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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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가지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아~! 고전. 안 읽은 책이라면 이해하기 쉽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대표작 [데미안] 서문에서 "모든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 그 자체"라 말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의 인생길과 나 자신을 찾는 것, 그래서 나의 30대가 그렇게도 힘들었나 보다. 아직도 나 자신을 찾고 나의 길을 찾느라 정신없지만 하루하루 삶을 버텨내고 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여행은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였을까? 주말이면 역마살이 낀 것처럼 경기도 내외를 주야장천 달려 사진 찍고, 기사 쓰고, 블로그 포스팅하고, 이젠 유튜브까지 만들고...

우리 삶은 한 편의 아름다운 여정이다. 진정한 여행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각자가 지닌 세상살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 루이스 L. 헤이는 [미러]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치유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라고 말한다. 타인과 사랑을 기반으로 맺은 관계는 둘이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사랑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감정이 깊을수록 상처의 골은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고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슬픔과 후회,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치유한 후에 다시 타인과 사랑을 해야 한다. 손상된 사랑의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앙드레 지드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몇 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는 항상 우리를 괴롭혔다. 게다가 한 번 선택하고 나면 다시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경우 과거에 사로잡혀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된다. 선택은 오직 자기 자신만 발견하기 위한 것이고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만약 잘못된 선택으로 비록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미래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이 아쉽고, 저것을 선택하면 이것이 아쉬운 것이 인생의 영원한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현재 이 순간'에 있다. 행복은 지금이 순간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행복감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행복이 미래에서 올 것이라며 막연히 기다린다. 그러나 현재의 순간에 감사하지 않고, 과거에 있었던 일에 집착만 한다면 행복은 올 수 없다.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톨스토이는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현재의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 순간에 우리의 모든 삶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순간에 자기의 온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카르페 디엠' 이 말은 현재를 즐겨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항상 보다 좋은 것을 꿈꾸며 살기도 하고 동시에 과거에 놓쳐 버린 것들에 대해 후회와 고통 속에 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지금 말하는 순간 영원히 과거 속으로 흘러가 버린다.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대부분 자신의 삶을 즐기지도 못한 채 공허한 삶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생애는 희망에 의해 끊임없이 기만당하면서 죽음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슬픈 것은 결국 시간에 얽매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음에 이르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요원한 희망을 좇는 것일까? 삶은 따뜻한 봄날에 꾸는 꿈이고, 죽음은 그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무엇보다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들이 나의 결심을 비웃고 경멸할지라도,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내면에서 나오는 의지에 있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태어난 날(birth)부터 죽는 날 (death)까지 좋든 싫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choice)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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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김훈종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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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삶을 꿰뚫는 촌철살인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책. 하지만 너무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다.

동양 철학, 그 시작은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시작되었다. 수렵채취에서 농경으로 정착했을 때보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변화할 때 농업 생산력은 극적으로 증대된다. 당연하게도 그에 비례해 인구가 늘게 되고 생산력 증가에 따른 여유 시간은 철학을 잉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제자백가 사상이 나타나 중국 철학사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늘만 살던 세상'에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으로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창궐하는 순간, 인류는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사는' 불행하고 가련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한가하다는 의미의 '한閒'은 문 틈새로 달을 쳐다보는 형상이다. 수렵에서 벗어나 농경을 하게 되면, 평화로움이 찾아오고 문 틈새로 실컷 달 구경이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농경이 시작되니 달 구경은커녕 샛별 만 구경하는 신세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농경이 불러일으킨 우리 삶의 족쇄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 오늘의 자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 내일만 걱정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공자는 그 시점에 탄생한 신인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자기를 극복하고 결국 오늘을 제대로 사는 인간이 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역사의 다른 이름은 반성이다. 성찰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경주마는 한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성찰 없는 권력은 잔혹하다. 독재를 부르고, 피를 부르고, 결과론적으로 역사의 후퇴를 부른다.

