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 서로를 안아주는 따스한 위로와 공감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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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자연풍경, 색감도는 정물, 아름다운 여인, 성경 속의 창조와 심판등 화가의 손을 통해 아름다운 그림들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그린 화가들이 삶은 어땠을까요? 지금의 명성만큼 그들이 살았을 때도 존경을 받았을지도 궁금합니다.

​책을 통해 만나 본 화가들의 모습은 그리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희,노,애,락을 동일하게 느끼며 그 중에서도 한가지에 더 애착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지요.


"우리 인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 그 중간쯤에 존재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는가. 쳇바퀴 도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황폐해진 삶을 산다고 느끼지는 않았는가.

감정을 거세당한 채 묵묵히 회사형 인간으로 페르소나(심리적 가면)를 쓰고 사는 것일까?

이런 피례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림들이 있다. 바로 서양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풍만한 여성들, 흔히 "누드'라고 부르는 그림들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누드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에도 많이 제작되지만 뚱뚱하다 싶을 정도로 듬직한 여성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살 냄새 풀풀 나는 우리의 누이이자 엄마 같은 육체를 주로 그린다.

그녀들은 마치 다산의 여왕처럼 관능적이고 육감적인데 한눈에도 에로스와 생명력이 넘친다.

살찐 여성들이 싫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다정해 보이는 이 충만한 여자들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풍만한 여성들은 더 이상 비본질적이고 창백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원초적인 여자들은 당신을 현재의 삶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누드를 보는 일반적인 생각은 야함, 관음증, 색욕 등 안 좋은 이미지인데 반해, 책에서는 생명력과 대지모의 이미지를 어필하며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화가의 삶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존 러시킨과 존 에버렛 밀레이,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러스킨의 아내 에피 그레이. 이들의 결말은 어떨까?

한 나라를 뒤흔들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하지만 그녀를 쥐락 펴락 했던 가브리엘 폴리냐크 백작 부인과 왕실의 여자화가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이들의 우정은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세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연인, 그 중에 누구를 선택했을까? 그들의 사랑에 질투의 화신이된 뭉크.

뭉크는 그림 속에 한 여자오 ㅏ사랑을 나누는 남자의 얼굴에 자신을 그렸고, 이 모습을 지켜보며 화를 내는 남자의 모습을 그녀의 남편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찌질한 복수일까? 아니면 그림을 통해 자기 치료를 한 것일까?

반 고흐는 압생트라는 독주에 중독되어 강렬한 노란색을 사용했다. 과연 그는 알콜 중독으로 자살했을까?

게으른 것인가 아니면 천재이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지 않은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 작품 중 미완성 작품이 3분의 1 가까이 된다. 과연 그는?

잘나가던 증권 거래인을 그만두고 뱃속의 아이까지 일곱 식구를 내 팽게친 폴 고갱. 그의 말년은 어땠을까? 과연 그의 아내는 그를 받아 들였을까?

은행가 아버지를 통해 경제적 도움을 받았던 폴 세잔은 아버지의 맘에 들지 않는 여성과의 결혼 생활을 어떻게 꾸려 갔을까?

 책을 통해 유명한 작품과 화가들의 삶과 뒷 이야기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미술을 왜 우리는 학교에서 낭문주의, 바로크, 야수파등 무조건 외우는 법으로 공부했을까요?

참,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공공장소나 지하철, 버스에서는 절대 읽지 마세요.

후방주의!! 잘못하면 변태 취급 받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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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은 왕 - 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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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잡게된 계기가 참 남다르다.

경기도 광주시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을 하며 주로 역사나 체험학습 위주로 글을 써 왔는데 이젠 쓸거리가 떨어졌다.

이런 난감함에 네이버에서 경기도 광주 관광으로 검색하니 광주 지역의 주요 시설과 역사적 기념물이 지도에 검색됩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순흥군안당묘'가 검색이 됩니다. 안당, 안당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맞다! 인조 반정으로 공신이 된 송사련을 주인공으로 한 '금강'이라는 역사소설에서 안당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좌의정 안당의 누이인 감정은 안당의 아버지 안돈후와 비첩인 중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한마디로 누이이긴 하지만 서매, 즉 노비의 누이입니다. 서자도 인정하지 않던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서매는 더한 차별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안당가문에서는 서매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매인 감정을 말단 군인인 송인에게 시집을 보내 태어난 아들 송사련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고 안당의 자녀들과 동일하게 학문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서자들이 관직에 나아갈 길은 의원과 관상감 말고는 없기에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사련을 관상감에 입직시킵니다.

 서자 출신인 송사련은 자신의 신분적 한계 때문에 세상을 곧게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삼촌이기도 한 안당가문이 못마땅했던 송사련은 안당의 부인이 죽자 방명록을 빼돌려 안당의 앙숙인 남곤에게 삼촌을 역모죄로 고소한다.

