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우난골족 : 백석 시전집 ㅣ 한국문학을 권하다 31
백석 지음, 김성대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평점 :
나는 백석시인을 어떻게 아는 걸까?
학창시절엔 배운 적이 없다. 결혼 후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에게 읽어준 백석시 그림책을 통해 그리고 법정스님과 백석시인의 여인과의 인연
등을 알게 되면서 백석의 시를 접하게 된다. 월북시인이란 꼬리표가 붙은 백석시인을 내가 안다면 그의
연인 자야의 노력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애플북스에서 나온 <한국문학을 권하다> 한국문학 시리즈인 백석
시전집<여우난골족>은 모두 4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가 발표한 대표 시집<사슴>과 편집주간으로 일한
<여성지>,여러 일간지, 평론지에
기고한 시모음, 만주에 있었을 때 쓴 시, 분단 후 북한
기관지 <조선문학>에 기고한 체제찬양시와
<아동문학>의 동시모음들이 수록되어
있다.
만주에선 만주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도 이국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추위,궁핍과 병마로 고생하는 저자의 모습이 전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준치가시’,’개구리한솥밭’,’집게네 네형제들’의 시그림책은 1956년과 62년사이에 쓴 아동시들 중 특정사상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우화적이며 향토적인 언어와 소박한 공동체의 지향을 보여주는 우리 옛정서를 담고 있어 남한 아동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며 일부 문인들의 노력으로
출판된 것은 아닌지 추측해볼 뿐이다.
특히 집에 있는 ‘집게네 네형제들’편과 이 책에 수록된 ‘지게게네 네 형제’의 내용이 달라서 깜짝 놀랐다. 국내 시그림책에서 출간된 ‘집게네 네형들’중 정체성을 지킨 막내 집게만 빼고 남을 흉내낸 형제들은 모두 죽는 것으로 끝나서 아이들과 읽을 때 난감했는데
여기에선 모두 화목하게 잘 살기 때문이다. 어느 게 원본일까?
아마도 모두 지게네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며 지게게네 네 형제는 평안하게 잘 살았다는 이 부분이 백석시인의 정서와 더 가깝지 않을까?
백석시인의 동시 ‘까치와 물까치’에서 서로 쟁쟁하게 내가 더 잘났다고 뽐내더라도
마지막엔 서로 쌍을 지어 함께 한다. 우리 것을 소중히 하면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백석시인의 정서는
일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분단이전과 이후의 시가 많이 달라서 솔직히
놀랐다.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체제 찬가 시들은 이전 시에서 볼 수 있었던 격조가 퇴색되어
같은 사람인지 조차 의심하게끔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시인으로선 정말 힘들지 않았을까?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처럼 사상이 의심스런
지식인들은 집단농장으로 쫓겨나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하는데 백석시인이 그러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며 평안북도 방언과 고어 사용을 포기하지 않고 만주에서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애국적 성향이 있는 그가 어쩌다 불온적 대상이 되어
집단농장으로 가게 된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사상을 입증하기 위해 체제찬양조의 시들을 쓰게 된
것일까?
연보와 시기별로 쓴 시들만으로 백석시인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는 일이 너무 슬프며 나의 편견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45년이후의 시들을 보면 그리고 연보에서 보듯 그 이후 시인이 시 한편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 아님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윤동주가 매우 좋아했던 습작했던
백석시인! 그러고 보니 맑고 투명한 서정성과 때로는 시의 호흡이 윤동주의 일부 시와 비슷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이전엔 한번도 시인으로 불린 적이 없다가 죽은
후 시인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는 윤동주와 북에 남게 되어 남과 북 모두 잊혀진 백석 시인 모두 식민지와 분단의 상처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할 수 없는 고통으로 만주로 넘어갔다 분단되면서 북한에 남게 된 시인이 분단후 남과북 문단에서 잊혀졌지만 다시 조망 받아서 이렇게
일반 독자들과 만나니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