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
장준환 지음 / 한스컨텐츠(Hantz)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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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의사와 함께 가장 선호되는 직업이다.
한마디로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기에 대학 입학부터 경쟁률이 치열하다.
또 잘만 풀리면 정치인은 물론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이만하면 평안 감사도 부럽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걸 박차고 인권을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있다.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안중근 의사의 변호를 맡은 일본인 국선 변호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본의 총리이자 실권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조선인 안중근.
내가 일본인이었다면 이런 살인자에 대한 변호를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재판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과연 그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가마타 마사치, 미즈노 요시다이.
이 둘은 조국의 염원과 달리 철저히 법리 논쟁으로 재판에 임한다.
가마타 마사치는 한국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마땅한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라 주장했다. 미즈노 요시다이는 일본 형법을 적용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범행 동기가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면 3년 형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의외의 모습이지 않은가? 과연 무엇이 이들을 조국에 반하는 변호를 하도록 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본연인 양심이지 않을까 싶다.

이 두 명의 일본인 변호사를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와 조선인을 위해 변호한 김병로, 이인, 허헌 3인의 활약상이 소개된다.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 독재 정치를 시작한 이승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병린, 이돈영, 이태영, 황인철 변호사의 이야기와 군부 쿠데타 세력에 항거한 노무현, 한승헌, 조영래 변호사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1998년 대정부 질의 중에서 노무현 의원의 발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 나는 그런 세상입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들거나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는 세상, 이런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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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9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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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암흑기이자 분단의 원인이 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는 아픔이자 치유가 되지 않는 상처이기에 한일간 스포츠 경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1백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아픔이기에 우리 몸의 DNA는 무의식적으로 이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역사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열망과 선열들의 뜻을 되짚어 알아보아야 한다.

1875년, 조선 개항을 위해 운요호가 강화 해협으로 접근한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그들의 행동에 당황한 조선은 급기야 불공정 조약을 통해 개항을 하게 된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미지의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시기이기에 일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개항을 해야만 했다.
외부의 압력에 의한 개항이기에 전국적인 반발로 신문물에 대한 흡수가 부족했다.
결국은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한 조선과 대한제국은 멸망의 길에 들어선다.

식민통치.
주권과 외교, 군사권까지 모두 일제에 빼앗긴 암흑시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했다.
하지만 계파 간의 갈등으로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게 아니라 자기들 목덜미만 되찾으려 했다.
결국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채 조선은 일본과 함께 전범국으로 간주되어 국토가 이등분된다.

왜, 우리 민족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걸까?
내가 안되면 남도 안돼야 된다는 망국의 정신이 결국은 조선 사람의 희망이었던 임시정부를 망쳤다.
독립을 내 힘이 아니라 어부지리로 얻은 결과 우리의 근대사는 암흑으로 얼룩졌다.

1875년 운요호 사건부터 1945년 해방의 순간까지 
우리의 저항과 독립을 위한 열망, 그리고 일제의 억압과 핍박을 한 권의 책으로 살펴볼 수 있다.

많은 사건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기에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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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왕국 - 북한산성이 전하는 스물여섯 가지 한국사 이야기
조윤민 지음,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엮음 / 주류성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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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 살 때는 남한산성에 자주 올랐습니다.
특히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경기도 블로거 모집을 인연으로 경기도 쇼셜락커 활동도 하게 되었지요.
1년 전 의정부로 이사 오며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북한산성에 올라 보아야겠다 마음먹었답니다.
남한산성은 아침 일찍 시작하면 하루에 한 바퀴 순성할 수 있어 북한산성도 만만히 보았지요.
북한산성 대서문을 지나 가장 짧은 코스인 북문 서암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올랐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북문까지도 경사가 가파른데 원효봉을 넘을 때는 바로 옆 절벽이라 눈앞이 아득했답니다.
그래서 북한산성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화를 수습한 조선은 18세기를 전후해 안정기에 들어간다.
붕당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은 더 치열해지고, 비대해진 신권은 왕권을 위협한다.
숙종 36년(1710년) 10월, 조정은 북한산성의 축성을 놓고 격론에 휩싸인다.
축성 논쟁의 발단은 청나라 해역에 출몰한 대규모 해적 무리가 조선으로 향했다는 정보와 함께 조선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문서가 도착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성곽 축성과 군비확장을 청나라의 승인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마침 좋은 빌미가 되었다. 1711년 2월 숙종은 마침내 북한산성 축성을 결정했다. 성곽 공사는 4월에 시작되어 10월에 마무리되었다. 
산성의 둘레는 약 13km, 16개의 성문과 동서남북 사방에 대문을 두었다. 무기와 군량미를 보관하는 8개의 창고를 짓고,
식수와 용수로 사용할 우물을 99개소와 저수지 26개소를 조성했다. 그 외 누각은 3개, 교량이 7개였다. 
산성 내 임금이 행차할 때 거처할 행궁은 1711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해 다음 해 5월에 조성을 완료했다. 
그 외에 11개 사찰을 중건했으며, 2곳의 암자를 새로 지었다. 
산성의 관리와 방어를 위해 1100여 명의 인력을 배치하고 승영을 마련해 380여 명의 승병을 두었다. 

