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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맨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1년 4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100이면 99는 이 책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다'의 작가가 쓴 첫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점에 눈이 갔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역시 그러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의 작가이다 보니 눈이 자연스레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턴맨>은 그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출간조차 되지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스턴맨>은 무언가 여러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언뜻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떠올리게도 만들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한번씩 봄직한 설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게 만들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품들에서 설정을 따오지는 않았겠지만(그게 더 힘들어 보인다), 작품을 읽는 내내 작품의 소재인 바닷가재잡이 라는 것만 그 유니크함을 내세울 뿐, 작품의 진행내내 '스턴맨'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모든 작품은 그 모티브가 되거나 '이런 부분은 이런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느낌이 참 닮았다'라는 작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 역시 본인만의 색채와 아우라를 뿜기 마련인데 <스턴맨>은 보는 내내 특히 중후반까지 다른 작품들과 겹치는 느낌이 들었음은 어쨌든 참 아쉬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작품의 인상 겹치기가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다른 작품과 겹치는 이미지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한 작품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정한 아쉬움은 원작의 문제인지, 편집과 번역의 문제인지 알 수 없는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책은 그 흥미진진한 내용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일단 느껴지기에는 원작에서 보이는 작가의 호흡문제보다는 번역의 문제인 것으로 보이나 작품을 읽는 내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보통 잘 쓰여진 작품, 번역이 잘된 작품을 읽으면 작품을 읽는 흐름이 끊이지 않고 물결을 치듯 잔잔히, 혹은 격정적으로의 템포변화는 있어도 딱딱 끊어지는 느낌은 없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최근에 읽었던 작품중에 이러한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할 정도의 끊어짐이 책을 읽는 내내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호흡문제와도 상관없고, 이미지의 중복과도 상관없이 아주 좋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책의 소개와 다른 책의 결말부분이었다. 책을 접하기 이전 출판사의 책에 대한 소개를 보면 광활하고 위대한 자연, 그 안에서 쌓아올린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동안 벌어지는 파란만장하고 역동적인 운명의 각성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짐작된다. 나 역시 그러한 내용을 처음 머리속에 그리며 책장을 넘겼지만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러한 부분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결말까지 이어지며 결말 역시 오히려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이, 조용한 자아찾기에 열중한다. 작가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위대한 항변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기대한 독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이 하나의 인간으로써 꿋꿋하고 소신있으며 일관적인, 그리고 매우 현실적이고 따듯한 자아획득에 모든 열정을 쏟는다. 처음에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밋밋하게 보일지 몰라도 되새겨볼수록 책 속에 조용히, 그러나 유일하게 끊임없이 흐르는 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어봄직하게 만들어내는 유일한 빛으로 영롱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