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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은 왕 - 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손에 잡게된 계기가 참 남다르다.
경기도 광주시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을 하며 주로 역사나 체험학습 위주로 글을 써 왔는데 이젠 쓸거리가 떨어졌다.
이런 난감함에 네이버에서 경기도 광주 관광으로 검색하니 광주 지역의 주요 시설과 역사적 기념물이 지도에 검색됩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순흥군안당묘'가 검색이 됩니다. 안당, 안당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맞다! 인조 반정으로 공신이 된 송사련을 주인공으로 한 '금강'이라는 역사소설에서 안당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좌의정 안당의 누이인 감정은 안당의 아버지 안돈후와 비첩인 중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한마디로 누이이긴 하지만 서매, 즉 노비의 누이입니다. 서자도 인정하지 않던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서매는 더한 차별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안당가문에서는 서매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매인 감정을 말단 군인인 송인에게 시집을 보내 태어난 아들 송사련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고 안당의 자녀들과 동일하게 학문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서자들이 관직에 나아갈 길은 의원과 관상감 말고는 없기에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사련을 관상감에 입직시킵니다.
서자 출신인 송사련은 자신의 신분적 한계 때문에 세상을 곧게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삼촌이기도 한 안당가문이 못마땅했던 송사련은 안당의 부인이 죽자 방명록을 빼돌려 안당의 앙숙인 남곤에게 삼촌을 역모죄로 고소한다.
정통성이 약했던 선조는 이에 안당 가문을 역모죄로 처형하고 고변의 주동자인 송사련을 정3품 당상관에 임명하고 안당 가문의 재산을 취하게 했다.
이 참혹한 사건을 '신사무옥'이라고 한다. 이는 무고에 의한 옥사라는 뜻이다.
이렇게 벼락 출세와 부자가 된 송사련의 아들 송익필은 학문을 통해 관직에 나아가려 하지만 서자도 아닌 서손의 한계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는 제자 김장생을 가르치며 논어 옹야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인지생야직', 즉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곧음'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또한 처가가 있는 파주 지역으로 이사하며 이이, 성혼, 정철등과 어울리며 그의 학문에 매진한다.
이들은 선조를 세운 동인계열과 대립하며 서인이라는 이름을 얻어 붕당정치의 시작을 알리지만 결국은 동인 이산해 손에 서인이 뿌리 뽑히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안당 가문의 무죄가 입증이 되고 가문의 복수를 위해 일어선 안당의 손자 안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송익필은 안당가문의 노비 신분으로 되돌아 간다.
추노꾼의 추격 속에 은둔 생활을 하던 송익필은 최후의 일전을 위해 정철과 손잡고 세자책봉을 준비하지만
사소한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서인에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조선의 예학의 시작인 송익필의 문하생은 김장생에 이어 송시열까지 이어진다.
서인들의 세상을 꿈꾸고 관직을 꿈꿔오던 송익필은 선조 32년 추노꾼들을 피해 은거중이던 충청도 당진에서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비운의 천재 송익핑이 세상을 떠난 24년 후인 광해군 15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서인이 화려하게 부활하며 그 이름이 다시 살아났다.
그후 영조 27년 충청도관찰사 홍계희의 주청으로 송익필 사후 150년 만에 노비 신분에서 신원되어 통덕랑 행사헌부 지평(정5품)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다시 150여 년이 흐른 순종 3년 송익필을 규장각 제항(정2품)에 추증하고 시호를 '문경'으로 내렸다.
안당가문과 송사련가문의 처절한 복수극은 경기도 광주시 블로그에 취재글로 만나보겠습니다.
다른 책들을 통해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한 후에 종합하여 글을 올릴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