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인자들 - 그들은 어떻게 권력자가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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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열광하며 금메달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인간이라면 최고의 자리를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숨은 그림자처럼 성공의 밑거름이 되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제갈공명, 관상으로 유명해진 한명회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실록 뿐만아니라 개인 저작품까지 많이 남아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 자료가 방대합니다.
조선시대 왕좌에 앉기까지와 친정을 펼치기까지 최고의 지존인 왕을 보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도왔으며, 최대의 정적인 정몽주를 피살한 왕자 이방원.
하지만 그는 정몽주를 피살했다는 이유로 역성혁명의 공신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세자 책봉에도 밀려 나이 어린 막내 동생이 세자에 오르는 것을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 신본주의를 내세우는 정도전의 견재 속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비운의 왕자 이방원.
잠룡의 세월, 칼을 갈던 이방원은 정도전의 반대하는 세력을 일격에 제거하고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임사홍이란 이름을 아시나요?
임사홍은 세조와 예종, 성종과 연산군까지 4명의 임금을 섬기며 예종과 성종의 사돈으로 연산군의 총예를 받으며
훈구파 중 궁중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막강한 인척관계를 형성한 임사홍은 차세대 권신으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다보니 권신의 횡포에 질린 사림들은 그를 반대하기 시작하여 증거도 없이 유배를 보냅니다.
 20년 만에 유배에서 해배되어 조정에 출사한 임사홍.
3~4년 동안 조정에 출사했지만 자신을 반대한 세력에 대한 철저한 복수극인 '갑자사화'를 일으킵니다.
지산의 복수를 완수한 후 자신 또한 죽음의 길을 선택한 임사홍. 그의 인생이 참 기가막힙니다.

 붕당정치의 핵심, 송익필의 이름을 아시나요?
좌의정 안당가문과 얽힌 송씨 집안의 비극은 아래 취재 글에서 만나보시죠.
http://blog.naver.com/joyjunyi/220761710004

2017년에 [조선의 2인자들] - 2편 이이첨, 김자점, 송시열, 홍국영, 김조순, 이하응, 민자영, 김홍집에 대해 출판될 예정입니다.
이들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을까요?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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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럼 키워라 - 조선 왕실 500년 천재 교육의 비밀
백승헌 지음 / 이지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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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누구나 바라고 희망하는 위치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그리 쉬웠다면 누구나 바라고 희망하지는 않았겠죠?
조선시대 500년 27명의 왕들을 돌아보며 어떤 왕이 훌륭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세종, 성종, 영조, 정조 4명의 훌륭한 임금이 있었다면 중종, 선조, 연산군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한 왕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한 저자는 어렸을 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왕자의 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전인적 천재 교육이었다.


원자가 태어나면 왕실은 보양청을 설치하여 3세까지 보좌하고 교도하는 일을 했다.
원자로 4~6세로 원자로 책봉되면 보양청을 강학청으로 바꾸며 이때부터 특수한 영재 교육을 받게 된다. 
주로 천자문, 소학, 격몽요결 등으로 한자 습득과 유교 교육이 주류였고, 언문과 제조도 함께 배웠다.
원자는 8세 이후가 되면 세자에 책봉된다. 세자는 서연을 통해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과 역량을 본격적으로 교육받는다.
공부시간은 오전은 조강, 오후는 주강, 저녁은 석강으로 짜여 있는데, 주로 배운 것을 암송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왕세자도 시험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왕세자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법강이나 회강이 매일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시험은 '고강'으로 과거 응시자들이 보는 구술시험으로 5일에 한 번 고강을 실시하여 성적을 장부에 기록했다.
시험은 시강관 앞에서 왕세자가 책을 외우고 뜻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책 전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경서의 글귀를 써넣은 대나무 쪽을 통에 넣어서 그중 하나를 뽑게 했다.
그렇게 해서 뽑은 글귀를 '고생'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자신이 뽑은 대나무 쪽의 내용을 알린다"는 것이다. 
왕세자는 어떤 글귀가 씌어진 대나무 쪽을 뽑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다 외워야 제대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나, 왕 안 해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정말 왕이 되기까지 스트레스와 압박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많은 왕들이 후손을 두지 못하고 단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해 본다.