공자가 자공에게 준 '일생의 키워드 하나'는 '서恕'였다. '서恕'를 파자하면, '여如 그리고 심心'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같은 마음, 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으니 강요하지 말라는 것. 즉, 공감과 배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자가 평생을 바쳐 지켜낼 만하다고 외치는 유고 사상의 핵심 키워드다. 공자가 유독 '서恕'를 죽을 때까지 평생 실천할 개념으로 천명한 건, 자연인 공구로서도 물론 그러하지만 특히나 위정자들이 새겨야 할 덕목으로 적시한 측면이 크다. 권력을 쥐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더욱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그토록 열심히 학문을 닦았던 가장 큰 이유이자 유일한 이유는, 관리로 임용되기 위함이었다. 공자에게 예는 곧 정치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백성이 먹고사는 것을 함함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학의 유儒는 무엇인가? 사람人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而, 비雨 오기를 기원하는 형상이다.

유가는 시체를 처리하는 장례와 기우제를 담당하는 집단에서 시작됐다. 춘추전국시대에 기우제 지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당시 기우제는 사실상 가장 중차대한 정치 행위이자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굶어 죽는 것이다. 그러니 기우제를 지내다 비가 안 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게, 기우제를 지내는 무당의 임무였다. 유가는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경제부나 법무부에 가깝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규범과 먹거리를 책임지는, 핵심 중의 핵심 부서이다. 그러니 유가의 시조인 공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리로 임용되어 백성들의 민생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공자는 덕치를 정치의 기둥으로 삼았다는 것,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라고 바라봤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 당대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의 혼란이 어디에서 오는지 탐구했다. 혼란의 궁극을 파헤친 결과, 모든 악의 원천은 도덕관념의 오류 때문이란 진단을 내린다. 여기서의 오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동양 철학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학문이었다. 북송의 정호, 정이 형제와 남송의 주희에 이르러 유학이 형이상학적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공자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호, 정이 형제와 주희가 죽어야 유학이 제대로 우리에게 전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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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나를 위한 철학 수업
박연숙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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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자는 동안 죽을지도 모른 채 잠에 들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아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당연한 듯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살아간다. 가끔 안면이 있는 사람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면, "안됐네!" 짧은 한탄과 함께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와 관계된 친인척이나 친구의 죽음 앞에서는 그들을 잃었다는 슬픔과 절망에 삶이 무너져 내린다.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음이라는 종말을 필연적으로 맞이한다. 죽음으로 맞이하는 이별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설령 죽음 이후에 다시 만날 것을 확고히 믿는 종교인이라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은 늦어도 여섯 살에는 자신의 부모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될 때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러한 충격과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의식 밖으로 밀어내 억압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른 누구의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은 혼자 맞이하는 것이지만, 죽음이 있기에 일상의 세계에서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고유한 삶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수록 반대로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죽음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죽음을 알아갈수록 삶이 보인다. 인간의 유한성을 가장 확실하게 깨닫게 해 주는 사건이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죽음은 서로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을까?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고,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는 나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며 사는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 지구 생명체들과의 관계에서 인식하고 그 의미를 찾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부여하는 의미가 죽음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의미와 삶의 의미가 다를 리 없다.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고백할 때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어느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음을 아는데 왜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저 하나의 과장일 뿐이고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걸까?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을 살다 죽지만 자신의 삶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간직한다면 생명의 유한성을 넘어설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이자 진리인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늙는 것을 싫어한다. 노년을 젊음의 상실, 가능성의 상실로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가에 달렸다. 인간은 자기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존재이다. 노년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전체적인 가치 체계에 중요한 요소이다. 죽음은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일이고 순수한 영혼이 되는 일이므로 기꺼이 반길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기에 죽음에 대한 태도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생명체라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것이 죽음인데, 이 시기에 이르면 죽음은 회피되고 금기시된다. 도시화, 핵가족화가 심해지면서 임종의 순간을 가족 모두가 함께하기가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살아왔던 공간에서 격리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때문에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이와 더불어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가치와 슬프고 억눌린 분위기의 죽음이 맞지 않아 회피 대상이 되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이후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 적은 없으므로, 죽음을 현실과의 단절이자 현실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벽'으로 여기면서 죽음을 거부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 완전한 사라짐으로써의 죽음과 다른 세계에서 계속 사는 것으로서의 죽음 모두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기꺼이 바라는 바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듯 두려움에 떨며 끌려가듯 죽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반기듯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불행과 고통이 닥치더라도 시간의 힘을 믿고 견디며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야 자신의 명을 따르는 좋은 삶을 살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운명은 손 놓고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사랑할 때 만날 수 있다. 좋은 죽음은 한 사람의 몸의 기능이 정지되는 일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을 넘어 우주의 마음, 자연의 이치로 시야를 넓혀 준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죽음은 결코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무한하고 근원적인 것과 하나 되는 반갑고 좋은 일이라는 반전이 생겨난다.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글을 통해 죽음에 대한 통찰을 한 권의 책으로 옮겼다. 죽음을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삶의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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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리터의 피 - 피에 얽힌 의학, 신화, 역사 그리고 돈
로즈 조지 지음, 김정아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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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몸속에는 5리터의 피가 3~5km의 속도로 쉼 없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기와 세포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한다.