산과 산을 잇는 13km의 대규모 산성을 단 6개월 만에 완성했다. 비슷한 규모의 남한산성은 2년이 걸렸다.
무엇이 이렇게 단시일에 축성을 마무리하게 했을까?
숙종은 군영을 중심으로 축성 인력을 조직했다. 그리고 전문가 조직을 기용하여 업무를 조직 단위로 배정하였다.
또한 빈민 구휼정책의 일환으로 급료를 지급하며 모집한 모군을 동원하였다.
또한 성곽의 재원인 화강암이 주위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숙종은 북한산성을 축성하며 도성 방위체제를 강화하여 오군영을 두었다.
오군영 중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은 수도를 직접 방어하는 중앙 군영이고, 총융청, 수어청은 수도 외곽 지역의 방어를 담당했다. 북한산성의 축성은 유사시 국왕이 더 이상 피난 갈 필요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수도 방위의 핵심인 북한산성은 영조와 정조대를 지나며 중요성이 높아갔다.
하지만 철종 이후 외척들이 정치를 주도하며 국정이 문란해졌다.

흥선대원군 이후 개혁의 기치를 들었지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야기했다. 갑오개혁은 북한산성의 마지막 날을 앞당겼다.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북한산성 관리 기구인 경리청을 없애고 더불어 승군 제도도 폐지한다.
일본의 병탄 야욕이 노골화되던 1904년, 북한산성 중흥사에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해 사찰 건물이 거의 소실된다.
1905년 일제는 의병 활동을 막는다는 구실로 북한산성을 수색하고, '일본군 헌병분견소'를 설치한다.
외적을 물리치려 쌓은 성이 외적을 품고 외적을 보호하게 되는 굴욕의 시간이 더욱 깊어갔다. 
옛 성터에 성곽을 다시 쌓은 지 200녀 년 만의 몰락이었다.
3년 뒤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군대까지 해산된다. 
2년 뒤인 1909년엔 북한산성 행궁의 사고에 보관된 서적과 왕실 물품을 도성 내로 옮긴다. 
1910년 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탄하며 조선의 500년 역사의 종말을 고한다. 

성곽은 단순히 군사시설이 아닌 나라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태평성대를 위해 구축한 성곽이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버텨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남는 북한산성입니다.
북한산성과 행궁은 무수한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아냈습니다.
문화재로서의 의미보다는 한 번 더 찾아가 보는 것이 책 내용을 더 마음 깊이 이해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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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재테크 불변의 습관 - 짠테크와 부테크로 100% 수익 만드는 투자비법
이정우 지음 / 책들의정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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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가장으로 노후를 생각하니 불안하고,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비를 생각하니 막막하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은 생활비와 보험료를 내고 나면 외식 한 번 하고 나면 이내 떨어지고 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부자들은 어떻게 재산을 모았을까?

1977년부터 1990년까지 13년 동아 2,703%라는 놀라운 누적 수익률을 기록한 마젤란펀드의 운영자인 피터 린치는 그의 은퇴식에서 마젤란펀드에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의 절반 이상이 원금 손실을 기록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 대부분은 단기 투자자들이었다고 한다. 

부자가 되려면 단순한 법칙이 있다. 
일을 더 오래 하고, 저축을 더 많이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돈을 잃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부자가 되지 못한다.  

은행 경력 35년에 PB 경력 10년 지점장이 밝히는 부자들의 재테크 비법.
하나, 남는 돈으로 저축하지 말고, 월별 저축액을 정하고 미리 저축하자.
둘, 제일 먼저 내가 살 집부터 대출을 받아서라도 장만하라.
셋, 수입의 10%는 원금 보장형이 아닌 상해보험과 
    수입자의 사망 시 유족의 생활 보호를 위해 종신보험을 가입하자. 
넷, 여유자금 중 1년은 정기예금으로, 2년 이상은 주식형 펀드로 목돈을 만들자.
      주식형 펀드는 환매수수료 없고, 무조건 인덱스펀드만 투자하고, 
      국내펀드와 2개국 이상의 해외펀드로 분산해서 투자하자.
다섯,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려면 운용자산의 주식
형펀드 편입 비중을 높이자.

