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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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율밤 보는 사람에게만 쌓이는 눈처럼 환하고 아득하고 사라질까 조바심나는 안에서 부푼 말들 차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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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1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shram21 2023-01-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넵 가능합니다
 

너를 태우고 녀석이 불을 핥으려 한다 아직 칼을 핥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리움이 심한 날엔 강변에 간다 두 시간쯤 녀석은 강을 핥다가 입이 헐어 내 곁에 가로눕는다 나는지친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개들은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던데 탄광 속에서 너는 우리를 빛처럼 봤구나 단청을 그려도 이제는 저녁만 보겠네 개의 눈속에 강물은 반짝거리고 칼춤을 추는 마음을 알 것도 같고 그렇게 개와 나와 승들은 저마다 뭘 좀 잊어보려고 함부로 눈이 다 타버렸네 - P21

가장 이른 첫눈을 눈에 담으며 내시는 품에서 도라지를꺼냈다 흙을 뚫고 입과 코가 트일 때까지 흰 다리를 빼곡하게 씹어 삼키며 면포를 펼치고 손끝으로 시를 썼다고 그리고 그는 궁을 넘어 다친 다리로 단풍나무 숲 속의 산소로 갔다고 - P23

맨가슴으로 가장 먼저 선을 넘는 것우리 모두의 안쪽엔 망아지가 있어서 - P23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당신의 이름을 연거푸 말하면 여름이 불타고해바라기유: 맥주를 따르며 웃는 걸 본다를 수개기름: 눈길만으로 불이 붙을 때 - P25

입술이 옴짝달싹 기름을 바르고 리듬을 입고 마음을 업고 무릎을 꿇고미강유: 아름다움에 대해 강하게 말하자쌀눈유처럼 사랑의 눈을 번쩍 뜬 채로몰라유: 전라도로 여행 갈래요 - P25

너희 집 앞에 치솟는 복숭아나무가 되리 - P28

우리가 함께 입을 벌린 순간들제철 음식을 한 번 되돌릴 시간을 - P31

도토리 속엔 도토리 줄기가 푸르게 자라고미더덕 속엔 짙푸른 고래가 웅크려 있고내 머릿속엔 수류탄 같은 기억의 다발이 있어서다디단 행복이 입속을 뒤집어놓을 때노란 침으로 베개가 흠뻑 젖었다당신을 떠올리면 세상이 좋아서나는 기어코 풍선을 터트려버렸다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분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 P33

어둠은 어두운 마음을 알아서 어둠 속 어둑한 심장을 거두고어둠은 어두운 시간을 날아서 절룩이는 다리로 흰 떡을삼키네 - P38

둘만 걸을 수 있도록길이 칼이 되도록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여섯 개의 발바닥이 흠뻑젖도록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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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이혼숙려기간 동안 형부와 같이 살았다. - P177

-거미를 먹으면 살이 빠진대.
-진짜? - P183

엄마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언니도 담배를 꺼냈고, 나에게 한 개비를 주었다. 우리는 감나무를 향해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 P187

-자, 운행 시작합니다.
나는 아빠의 차 옆구리를 받았다. 아빠가 어이쿠, 하면서 웃었다. 그다음으론 엄마를 쫓아가 사정없이 밀어댔다. 그러고는 언니였다. 온 가족을 밀치면서 나는 장내를 몇 바퀴나 돌았다. 시간이다 되자 차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안전띠를 풀면서-이거 완전히 폭군이네, 폭군이야.
라고 말했다. - P200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나는 대답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 엘리엇 스미스의 사망일, 그리고 두분의 이혼일이요.
-하나 더 있는데 못 들었어?
- 생일 축하해요.
그가 다시 한번 웃었다. 그는 생일에 이혼한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결혼사진이 거실에서 떼어졌다. 가족이라는 것도 시작과 끝이 있다니. 인부들이 바쁘게 오갔고 나는 오늘 같은 날도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 P203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건조하다. 생일 축하한다.
캘리포니아와의 시차를 고려하면 메시지는 생일날보다 삼 일이나 먼저 보내진 셈이었다. - P208

j는 생일 전날인 오늘까지 네 번의 길고 짧은 연애를 쉬지 않고했으며 다섯 명의 남자와 잤다. 기억할 만한 연애도 있었고 아무런 추억도 남지 않은 연애도 있었다. 그중 나이트클럽과 관련이있는 연애는 단 한 번이었다. - P210

의 첫번째 연애는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었다. j는 자신 안에 그렇게 많은 분노와 불안이존재한다는 걸 연애를 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j의 연인은 아주 다정하지는 않았지만)가 터뜨리는 감정을 잘 참아내는 편이었다. 두사람은 서로가 첫 연인이었고, 결혼을 제외하고 보통의 연인들이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 했다. 헤어지고 나서가 느낀 감정은 슬픔보다는 안도감이었다.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더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 P215