우리는 500밀리리터를 헌혈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눈다. 500밀리리터면 우리 몸의 피 중 1/10에 해당한다.

500밀리리터가 얼마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콜라병 하나를 생각해 보자. 콜라병 하나의 용량이 375밀리리터이니 한 병 하고도 1/4 정도이다.

아마 헌혈할 때 헌혈 팩 대신 콜라병을 논다면 다들 기절해 도망갔으리라...

피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피 검사로 생물학적 나이나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그리고 다양한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지, 수술 뒤 섬망 증상을 보일지, 심장 기능이 떨어질지, 뇌진탕을 일으킬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피는 어디서 만들어질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정확히 대답할 수 없다. 아마도 주로 뼈 속의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인류는 몇천 년 동안 두통부터 질식까지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고자 피를 뽑았다. 사혈이 거의 모든 질환에 유용하다고 생각해, 심지어 심각한 출혈을 치료할 때마저 피를 뽑을 정도였다. 하지만 피를 잃으면 생명체에서 목숨이 빠져나가듯, 피를 적절하게 대체하면 목숨을 되살릴 수 있다는 원칙이, 생명력 강인함을 얻고자 피를 마신 역사는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의료 체계와 혈액 공급이 안정된 선진국에서는 거의 2초마다 한 명씩 수혈을 받는다.

익명의 자원자가 피를 기증하고 그 피를 필요한 사람에게 수혈하는 제도가 생긴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사람에게 수혈을 시도한 사람은 영국 왕립과학원의 지원을 받은 리처드 로어였고, 맞수는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프랑스 장-바티스트 드니였다.

출혈은 생명 활동 '교란' 때문에 일어난다. 일어나는 속도도 빠르다. 출혈 사망 중 4분의 1이 다친 지 세 시간 안에 일어난다.

1분에 5.5리터를 뿜어내야 하는 심장이 느려지고 피가 모이지 않아 사망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생리에서 피는 절반뿐이다.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리지만, 이때 자궁내막 상피와 그 아래에 있는 조직, 질 분비물, 자궁 경부 점액도 함께 흘러나온다. 이렇듯 생리는 다달이 피와 세포 조직 30~50밀리리터를 잃고, 얻는 것이라고는 생리통, 붓기, 울적한 기분을 포함한 여러 증상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비슷하게 생리를 하는 동물들도 있을까? 알려지기론 유인원, 구세계원숭이, 코끼리 땃쥐, 데스모두스 로툰두스를 포함한 박쥐 네 종류뿐이다.

'피에 얽힌 의학, 신화, 역사 그리고 돈'이란 부제목이 달려 있지만 이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여성 작가 특유의 늘려 쓰기, 지루함의 반복,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은 거의 없다.

