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와리 상인 - 사막의 소상인에서 세계 비즈니스 대부로
오화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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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하면 생각나는 건 세게사 시간에 배운 인더스 문명, 불교와 석가모니, 카스트 제도, 영국 식민지, 간디의 무혈혁명,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타타그룹 정도랄까?

솔직히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저개발국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은 유대인이고, 유대인을 능가하는 사람은 아랍상인이며, 아랍상인을 뺨치는 사람은 인도상인이라는 말이 있다.

인도상인 가운데서도 으뜸은 단연 '마르와리'다. 그래서 마르와리는 '인도의 유대인'이라고도 불린다.

1부에서는 이런 마르와리 출신으로 성공한 기업과 기업가들에 대해 소개해 줍니다. 이를 통해 과연 이들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닌지를 말해 줍니다.

'마르와리'는 라자스탄 지역 출신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척박한 땅 라즈푸나 전 지역에서 나타나는 비참한 자연 재앙들은 마르와리의 삶을 제한하고 결정했다.

라즈푸타나는 인도의 용맹한 전사들인 '라즈푸트 왕자들의 땅'이란 의미로 라자스탄과 구자라트를 포함하는 인도의 북서부 일대를 말한다.

그러나 열약한 지형적 상황은 오히려 마르와르 지역 사람들이 모험과 사업을 즐기도록 유도했다.

힘들고 고된 상황을 참아내는 인내와 끈기 그리고 경제적 관념에 대한 천부적 자질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또한 대가족 제도하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동원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간 협업을 통해 각자의 독립된 재산을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이런 대가족 제도는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도제 교육을 통해 전문성과 강한 책임감을 갖제 하였고, 자신의 책임과 권한하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게 하였다.

마르와리는 사업의 발전을 위해 마르와리 공동체의 돈을 투자함으로써 훈디와 어음들을 풍부하게 다루었다. 이를 바탕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로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인도 식민지 정부는 1차 세계대전 동안 주요 투기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정부규제는 마르와리가 산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이를 통해 단순한 무역업에서 이제는 산업체를 운영하는 기업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수익으로 민족주의 운동 뿐만아니라 독립운동에 많은 공헌을 한다.

 1929년 세계 대공황에 직면하며 1932년 설탕에 대한 보호관세가 부과되자 수많은 설탕공장이 인도에 설립되었고 정부의 육성정책에 따라 시멘트 사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마르와리는 이들 산업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유럽과의 무역로를 군대를 사용해 안전하게지키기 위한 군비 지출이 증가했다.

1945년 인도의 민족주의가 고양되자 불안감을 느낀 외국계 회사들은 헐값 매각을 자산을 구입하며 외형을 키웠다.

1947년 독립 후 인도정부는 산업의 여러 부문을 규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독과점 기업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으로 마르와리의 성장을 도왔다.

이와 더불어 1951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게획을 실시하여 민간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하여 마르와리의 성장을 부추기는 주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마르와리 상인들의 발생과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의 성장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의 지원아래 고도 성장을 이룩했지만 그 이전에 무모하리 만큼 아무것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는 마르와리들의 도전 정신과 기회 포착이 정말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들 특유의 대가족제도와 인적네트워크. 이를 통한 훈디제도를 이용한 어음 유통. 종합적인 가족 네트워크를 통한 성장과 발전.

기술, 혁신, 창조 등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에 바쁜 오늘날.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한 인도의 마르와리 상인의 성공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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