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이 본 6.25전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 번역총서 2
알리 데니즐리 지음, 이선미 옮김, 이난아 감수, 노영구 해제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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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산성과 석성산성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다 고속도로로 내려왔는데, 건너편에 큼지막한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피를 흘려 우리를 지켜준 혈맹국 터키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고속도로 입구에 세우다니 어쩜 이럴 수 있냐며 분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터키는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참전했고, 3번째로 큰 규모의 여단을 보내준 나라로 솔직히 이런 위치에 있다면 터키 입장에서는 화 날듯 했답니다.

터키군은 한국 땅을 밟은 순간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동안 13개 전투에서 승리하였는데, 그중 4개 전투는 한국전쟁의 운명과 전세를 바꿔 놓았으며, 한국이 주권을 찾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50년 7월 25일 터키 정부는 1개 여단을 한국에 파병할 준비가 되었다고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알렸습니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파병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터키 여단은 21일 만인 10월 19일에 부산항에 도착하여 미 제8군에 예속되었습니다.

군우리 전투
11월 26일 중공군의 공격으로 미 제8군의 우측과 후방이 적군에 포위될 지경이었습니다.
예비 병력이었던 터키군에게 다급하게 군우리로 이동하여 적군의 진입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터키군은 한국군과 북한군 그리고 중공군에 대한 식별도 없는 상태에서 열 배가 넘는 중공군과 맞닥뜨렸습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맥아더 사량관이 작전 지도에서 터키 여단을 x자로 지우며 전멸할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11월 27일부터 총 사흘간 와원, 신립리, 개천 전투에서 적군을 상대로 시간을 끓었기에 미 제8군은 철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터키 여단은 병력 15% 손실, 무기 70% 손실을 입었지만 UN 군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답니다.

김양장리 전투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주고 전선이 한강 이남으로 밀리자 1951년 1월 24일 안성에 집결하도록 터키군에 명령이 하달됩니다. 이곳에서 터키 여단은 송전리-오산리 전선에서 북쪽으로 공격을 가하도록 명령이 하달됩니다.
25일 제241터키 연대는 적군의 대대를 맹공격하여 적군을 격퇴하였습니다. 다음 날 156고지를 탈환을 목표로 공격했지만 적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10부대의 한 소대가 최후의 공격을 펼쳐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교전 중 군우리 전투 당시 희생된 터기 부사관이 작성한 노트가 발견되며, 터키 여단과 맞서는 제38중공군과 제150사단 제2연대가 군우리 전투의 적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것에 상기되어 중공군이 점령한 요새들을 하나씩 점령하였습니다. 이 작전 지역이 바로 터키군 기념비가 우뚝 솟은 언덕이 바로 그곳입니다. 김양장리 전투 결과 1,735명의 중공군을 전멸시키고, 아군은 12명의 전사자 밖에 발생하지 않은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전의를 상실한 UN 군에게 전의를 불태우도록 하였습니다.

앙카라 학교 설립
터키 여단은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전쟁터에서 데리고 와 공부시키는 기숙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학교에는 약 200명의 학생과 10명의 선생님과 행정직원이 있었으며, 학교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터키 여단이 부담하였습니다. 앙카라 학교는 UN 군 소속으로 전쟁을 하고 봉사를 했던 22개국 중 터키가 세운 유일한 학교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희생한 터키군의 활약상을 보며 용인 김양장리에 있는 터키군 참전비를 찾아가 보고 싶네요.
아래는 2014년에 할미산성을 다녀오며 발견한 터키군 참전비 포스팅 내용입니다.
https://blog.naver.com/joyjunyi/22002336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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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엠마 크뢰벨 지음, 김영자 옮김 / 민속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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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크뢰벨은 1905년 8월부터 1906년 가을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집사로 일한 독일 여성이다.
그녀는 손탁 여사가 1년간 독일로 휴가를 간 동안 임시로 임무를 대신한데 불과하지만, 그동안 보고 들은 경험담을 토대로 1909년 10월 베를린에서 "나는 어떻게 대한제국 황실에 오게 되었는가?"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바로 그 회고록을 번역한 것이다. 그녀는 독일을 출발하여 미국의 뉴욕-워싱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일본, 중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특히 그녀가 대한제국 황실에 근무한 기간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과 1906년 통감부 설치를 전후한 시기인 만큼, 그 기간 동안 대한제국 황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들이다.
이 책에서 처음 안 사실은 손택 여사라고 표현된 독일 여성의 나이가 70세였다는 것이다. 그
녀는 러시아 공사를 따라와 무려 25년간 조선에 체류하면서 서양문물을 도입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아관파천 당시 고종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신임을 얻어 '무관의 조선 황후'라고 칭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내용들은 엠마 크뢰벨이 궁중 주변에서 들은 풍문과 행적을 서술한 것에 불과하여 오류가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공식 역사 자료에도 등장하지 않는 궁중 생활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에 있다.
이 책을 통해 무려 100년 전의 뉴욕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제국 시대로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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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신 -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콘텐츠의 힘
장두현 지음 / 책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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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박물관 체험학습을 하며 이렇게 좋은 정보를 나만 알고 지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2010년 10월 큰 마음먹고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하여 첫 포스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는 큰일이었지요. 포스팅 하나를 올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몇 번을 포기할까 망설이다가 계속 이어오는 게 벌써 8년이 넘었네요.
지금은 역사와 체험학습 위주의 에셀나무홈스쿨 탐방, 이벤트 도서를 읽고 올리는 나의 책 읽기 프로젝트, 그리고 아내가 만든 손뜨개 인형과 소품을 올리는 에셀나무 공방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올리고 있습니다.

