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 원시시대에서 남북국시대까지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강종훈 외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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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역사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우리는 역사를 배울까? 왜 역사를 중요시해야 할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단지 온고이지신으로써 과거의 것을 통해 현재의 사회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한국인이 꼭 한국의 역사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필요는 있는 것일까? 미국의 역사이든 일본의 역사이든 상관없이 역사를 배움으로써 갈음할 수는 없는 문제일까? 

 

아마 많은 분들이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말도 안된다.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라고 물어본다면. 왜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배워야 하냐고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라고 한정지을 수 있는 한국인의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가 어떻게 이룩되어졌는지가 나 자신을 알기위한, 우리 사회를 알기위한 가장 근본적인 열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왜 동북공정에 민감한가는 역사를 빼놓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일제시대는 한국의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뉴라이트의 말도 안되는 주장이 왜 말이 안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나 역사를 알아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왜 그토록 뉴라이트 세력과 사회기득권이 역대 최악의 대통령인 이승만을 국부로 왜곡하려 하는지, 왜 친일파사전이 발간되는 것을 그토록 가로막고 있으며, 영.호남의 대립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역사라는 것, 역사의식이라는 것이 없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문제들은 그간의 역사적 사실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와서 생긴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는 제목만으로 이미 역사란 왜 배우고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말해주고 있으며 이 제목만으로 자신의 할일의 반절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좋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고조선부터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각 권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각의 책은 자세한 내용보다는 많은 사료와 그림,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특징을 놓치지 않게끔 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들부터 성인까지 모두 두고두고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매력을 가진 역사책으로 만들어졌다. 역사는 어렵다, 고리타분하다 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슬쩍 보아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큼 책은 형형색색 화려한 모습과 그 안에 담긴 무겁고 신중한 내용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역사란 그렇게 어렵지 않을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그 제목에 걸맞게 고대 역사지만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고 문제가 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 사실 이후 현재 북한사학계가 내세우는 대동강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그러나 반드시 모든 사람이 정확히 알아야 할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이야기, 통일신라시대와 남북국시대의 용어에 대한 정립 에 대한 얘기까지. 어쩌면 역사 속 세세한 사실보다 더욱 정확히 알아야 할 '미래가 달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준다. 결국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미래까지 이어질 역사와 관련된 사실들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투입해줌으로써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게 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책의 제목은 분명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인데 미래와 가장 깊숙이 연관된 가장 가까운 미래. 또한 분명 한국의 역사인 현대사는 책의 구성에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을 기획한 역사문제연구소가 그간 낸 책을 보면 그들의 의도에서 나쁜 면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이 책의 목적이 진정 역사를 통한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있고 우리가 함께하는 현대사회와 가장 긴밀히 연관된 현대사에 대한 부분이 빠진 것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건강한 시민은 발간사에 나온 말대로 올바른 역사의식과 역사 인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후 왜곡되고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쓰레기 위에 사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보다 건강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현대사의 인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사만큼이나 고대사와 근대사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고대사와 근대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네 역사의 시작이고 진행과정이라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현대사부터 차근차근 밟아나아가다보니 그곳까지 이르른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를 시대순으로 배우지만 진정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그 시작인 고조선과 삼국시대가 아닌 지금 당장의 정치현실과 사회현실을 만들어낸 10년전, 20년전, 30년 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조는 누구이며 한민족의 기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된 직접적 사실들, 즉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들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등의 책으로 현대사 바로 알기에 앞장서왔던 역사문제 연구소의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에서 현대사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이며 이 책의 무한한 가치를 깎아먹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더불어 바램이 있다면 이 책의 후속으로 <미래를 여는 한국의 현대사>를 꼭 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것과 유사하고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 산적한 현안들은 과연 어떤 역사적 사실들에 의해서 쌓아온 것들일까. 