 이런 교육시스템이 천재 교육으로 이름난 유대인의 교육 법과 닮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슷한 면도 있지만 억지 춘향으로 꾀어 맞춘 것도 있다.

과연 오늘날 이런 교육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아이들이 순순히 이런 교육을 받아들일까?
조금은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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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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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신씨", 그녀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이에 이어 대한민국 지폐에 얼굴을 올렸죠. 항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지만 말이죠.
신분과 남녀 차별로 압축할 수 있는 조선시대에 뛰어난 글 솜씨와 그림으로 이름을 남긴 신사임당.
하지만 그 아들 이이가 남긴 어머니 행장에는 이름이 '모'라고 나옵니다. 한마디로 이름이 없다는 뜻이죠.
이렇다 보니 배일에 가린 그녀의 삶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나 봅니다.
 한편으로는 극성스러운 어머니로 맹자의 어머니와 신사임당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양육법이나 훈계의 내용으로 소설이 흘러가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 첫사랑에 이야기의 포커스를 맞춥니다.
나름 신선한 주제와 소설의 상상이 결합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직접 만나보시죠.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던 사임당의 어머니는 내리 딸만 다섯을 낳는다.
그중에 둘째, 인선이란 이름을 갖지만 사내 동생을 보라고 '개남'이라는 아명으로 불립니다.
어차피 여자아이에게 이름이란 무의미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던 아홉 살 난 여자아이.
그녀가 조심스럽게 종이에 쓴 이름은 '항아(恒我)', 항상 나이고 싶었던 여자아이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뛰어난 재주와 머리를 타고났지만 딸로 태어난 그의 운명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딸 만 다섯이다 보니 집안에서는 대들보 몫까지 책임져야 했던 소녀랍니다.

 이런 운명이라도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상대는 정승댁 서자 출신의 '준서'라는 두 살 위의 청년이자 친구 초롱이의 오라버니입니다.
초롱이가 다리를 다쳐 병문안을 다녀오며 조금씩 연모의 감정을 품던 그녀는 집안의 대들보라는 운명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거기에 떳떳하게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서자라는 신분의 남자로 인해 더욱 괴로움이 더 합니다.
양반가에서 이를 알면 큰일이겠지만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운명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살 몰락한 양반가의 외아들 이원수를 만나 부모의 뜻대로 결혼하여 살아가지만, 첫사랑 준서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준서가 죽었다는 편지에도 잊지 못하고 그림과 그의 서신을 고이 간직하며 30년 넘게 기억의 편린을 간직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녀의 부모님의 간절한 부탁에 준서가 거짓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준서 역시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가 남긴 동심결을 평생 옷고름에 간직한 채 역모로 처형을 당합니다.

 한 평생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 연리목을 보는 장면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힘겨운 생을 지탱하게 해 주었던 슬픈 사랑이 그녀에게 불씨가 되어 아름다운 작품과 글이 남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와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이 적절히 조화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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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의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사는 법을 깨닫게 될까 -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25가지 인생질문
찰스 E. 도젠 지음, 정지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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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공평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잔인하다고 해야할까?
한 번뿐인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다른 삶을 살게되는 인간의 한계를 보며 느끼는 한마디 입니다.

노년은 인생의 무기력함 속에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리라. 이런 상실은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더운 여름 날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날, 기쁜일 슬픈일 모두 지나가고 살아온 생애만큼 후회만 남는 노년.
죽음을 앞에두고 욕심도 명예도 자존심도 필요 없는 노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 보게 됩니다.