정통성이 약했던 선조는 이에 안당 가문을 역모죄로 처형하고 고변의 주동자인 송사련을 정3품 당상관에 임명하고 안당 가문의 재산을 취하게 했다.

이 참혹한 사건을 '신사무옥'이라고 한다. 이는 무고에 의한 옥사라는 뜻이다.

이렇게 벼락 출세와 부자가 된 송사련의 아들 송익필은 학문을 통해 관직에 나아가려 하지만 서자도 아닌 서손의 한계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는 제자 김장생을 가르치며 논어 옹야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인지생야직', 즉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곧음'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또한 처가가 있는 파주 지역으로 이사하며 이이, 성혼, 정철등과 어울리며 그의 학문에 매진한다.

이들은 선조를 세운 동인계열과 대립하며 서인이라는 이름을 얻어 붕당정치의 시작을 알리지만 결국은 동인 이산해 손에 서인이 뿌리 뽑히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안당 가문의 무죄가 입증이 되고 가문의 복수를 위해 일어선 안당의 손자 안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송익필은 안당가문의 노비 신분으로 되돌아 간다.

추노꾼의 추격 속에 은둔 생활을 하던 송익필은 최후의 일전을 위해 정철과 손잡고 세자책봉을 준비하지만

사소한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서인에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조선의 예학의 시작인 송익필의 문하생은 김장생에 이어 송시열까지 이어진다.

서인들의 세상을 꿈꾸고 관직을 꿈꿔오던 송익필은 선조 32년 추노꾼들을 피해 은거중이던 충청도 당진에서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비운의 천재 송익핑이 세상을 떠난 24년 후인 광해군 15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서인이 화려하게 부활하며 그 이름이 다시 살아났다.

그후 영조 27년  충청도관찰사 홍계희의 주청으로 송익필 사후 150년 만에 노비 신분에서 신원되어 통덕랑 행사헌부 지평(정5품)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다시 150여 년이 흐른 순종 3년  송익필을 규장각 제항(정2품)에 추증하고 시호를 '문경'으로 내렸다. 

 안당가문과 송사련가문의 처절한 복수극은  경기도 광주시 블로그에 취재글로 만나보겠습니다.

다른 책들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한 후에 종합하여 글을 올릴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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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와리 상인 - 사막의 소상인에서 세계 비즈니스 대부로
오화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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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하면 생각나는 건 세게사 시간에 배운 인더스 문명, 불교와 석가모니, 카스트 제도, 영국 식민지, 간디의 무혈혁명,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타타그룹 정도랄까?

솔직히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저개발국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유대인이고, 유대인을 능가하는 사람은 아랍상인이며, 아랍상인을 뺨치는 사람은 인도상인이라는 말이 있다.

인도상인 가운데서도 으뜸은 단연 '마르와리'다. 그래서 마르와리는 '인도의 유대인'이라고도 불린다.

1부에서는 이런 마르와리 출신으로 성공한 기업과 기업가들에 대해 소개해 줍니다. 이를 통해 과연 이들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닌지를 말해 줍니다.

'마르와리'는 라자스탄 지역 출신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척박한 땅 라즈푸나 전 지역에서 나타나는 비참한 자연 재앙들은 마르와리의 삶을 제한하고 결정했다.

라즈푸타나는 인도의 용맹한 전사들인 '라즈푸트 왕자들의 땅'이란 의미로 라자스탄과 구자라트를 포함하는 인도의 북서부 일대를 말한다.

그러나 열약한 지형적 상황은 오히려 마르와르 지역 사람들이 모험과 사업을 즐기도록 유도했다.

힘들고 고된 상황을 참아내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경제적 관념에 대한 천부적 자질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또한 대가족 제도하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동원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간 협업을 통해 각자의 독립된 재산을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이런 대가족 제도는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도제 교육을 통해 전문성과 강한 책임감을 갖제 하였고, 자신의 책임과 권한하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게 하였다.

마르와리는 사업의 발전을 위해 마르와리 공동체의 돈을 투자함으로써 훈디와 어음들을 풍부하게 다루었다. 이를 바탕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로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인도 식민지 정부는 1차 세계대전 동안 주요 투기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정부규제는 마르와리가 산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이를 통해 단순한 무역업에서 이제는 산업체를 운영하는 기업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수익으로 민족주의 운동 뿐만아니라 독립운동에 많은 공헌을 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에 직면하며 1932년 설탕에 대한 보호관세가 부과되자 수많은 설탕공장이 인도에 설립되었고 정부의 육성정책에 따라 시멘트 사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마르와리는 이들 산업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유럽과의 무역로를 군대를 사용해 안전하게지키기 위한 군비 지출이 증가했다.