그리고 이 문제들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들의 해답은 모두 역사에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해답의 실마리가 역사에 있다. 그 실마리를 찾아 풀어 해치는 데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는 분명 좋은 길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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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맨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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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100이면 99는 이 책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다'의 작가가 쓴 첫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점에 눈이 갔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역시 그러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의 작가이다 보니 눈이 자연스레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턴맨>은 그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출간조차 되지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스턴맨>은 무언가 여러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언뜻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떠올리게도 만들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한번씩 봄직한 설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게 만들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품들에서 설정을 따오지는 않았겠지만(그게 더 힘들어 보인다), 작품을 읽는 내내 작품의 소재인 바닷가재잡이 라는 것만 그 유니크함을 내세울 뿐, 작품의 진행내내 '스턴맨'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모든 작품은 그 모티브가 되거나 '이런 부분은 이런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느낌이 참 닮았다'라는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 역시 본인만의 색채와 아우라를 뿜기 마련인데 <스턴맨>은 보는 내내 특히 중후반까지 다른 작품들과 겹치는 느낌이 들었음은 어쨌든 참 아쉬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의 인상 겹치기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다른 작품과 겹치는 이미지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한 작품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정한 아쉬움은 원작의 문제인지, 편집과 번역의 문제인지 알 수 없는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책은 그 흥미진진한 내용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일단 느껴지기에는 원작에서 보이는 작가의 호흡문제보다는 번역의 문제인 것으로 보이나 작품을 읽는 내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보통 잘 쓰여진 작품, 번역이 잘된 작품을 읽으면 작품을 읽는 흐름이 끊이지 않고 물결을 치듯 잔잔히, 혹은 격정적으로의 템포변화는 있어도 딱딱 끊어지는 느낌은 없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최근에 읽었던 작품중에 이러한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할 정도의 끊어짐이 책을 읽는 내내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호흡문제와도 상관없고, 이미지의 중복과도 상관없이 아주 좋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책의 소개와 다른 책의 결말부분이었다. 책을 접하기 이전 출판사의 책에 대한 소개를 보면 광활하고 위대한 자연, 그 안에서 쌓아올린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동안 벌어지는 파란만장하고 역동적인 운명의 각성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짐작된다. 나 역시 그러한 내용을 처음 머리속에 그리며 책장을 넘겼지만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러한 부분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결말까지 이어지며 결말 역시 오히려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이, 조용한 자아찾기에 열중한다. 작가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위대한 항변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기대한 독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이 하나의 인간으로써 꿋꿋하고 소신있으며 일관적인, 그리고 매우 현실적이고 따듯한 자아획득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 처음에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밋밋하게 보일지 몰라도 되새겨볼수록 책 속에 조용히, 그러나 유일하게 끊임없이 흐르는 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어봄직하게 만들어내는 유일한 빛으로 영롱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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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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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사실. 작가는 이 사이에 '그러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그러나. 진실. 사실. 이것들 사이에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존재할까. 책은 작가의 말대로 사실과 대부분의 진실 속에 숨겨져 있는 "그러나"를 향해 숨가쁘게 달린다. 그리고 그 "그러나"는 진실과 사실 사이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사이, 현재에도 존재한다.