 책 제목은 책을 통해 인생의 현명한 해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 내용을 다 읽어 보았지만, 인생에 대한 해답이 아닌 요양원에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 같네요.
25가지 인생에 대한 질문과 답을 이어내 보지만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낍니다.
암투병으로 힘들어 하시던 중에도 힘겹게 손 흔들어 주시고 힘들게 뭐하러 왔냐며 얼른 집에 가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힘들 때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던 아버지, 무의식 중에 '아이고, 하나님 얼른 데려가 주세요' 되뇌였던 아버지.
마지막 힘겨운 숨을 쉬며 자식 얼굴을 보고 돌아가시려 3시간을 기다리셨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내세 신앙을 꿈꾸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윤회 사상을 주장하는 불교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뭔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기복 신앙보다는 '사람이 부처다' 라는 인본주의 사상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어차피 한 번 죽을 인생이라면 후회를 남기지 말고 하고픈 것은 모두 해 보고 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죽음을 앞에 두고 인생의 답을 찾으면 이미 늦을 것이다.
오늘도 하고픈 것이 생각 난다면 버킷 리스트에만 적어 두지 말고 지금 바로 실행해 보자.
그게 인생의 답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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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너머의 역사담론 1
오항녕 지음 / 너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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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시절을 보낸 시기입니다.
선조의 학정과 붕당정치 그리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임금의 몽진을 넘어 명나라에 귀화하려는 조짐까지.
정말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우고픈 수치의 시대입니다.

 IMF 때 나라를 팔아먹은 김영삼처럼 선조는 조선이란 나라를 들어 명나라에 바치려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백성들은 도성을 불태우고, 몽진 행렬에 돌을 던지고 욕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명나라로 귀화하려는 논의가 진행되자 왕의 일과를 기록하던 사관들은 사초를 불사르고 고향으로 도망을 칩니다.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싸우는 이순신과 나라를 지키려 일어난 의병장들을 역모로 징치하는 선조.
거의 미쳐 있는 인상을 풍기는 선조와 대비된 인물이 바로 광해군입니다.

 왜란 당시 선조에게서 분조(정권을 나누어 다스림)를 받아 평양을 수비하고,
강동 6주를 돌며 병사를 모집하고 왜군에 점령된 강원도를 오가며 군사를 독려하던 광해군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선조에 실망한 백성과 후대의 인물들은 광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광해의 친정은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광해군은 왜 폐위되어야만 했을까?
광해군이 폐위된 이유는 대동법의 시행에 대한 의지 부족, 궁궐 등 토목공사로 인한 재정 및 민생의 파탄,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사로 인한 정치 기반 약화, 형과 아우 및 인목대비에 대한 탄압 때문에 생긴 민심 이반 등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는 외교는 기회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됐고 매관매직, 여알 정치는 덤으로 따라왔다.
한마디로,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닌 왕 자신을 안위와 기쁨을 위한 정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라도 성리학 사회인 조선에서 어떻게 왕을 폐지할 수 있었을까?

 인조반정 이후 조선의 성리학은 주자학으로 대체된다.
그 사상적 기반은 명나라는 어버이 나라이기 때문에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명나라가 금나라에 멸망한 이후에도 명나라를 이어받은 나라가 조선이라고 표명하며,
죽은 사람의 묘표에 뜬금없이 "有明朝鮮國" 이란 단어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조선이란 나라는 '명나라의 번국이다'라고 정의하며 번국의 왕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과연 조선의 사대부들의 사상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광해는 왜 이렇게 결과가 뻔히 보이는 파국의 길을 갔을까요?
그건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인 선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왕인 자신보다 인기가 있는 이순신을 죽이고, 자기보다 앞서 대중을 이끄는 의병장들을 죽이고,
신진사대부들이 정여립을 위주로 모이자 역모로 처단하고 등등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죽였던 왕이 바로 선조입니다.
그런 선조의 눈에 분조를 통해 국정을 장악하고 백성들을 통솔해 전쟁을 이끄는 광해는 죽여야 할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날선 왕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암담한 현실이 아마도 무기력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정사는 아니지만 이런 추측을 통해 광해의 정신질환 또는 분열 증상이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조선의 아픈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명' 나라를 '미'로 대체한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독립은 과연 언제쯤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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