1945년 인도의 민족주의가 고양되자 불안감을 느낀 외국계 회사들은 헐값 매각을 자산을 구입하며 외형을 키웠다.

1947년 독립 후 인도정부는 산업의 여러 부문을 규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독과점 기업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으로 마르와리의 성장을 도왔다.

이와 더불어 1951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게획을 실시하여 민간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하여 마르와리의 성장을 부추기는 주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마르와리 상인들의 발생과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의 성장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지원아래 고도 성장을 이룩했지만 그 이전에 무모하리 만큼 아무것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마르와리들의 도전 정신과 기회 포착이 정말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들 특유의 대가족제도와 인적네트워크. 이를 통한 훈디제도를 이용한 어음 유통. 종합적인 가족 네트워크를 통한 성장과 발전.

기술, 혁신, 창조 등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에 바쁜 오늘날.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한 인도의 마르와리 상인의 성공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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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즐거움 - 7:5:1 정리 법칙으로 일상이 행복해지는 기술
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박선형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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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되어 색 바랜 셔츠, 축 늘어진 면 소재의 속옷, 한참 지난 올드 패션의 자켓, 조금만 손보면 다시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외투......

아마 옷장을 뒤져보면 언재 이런 옷을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옷까지 참 많은 것들이 쌓여 있습니다.

애매한 것들을 정해 주는 '애정남'처럼 버려야 할 것, 보관할 것을 확실하게 구분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에 든 '버리는 즐거움'.

 작가 야마시타 히데코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다가 업무로 동경에 혼자 거주하게 됩니다.

혼자 살면서 버릴 것, 보관할 것들이 명쾌하게 구분되어 버릴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 斷 : 넘쳐나는 물건을 "끊는다"

샤 捨 : 불필요한 물건을 "버린다"

리 離 : 끊고 버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건의 집착에서 "벗어난다".

단샤리는 이 책의 핵심입니다.

​수납 공간에 물건을 정리할 때도 보여주지 않는 수납이 70퍼센트, 보이는 수납 50퍼센트, 보여주는 수납 10 퍼센트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백분율하면 총 합이 100이어야 하는데 이건 왜 130퍼센트 일까요?

이런 질문을 저만 하는 건지 이 책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단샤리의 근본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소비절감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물들이 잘 사용되게끔 집중하는 것입니다.

행주를 빨아서 말리는 수고나 시간보다는 일회용 키친타올을 사용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가득찰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반이상 차면 바로 바로 버리고,

손님용으로 마련한 고급스러운 접시나 유리잔을 선반에 모셔 놓지말고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꺼내 쓰도록 하는 것이다.

단샤리를 실천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물건을 무신경하게 쓰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단샤리를 응용하면 소유에서 벗어나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므로 주위 사람들과 물건을 나누고 공유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다.

​당장 주위를 둘러보자 혹시 남에게 흘려 보내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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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성곽 내고향 서울 4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엮음 / 서울특별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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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성곽이 3천여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서울에 있는 성곽은 몇개나 될까?

한양도성, 몽촌토성, 남한산성, 북한산성, 행주산성.......... 5개 이외에는 별로 생각나는게 없네요.

내고장서울 시리즈로 4번째 책인 '서울의 성곽' 책을 통해  서울의 성곽을 만나봅니다.

<백제시대> - 3개

   위례성, 풍납리토성, 몽촌토성

<삼국과 통일신라> - 12개

  하남시 춘궁동, 교산동 유적, 아차산성, 주장성, 이성산성, 대모산성, 삼성동토성, 양천고성, 아차산 일대 보루군, 불암산성, 장한성, 호암산성, 행주산성.

<고려시대> - 2개

  남경 경영과 궁성, 중흥산성

<조선시대> - 5개

  서울성곽, 북한산성, 탕춘대성, 남한산성, 아차산 장성

총 22개의 성곽이 있습니다.

 성곽 하나 하나 위치와 성곽의 형태에 대해 자세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그래도 제가 살고 있는 광주의 남한산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 내용을 보며 왠지 자꾸 작아지네요.

남한산성의 명칭이 '남한산'에 있어 남한산성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백제 건국 당시 서울 지방을 가리키는 '한산(漢山)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산을 중심으로 남쪽 인근을 '남-한산'이라 하여, 특정한 산을 가리키는 지역명칭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자세한 정보와 내용을 5천원에 판매하니 기회가 될 때 책을 구매해 두세요.

저는 서울 시청 지하에서 책을 구매했답니다. 1권~8권까지 나왔는데 일부 책은 품절이라 구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5권은 서울의 시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니 단종의 부인과 관련 있는 여인시장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겠네요.

서울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참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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