 킬로 남짓. 차는 고속도로로 진입하고있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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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 푸르고』를 열면 「미망 혹은 비망」 연작이 시작되는데그 첫 두 편이 위와 같다. 이전 시집 세 권을 읽은 독자라면 이 시들에서 놀랄 만한 것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80년대들에서 이미 다 발설된 자기인식이 재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 P272

새로운 세기로 접어든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최승자는 여전히우리 곁에 있다. 이제 저 질문을 다시 던져볼 때가 되었다고 나는느낀다. 그리하여 세기말은 그에게 무슨 낙인을 찍었던가.‘ 이렇게 달리 물어도 뜻은 같다. ‘90년대는 최승자에게 무엇이었나?‘
최승자의 시집 일곱 권을 앞에 놓고 있자니 저 질문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 P270

많은 학자의 말대로 ‘5월 공동체‘는 개별성에서 연대성으로 도약하는 인간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죽고 싸우고 따르는, 그런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지고한 경지 하나를 재현하는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 P267

당연하게도 이런 나르시시즘적(우울증적) 주체에게서는 사랑이 발생할 수 없다. 타인의 심연 같은타자성과 충돌하면서 내가 나로부터 빠져나와 거듭나는 드문 체험이 사랑이라면 말이다. "에로스는 주체를 그 자신에게서 잡아채어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반면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양자택일이다. ‘우울증이냐, 에로스냐.‘ - P259

전화기나 야구공을 몇 번씩 바꿔 쥐듯이, 또 갤러리에서 작품을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서듯이, 우리는 신체를 통해 이 세계와 최선의 방식으로 만나기를 원하며,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드레이퍼스는 두 최고경영자가 회사 합병을 결정할 정도로서로를 신뢰하게 되려면 여러 번의 원격회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결국 그들의 거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최적의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가벼운 악수와 포옹을 해야만 생겨나는 확신, 이것을 ‘접촉신뢰‘라고 부르면어떨까. 원격현전은 접촉신뢰를 대체하지 못한다. 강의도 그렇고연애도 그렇다. 20년 동안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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