blog.naver.com/joyjunyi

에셀나무홈스쿨 네이버 검색 화면

처음 몇 년 동안은 일일 방문자 수가 2자리를 넘지 않았는데, 차츰 3자릿수를 넘기 시작하며 블로그 활동에 열을 올렸지요.
1일 1포스팅을 3~4년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덧 3자리 숫자를 넘어 4자리 많은 날은 5자리 숫자의 방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1년여 즐거운 비명을 지르다 어느 날부터 다시 3자리 숫자인 100~200명 내외로 방문자가 급감했습니다.
뭐가 문제지? 혼자 열심히 생각해 보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네요.
곰곰이 생각하다 핸드폰 카메라와 저가형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 화질이 나쁜 게 원인이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거기에 지자체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다들 큼지막한 DSLR 카메라를 뽐내는 게 은근 위축도 되었지요.
몇 년을 고민하다 중고 DSLR 카메라 보급형에 렌즈는 축복이로 결정하여 거금 1백만 원을 투자했답니다.
이렇게 카메라를 장만하고 카메라와 익숙해지기 위해 책과 강의로 정보를 습득하여 지금은 초보는 면했답니다.
사진을 찍다 보니 노출과 색감, 그리고 뿌연 하늘을 보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며 이젠 포토샵을 독학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책을 통해 배우다 보니 어렵고 따라 하기도 힘들었는데, 유튜브를 통해 공부하니 정말 쉽고 재밌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뭔가 더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둘러보다가 도서관에서 '블로그의 신' 책을 빌려왔습니다.
2015년에 발간된 책이라 지금 읽으면 없어진 기능들이 많지만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될 책입니다.
책에서 느낀 것은 계속 줄지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도 뚫는다는 것입니다.
유튜브 시대의 개막으로 블로그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일각에서 이야기하지만 네이버가 블로그를 폐쇄하지 않는 한 채널의 성격상 꾸준히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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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법칙 -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비즈니스의 허점
마이클 레빈 지음, 이영숙.김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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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심리학에서 먼저 다룬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지만 경영학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지만 그것으로 인해 고객이 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
고객 한 사람이라 우습게 여길 수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평하는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기업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다.
물론 고객이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객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대를 초과해야 한다. 기업은 고객이 항의하기 전에 깨진 유리창을 발견하고 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즈니스에서 고객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절망적인 일은 없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 기대 이상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고객은 경쟁사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고객을 실망시킨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경쟁사로 몰려간다. 이렇듯 깨진 유리창을 결정하는 것은 고객이다.

개인의 삶에서 강박증은 고통스러운 질병일지 몰라도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습관이다.
불평하는 고객은 이미 당신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들은 당신에게 쉽게 분노하고 원망할 것이다.
목소리가 커지고 불쾌한 말들을 내뱉을 수도 있다. 이때는 반응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당신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반복해 말해주어야 한다. 고객의 행동이 아무리 지나쳐도 직원이 무례하게 행동할 수는 없다. 경영자는 깨진 유리창에 대해 강박관념과 강박행동을 가져야 한다.

고객은 당신 회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단골이 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직원 하나하나는 미약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회사의 첫인상을 고객에게 심어줄 수 있다. 직원들에 대해 철저한 교육과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여야 하며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심지어는 해고까지 염두해 두어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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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정상규 지음 / 휴먼큐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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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영웅, 아니면 유별난 사람. 과연 이들은 왜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시작은 을미사변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을미의병을 기원으로 한다.
이후 비폭력 민주적 독립운동인 3.1운동으로 민족의 염원이 타올랐지만, 비폭력 방식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이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무장 투쟁 및 의열 투쟁을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들 수 있다.
암울한 일제시대를 지나 열강의 분할통치를 받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미국의 군정으로 인해 일제 청산이 되지 않은 채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교육이 안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기리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에 불과하다 보니 그들의 업적이나 활동 상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안타까이 여겨 '독립운동가 앱'을 개발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서거일을 기준으로 알림을 보내주고 있다.
그날만큼은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섞인 노력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모두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앱'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카페'에 가입하여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남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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