-시내에 있는 그 나이트클럽 지붕이 열린대. 오늘 눈 온댔는데, 지붕 열리면 멋있지 않겠어? - P218

야, 너도 와서 먹어라.
꿈속의 엄마가 말했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할아버지가 싸웠다.
둘은 생전에도 쓸데없는 일로 자주 싸우곤 했다. 가-엄마, 그거 비아그란 거 다 알아.
하자 엄마는,
-네 나이에는 안 먹어도 되나? - P221

이모가 보낸 메시지에는 사진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것을누르는 찰나, j는 이십구 년의 시간이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j는앞으로의 모든 삶이 이렇게 지나가리라 예감했다.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렸지만. - P230

아빠가 방을 쓰기 전에 동생은 자신의 물건들을 따로 보관해달라고 했다. 나는 박스 하나를 사서 동생의 책과 노트 등을 담다가동생이 학창시절에 쓴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엔 엄마 욕이 페이지마다 적혀 있었다. 동생이 소설가라면 엄마를 열 번도 넘게죽였을 것이다. 나는 일기장을 박스 맨 아래에 숨겨놓았다. - P235

- 애가 웃긴다. 내가 김치를 드니까 입을 아, 벌리고 가만히 있더라. 집에서 그렇게 키우나?
그로부터 이십 년도 더 지났다. 금여인숙을 운영하는 사람이여전히 그 할머니가 맞을지 궁금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 P240

‘거긴 왜 갔니? 오늘 집에 안 들어오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아빠, 나 오늘은 모텔에서 자고 가요, 이런 대답을 할 수도 없고 해서,
‘둘 중에 오복분식 자리가 어디야?‘ - P244

어둠 속에서 동생이 물었다.
-아빠 죽일 거야?
깜짝 놀랐고, 이내 소설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언젠간.
-안 쓴다더니. - P250

누군가 나를 죽이는 소설을 쓰는 날이 올까. 너무 오래 살다보면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높은 확률로그것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나뿐일 것이다. - P259

일반적으로 소설은 보상의 형식을 띤다. 보상의 내용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생산적인 교훈이나 변화의 여지 같은 것이기마련이다. 경제적 생존과 번영,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인식 개선이 요구되는 지금이라면 여성의 계몽이 우리 시대 소설적 보상의 범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송지현의 이번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그 본보기를 따르지 않는다. 여성의 각성과성취를 말하는 의기양양한 성공담과 야망심을 북돋아주는 짱짱한임파워링 구호에서 소외된 이들의 흥망성쇠 일상사가 이 책을 채우고 있다. - P263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용기나 희망은 자주 상처를 모욕한다.
그것들은 아픔이 경감되고, 치유되고, 이윽고 훈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독려하며 사람을 침식시키는 상처를 폄하한다. 고난은 대개 그것이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발전의 마스터플롯을 따라 작동하는데, 부정적 감정은 미래의 시간을 포함하는 희망의 서사 속에 안착되어야만 다뤄볼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P264

소설집을 관통하는 다른 한 축에는 노동의 문제가 있다. 송지현의 소설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강도 높은 노동 행위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독특한 점이다. 또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여행이 그려지고 있는 것도 동일한 의미에서 주목을 요한다. - P273

실제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고통과 해방, 우울과 기쁨은 순차적으로도 인과적으로도 전개되지 않는다. 고생 끝에도 낙이 오지 않고 비온 뒤에도 땅이 굳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고도 삶은 지속된다. 수치심과 억울함, 적개심과 황망함과 같은소수자의 르상티망은 영영 해소될 수 없는 감정으로 인간을 오래번뇌케 할 것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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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은 한 자 차이가 사람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매일 실감하고 있었다. - P155

그날 밤, 수진은 집에 돌아가 단어 공책에 초대졸과 동대학을적었다. 그녀는 새로 알게 된 단어는 반드시 공책에 적었다. 그런용도의 공책이 따로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단순히 단어 공책이라고 불렀다. 종이를 안쪽으로 말고 손날로 눌러 접힌 선을 내고 왼쪽칸에는 단어를, 오른쪽 칸에는 의미를 적었다. - P157

"최근에 심하게 스트레스 받은 일이라도 있어요?"
의사가 물었다.
그러나 또랑....
수진은 말했지만, 말하는 동시에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찍을래요?"
**의사가 파낸 귀지를 휴지에 올려 내밀었다. - P158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를 아낄 생각이 없던 오후. 그녀는우연에 마음을 활짝 열어둔 채였다. - P159