 

평화롭던 마을이 미치광이 살인마에 의해서 한순간에 수몰되어버린 사건. 속칭 세령호 사건으로 인해서 살인마의 아들 서원은 7년을 하룻밤 같이 지내고 있다. 아니 그가 느낀 세월은 하룻밤에 7년 같았겠지만, 어쨌든 서원은 7년의 세월을 마치 계획된 하루처럼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그 고통의 근원은 자신의 아버지 현수. 현수가 살인마로 잡힌 이후 그는 정체 모를 썬데이의 공작으로 인해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승환과 떠돌아 다닌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아버지의 사형집행 소식이 전해지고 인생의 변화구는 다시 한번 현수와 서원의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날아온다.

 

7년의 밤은 철저히 소설=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공식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작가는 7년전 그날을 따라가기 위해 현재의 서원을 불러 일으킨다. 불러 일으켜진 서원과 그를 쫓는 누군가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7년전 그밤과 오늘,내일을 잇는 그러나 사이에 날줄과 씨줄을 엮어 촘촘이 낚인다. 어느새 우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감겨오는 눈을 곧추세우고, 고픈 배를 문지르며, 화장실 가고 싶은 아랫배의 열정을 잠재우며 작가가 쳐놓은 그물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않는다. 작가는 7년전 그밤을 미친듯한 속도로 따라간다. 오영제의 가족과 최현수의 가족, 그리고 승환의 일까지 모두를 동시에 소환하고 그들 각각의 중심추를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아니, 조금더 자세히 말하자면 작가는 거칠다. 거친듯 한없이 부드럽고 정교하다. 작가는 오영제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면 완벽히 그 극에 이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방황하고 허우적대며 빠지려 하는 우리를 다시 한 순간에 반대의 극에 소환시킴으로써 균형을 맞춰버린다. 작가는 독자들을 오영제와 최현수 그 중간에 위치하게하여 중심을 지탱하면서 이야기를 밀어나가지 않고, 오히려 그 양 극에 우리를 한없이 몰아붙여서 저울의 추와 대를 모두 팽팽하게, 쓰러지지 않게 몰고나간다.

 

물론 이 한없는 몰아붙임에도 약간의 느슨함은 존재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라는 파격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이야기답게 작가는 초반에 너무 힘을 주는 인상 역시 받게 된다. 물론 그 인상은 작가가 끝없이 몰아붙여대는통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쭈욱 밀릴 수밖에 없기는 하다. 작가는 초반의 강함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않는 것이 아니라 그 강함을 계속 유지할수 있는 가속도를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성공한다. 다만 초반의 임팩트와 그를 살리기 위한 초반 설정, 정확히 말하면 약간 과한 정보의 노출로 인해 중간부분에서 조금 독자와 스스로의 이야기에 대해 약간 떨어지는 긴장감이 엿보이는 대목도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작품을 끝까지 완벽히 밀어붙이는 소설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아니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이제 막 빛을 내려는 작가가 벌써부터 그런 힘을 보인다면 앞으로 작가 스스로 진이빠져버릴 것이리라)중간의 가벼운 숨고르기는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미덕이 될 정도로 작품은 끝까지 독자들을 완벽히 밀어부친다. 또한 이정도면 끝이겠거니, 이 7년의 밤이 이렇게 이루어졌구나라는 것의 전모를 파악한 그 순간. 작가는 다시 한번 잠수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산소통을 선사하며 마지막까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희열을 안긴다.

 

이런 독자를 압도하는 글에는 물론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 스스로는 충분히 의도한 설정과 플롯이었겠지만 독자들은 그러한 디테일은 맛보지 못하고 '이야기'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아쉬움이 존재한다. 작가가 내지르는 이야기의 힘이 워낙 거대한 탓에 그 안에서 작가가 세세히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자칫 독자들의 경솔한,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읽기에 묻혀버린다. 이것은 또한 본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라 마음이 훨씬 놓인다. 작가가 말한 진실과 사실 사이의 "그러나". 이 그러나가 작가가 목표한 이 작품의 최우선의 목표였다면 최소한 이 "그러나"에 대한 독자들의 몰입은 완벽했기 때문이다. '정유정' 7년의 밤이라는 작품만큼이나 이 이름이 앞으로 반가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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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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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의 트렌드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얼마전 극장에서 조용한 흥행을 주도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작품이라든지, 고전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몇년 전 대한민국을 움찔하게 만들었던 "죽어도 좋아" 같은 작품들까지. 그뿐인가. 드라마를 보아도 내조의 여왕과 같은 작품처럼 줌마렐라 형식의 트렌디 드라마까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이다. 지금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인 "써니"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이제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익숙한 사람들의 유니크한 자아 찾기. 세상은 점점 우리가 당연히 그냥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와 엄마라는. 도저히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사랑에, 그들도 주인공이었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더 이상 공통적인 명사이길 거부하는, 하나하나의 고유명사로 태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포스트 모던의 새로운 모던함이다.