여섯, 노후를 대비해 연금의 6층탑을 만들어라.

        연금 1층: 국민연금

       연금 2층: 퇴직연금
       연금 3층: 연금저축
       연금 4층: 연금보험
       연금 5층: 주택연금
       연금 6층: 농지연금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60세가 넘으면 집을 담보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연금 지급액보다 주택 가격이 낮으면 그 차액 분을 청구하지 않으며, 주택 가격이 더 높으면 남은 차액을 상속인에게 돌려준다. 그러니 내 집은 대도시 내 역세권, 학교, 쇼핑시설 등 삼박자까지 갖춘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라면 금상첨화다. 
또 임대 소득이 가능한 구분등기된 분양상가는 일반 매입보다는 경매나 공매로 매입할 것을 권장한다.

농지연금은 만 65세 이상으로 5년 이상 농사를 지은 후 농업인이면 농지를 담보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다. 2천만원 이하로 1천 평방미터 이상의 토지를 투자하는데 있어, 지목은 임야지만 토지대장에 등재된 임야를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토지는 지목이 임야지만 '00면 00리 00번지'처럼 번지 앞에 '산' 표시가 없는 토지이다. 
묘지가 있는 임야는 가격이 더 저렴하니 낙찰받은 후 묘지 부분만 토지 분할하면, 남은 토지는 농지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도로가 없는 맹지라도 농사짓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 싸게 살 수 있다. 단지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조회해 공익용 산지, 보전산지, 공원구역 공원보호구역, 국립공원으로 등록된 임야는 제외한다.
이런 임야를 경매나 공매로 받아 절토까지 해 주면 임야의 지목을 농지로 변경하여 공시지가를 올리고, 
최소 5년 이상 농사를 지어 노후에 농지연금을 받도록 하자.

월요일 출근하면 바로 퇴직연금 운영 상품을 변경하고, 
2018년 12월까지 가입 가능한 ISA 계좌는 5년간 환매를 하지 않으면 소득 금액의 4백만 원까지 비과세라고 하니, 매월 국내, 중국과 미국의 인덱스 펀드, 그리고 금 펀드에 가입해 목돈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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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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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충기라 부르며 집과 직장 밖에 모르던 가장이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사라졌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남자는 그동안의 삶을 부정했을까?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친 마흔의 남자.
마흔이 되어 우리를 가장 좀먹는 경험 중 하나는 삶이 덧없다는 것과 뻔한 일상이 반복되고 사는 게 재미없다는 느낌이다. 중년에 이르러 삶을 돌아보면, 길게는 몇십 년 전에 선택한 결혼과 직업에서의 경력 등이 사실은 얼마나 무의식적이었는지 깨닫고 전율하게 된다.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가장 같은 제도화된 역할에 길들여져왔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들 역할에 
투사해왔다. 투사를 포기한 개인은 그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우리는 외부 세계와 어울리기 위해 페르소나를 사용하는데 이 페르소나를 내면의 나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가면일 뿐 진정한 나는 아니다. 

거짓된 자아 속에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며 잠정적인 성인기를 보내왔을 뿐이라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날 수 있는 2차 성인기에 들어설 수 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자기감'을 바꿀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선사한다. 과거의 나를 미래의 나로 교체해야 하며, 과거의 나는 숨통이 끊어져야 한다. 그러니 엄청나게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잠정 인격에서 진정한 성인기로, 거짓된 자기에서 올바른 자기로 옮겨가기 위해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소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아 정체성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인생 후반기로 접어든 개인은 성숙해지기 어렵다.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전반기에 투쟁을 통해 얻은 힘이 필요하다. 
삶의 전반기에서 개인의 과제는 부모를 떠나 세상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자아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 힘은 삶의 후반부에서 더 큰 영혼의 여행을 떠날 때 사용할 수 있다. 
마흔에 들어서면, 결국은 자신의 내면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질문해야만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 기분은 지금 어떻지? 기분이 좋아지려면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와 같은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해답은 모두 우리 안에서 나온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의 열정을 좇으십시오.
마흔, 우리는 스스로의 열정을 발견할 것을 요구받는다.
인생을 항해하는 배의 조타를 잡을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다.
의식적으로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따르는 사람만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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