선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흙이 영양제를 무섭게 빨아들여 진녹색의 화초는 빽빽하고 풍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잎이 누렇게 떴다. 수진은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리며, 원장의 묘한 버릇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종종 수진과 수미의 얼굴에 분무기를 뿌렸다. 칙칙. 딱 두 번 뿌리고 갈길 갔다. 둘은 영문도 모른 채 물을맞았다. - P162

싱크대에서 라면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다. 종이 뭉치는 수진이 육 년간 써온 소설이었다. 열두 편의 단편소설. 수진은일 년에 두 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두 번 문예지에 투고했고, 두 번답장을 받았다. 문예지에 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167

"작가들은 디스크가 직업병이에요. 쓰는 게 직업이라,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여러분도 작가 하려면 의자 좋은 거 사.
사실 내가 해줄 말은 그거밖에 없어. 작가 그거 나쁜 직업이야, 드런 직업이야." - P169

"저도 뭐 해요."
수진이 회전하는 젓가락 끝을 보며 심상히 말했다.
"뭐 하는데?"
수미가 청경채를 우적우적 씹으며 물었다.
"소설 써요."
"소설?"
"네, 밤에요." - P172

spha pri fole커피숍을 나오는데 수진의 귀에 문장 하나가 흘러들었다. 새 말이 체화돼 암묵지가 될 때까지 쓰고 또 쓸 것. 사 년 전 여름, 소설에 대한 답장에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그때 그는 수진에게 어휘력이 부족하니 국어사전을 세 번 베껴 쓰라고 했다. 수진은 대신단어 공책을 썼고 새로 알게 된 단어는 자꾸 써 몸에 박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건물을 나와 길을 걸으며 최근에 알게 된 말을 입안에서 천천히 굴려봤다. 가일, 일, 가왓일………… - P177

그러므로 그녀의 소설을 잃었다고 한들 그것은 세계의 손실도, 누구 하나의 손실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사정일 뿐이었다. 그녀만의 사정. 수진은 한때 그걸가졌었다. 자신만의 사정을 조용한 기쁨이 있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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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확실히 어떤 분기점이었다. 집주인이 처음으로 사과해서만은 아니었다(그동안 좋게 좋게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재빠른 사과에 허탈하면서 괘씸했다). 이날 이후나는 조금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잘 싸우게 됐다. 고함치는 게 뭐라고 그동안 이거 하나를 제대로 못 했는지.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를 뚫고 나도 더 크게 소리 지를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비로소 새겨진 감각이었다. - P47

여전히 나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웬만해서는 싸움을 피하고 몸을 사리는 소심한 사람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막 나가는‘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괜히 잘못 건드려 위험하거나 귀찮은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맞대응할지 피할지 판단하는것도 싸움의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무조건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무력하게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맞대응’이라는 선택지를 쥐고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그러니까 나는 그날 북토크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예전보다 잘 싸우게 됐는지. 잘 싸울 수 있다는 감각이 무엇을 바꿨는지(그리고 그 집주인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 P51

가식의 단계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단계를 넘어 진짜 대범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모르겠지만, 뜻하지 않은 ‘위선 권장 영화들에서도 문제는 늘 위선을 벗었을 때 생기지 않는가. 영원한 위선은 결국 선으로 남을 테니까, 이 위선과 가식이 헐거워져서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위선과 가식으로 아주 똘똘뭉쳐 살고 싶다. - P65

충고를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고민의 선택지를늘려주는 타인의 앞선 경험들은 적어도 내게는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하다못해 청소기 하나를 사는 데에도다양한 후기들을 찾아 읽는다.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앞에서라면 더더욱 다양한 후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다. - P73

그래도 요즘은 남자들이 많이 ‘돕는다‘고들 하는데,
대개는 전 부쳐내는 정도이고, 설령 아주 드물게 전체준비의 50퍼센트 이상 기여한다고 해봐야, 아니, 본인집안일이고 본인 조상 제사니까 애초에 남자끼리 100퍼센트 다 해야 마땅한 걸 갖고 ‘돕는다‘ ‘같이 한다‘ 자랑스레 말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게 아닌가 싶다. - P79

그밖에도 더는 쓰지 않는 말이 많다. ‘한국을 빛낸100명의 위인들‘ 부르듯 읊을 수 있을 것 같다. ‘결정 장애’처럼, 무언가를 잘 못 정하는 상황, 어떤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장애‘라는 단어를 빗댐으로써 장애를 비하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질병을 희화화하는 표현인 ‘발암추구’ ‘암 걸리겠다‘ 같은 말도 쓰지 않는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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