이 책을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는 것조차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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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선진국 -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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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만년의 무궁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일제 식민지를 거쳐 1945년 광복을 맞이했던 독립국이기도 하다. 그 기쁨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가히 세계 최악이라고 해도 될 만큼 빈민국이 되었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대한민국이 전쟁에서 회복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는 참혹한 말을 남겼다. 맥아더 장군뿐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본 이들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종군기자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영국 타임지 기자 역시 한국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봤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는 것과 같다.”

1960년대 우리 경제 수준은 아시아에서도 하위권으로, 필리핀을 동경의 대상으로 여길 정도였다. 당시 필리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60.2달러였고, 우리나라는 91.6달러였다. 1인당 GDP 수치만으로도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세 배 정도 잘 살았다. 미친 속도로 선진국을 베긴 최고의 후발추격국은 수십 년간 '어떻게'를 외쳐온 끝에 '왜'와 '무엇'을 묻는 법을 잃어버렸다. 정답은 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학교에선 여전히 표준화, 규격화, 주입식 암기 교육으로 산업사회를 이끌었다. 마침내 유엔경제총회인 운크타드(UNCTAD)는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1964년 창설 이래 개도국을 졸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이젠 3차 산업혁명이 막바지에 달하며 4차 산업혁명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은 선진국의 발전된 모습과 기술을 베끼면 됐었지만 이젠 한계에 봉착했다. 이젠 '어떻게'가 아닌 '왜'와 '무엇'을 물어 답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해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짧은 근현대기 남의 나라를 베끼다 보니 원칙을 무시한 채 현상만 배워왔다. 그 단면으로 한국 사회 이곳저곳이 병폐에 시달리고 있다.

산재 사망률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1위도 여러 차례 했고,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많이 죽을까?

한국 사회는 안전에 투자 하는 대신, 사고가 났을 때 448만 원의 벌금으로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명백히, 그냥 싸게 사람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리기 쉽다.

강남 땅값은 자고 나면 오르는 신기루와 같다. 젊은이들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고 해서 강남에 집을 마련할 기회는 이미 상실되었다.

경리단길 사례처럼 세입자가 열심히 일해서 고객을 끌면 건물주가 월세를 3배 올려 그간 고생한 대가를 한순간에 가져가 버린다.

전형적으로 열심히 일을 할수록 벌을 주는 구조다. 젊은 청년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코인의 불바다로 뛰어드는 건 이런 구조의 결과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산부인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되려는 의사 지망생이 없다. 이젠 애를 낳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한국의 80대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7.4명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런 구조가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각자도생해라. 늙어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스스로 죽을 일밖에 없다. 너의 적성이 무엇이든, 꿈과 희망이 무엇이든 간에 어떻게든 노후를 보장해 주는 공무원 시험을 쳐라 도전을 하다 실패하면 비참한 노후밖에 남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뭔가를 죽어라 외운다. 다 외울 때쯤엔 아무 데도 쓰이지 않을 낡은 지식으로 머리를 꽉 채워 무얼 하나. 혼자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진짜 교육이다. 또한 온종일 앉아만 있는 한국식 교육은 학생들의 뇌를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가둬놓고 몇 시간씩 움직이지 말고 공부하라는 건 뇌를 죽이는 일이다. 특히 한국 소녀들의 경우 무려 97.2%가 운동 부족이다. 이 시기의 운동 부족은 평생의 체형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AI 시대,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다' '디지털 경제는 데이터 경제다' 주창하는 정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기계가 읽을 수 없는 문서들을 끊임없이 공개하고 있는 것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묻히는 귀중한 자료들을 표준 포맷으로 만들어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공공 정보 공개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 보유국'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자.

책을 읽는 동안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목도하며 암울한 생각이 든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남들은 2년여의 시간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준비해 온 결과물을 그냥 또 베끼려는 우리의 자세.

원인도 결과도 어디로 갈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산업은 산업대로...

이대로 가다간 빗 좋은 개살구와 같이 이도 저도 아닌 추락하는 아시아의 용을 몸소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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