 

<달과 게>는 이런 포스트모던 속의 대세를 철저히 거부하는 작품이다. 책은 참신함의 끝은 다시 새로운 진부함이라는 듯이 책장을 십수장만 넘겨보아도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지 결말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추리소설의 대가인 듯한 저자의 수상이력이 과연 그럴까? 라는 인상을 심어주지만 만약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 작품의 초반 설정을 읽는 즉시 이 작품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식의 결말을 맺는 '성장' 소설이 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이 진부함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물론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소년, 소녀의 편에서서, 그들의 감정에 한껏 취하여 작품을 읽어나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결말에 다다라 갑자기 주인공 소년,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사이에 그들의 시선에 따라가다가 이르게 된 결말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주인공이 보였다. 만약 이 책이 요즈음의 대세를 충실히 따랐다면 이 책은 오히려 아이들의 이야기보다 어른들의 이야기로 쓰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든 남자의 며느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자신의 시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다가 사고를 당한 여성의 남편과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 안에서 깨어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요즘 트렌드에 먹힐만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필력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낼 이 이야기 대신, 그 남녀의 아이들에 '새롭게' 주목한다. 요즈음의 '쿨'한 대세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겪게되는 엄마, 아빠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아이들의 고통. 이제는 너무도 진부하고, 어른들의 인생은 어른들의 인생,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의 인생이라는 대세 속에서 옛것이 되어버린 것을 작가는 다시 한 번 들추어낸다.

 

이런 이제는 새로운 것이 되어버린 진부함, 진부함 속에 엄마와 아빠로 감추어져버리는 어른들의 사랑과 그 안에서 안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이러한 참신한 진부함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든간에 시도 자체가 말그대로 참신하게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의 이력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미치오 슈스케는 일본의 권위있는 추리소설 상은 모조리 휩쓴, 소위 잘나가는 추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그간 자신의 장기로 인정받았던 추리소설의 범주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와 함께하는 진부한 시도는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간에 상당부분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작가를 아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도 언제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자들의 기대를 과감히 깨트리고 자신이 추리소설 잘 쓰는 작가가 아닌 글 잘쓰는 작가로 거듭나길 원했던 저자는 한 번 더 참신하지만, 진부한 곳으로 파고들어가 자신과 작품에 대한 완벽한 목표를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미치오 슈스케는 달과 게를 통해서 자신의 외연을 무한히 확대시켰으며 그 방법으로 대세를 거스르는 방법을 과감히 사용하였다. <달과 게> 이 작품에 한하여 한정지어보면 그것으로 통해서 얻은 것이 더욱 많이 보인다. 하지만 대세는 괜히 대세가 아니다. 물론 그 대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이 작가들의 역할이지만 그 재조립이 과거로의 똑같은 회귀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미치오 슈스케의 다음 작품이 어떨지 몹시도 궁금해지게 하는 작품. 그것이 <달과 게>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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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조금은 생경한 아일랜드 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 아일랜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의 가장 매력적이고 지적인 소설은 어떤 향기를 취할지. 

 

 

 

 

   

  함께 책을 이야기하는 누나가 그토록 극찬하던 작가 공선옥. 

  그녀의 책이다. 무슨 망설임이 필요하랴 

  일단 주목하고 본다. 

 

 

 

 

  들녁에서 낸 라틴 문학이라면 일단 믿고 읽을 수 있다. 

  "진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환상소설이다"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갖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표덕으로서 소설치고 상당히 독특한 표지도 눈길이 간다. 

 

  

 

   

  부커상 수상작이란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요즘은 노벨상보다 부커상이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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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2011-05-0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 내내 아파서 누워있다가 하루 늦었네요.
책 선정은 미리 다 해놓았었는데..ㅜㅠ
늦었지만 죄송한 마음에 일단 올리기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