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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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를 보면 조금은 쎄 보이는 언니들이 나올 때 '걸 크러시'라는 자막이 깔리곤 하죠.
그런데 걸 크러시가 무슨 뜻이죠?

걸 크러시(Girl Crush)
소녀(Girl)와 「반하다」는 뜻의 크러시 온(Crush On)을 합성한 말로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여성이 동성(同姓)에게 느끼는, 성적인 감정이 수반되지 않은 강한 호감이라고 정의한다. 걸크러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닮고 싶은 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과 센스, 지성 등을 갖추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해 일반 여성들의 롤모델로 여겨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걸크러시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여성들이 사회적 한계나 장벽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군요.
책에서는 15명의 여성의 모험과 도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들과 다른 외모를 지닌 여성이 편견을 이겨내는 클레망틴 들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들레는 다른 여자들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센 여성이었지요.
심지어는 술집을 운영하며 술 취한 남자들도 손쉽게 제압할 정도지요.
그런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다른 외모로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여성이라면 보드라운 피부를 원하지만 들레에게는 남자들의 전유물인 수염이 나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장터 축제에서 서커스단의 수염 난 여자를 보게 되었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카페 수염 난 여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염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과연 그녀의 도전이 성공적이었을까요?
남들과 다르다는 편견을 떨쳐 버리는 순간이 그녀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인데 19세기 말에 이러한 시도는 대단한 용기이자 모험이었겠지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목표한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누가 뭐래도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죠?
책을 다 읽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에게 추천도서로 건네줍니다.
우선은 만화 형식이고, 그림이 예뻐서인지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 가는데 과연 다 읽을까요?
책 속에서 15명의 여성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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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2 (양장 특별판) - 효종에서 고종까지 조선 왕 독살사건 (양장특별판)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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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의 왕들은 권력, 명예, 부, 여자 등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종 이후 조선의 왕들의 면면을 보면 신하들의 등쌀에 왕 해 먹기 힘든 시절을 보낸다.
역사 속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의 통치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보면 이들의 대립 관계를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워진다.
왕권 강화를 주장했던 왕들은 조선은 군주 국가라 생각했고, 군주 국가에서 국왕은 나라의 주인이자 어른이며, 사대부나 일반 백성은 모두 신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반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나라를 왕과 신하들이 함께 통치해야 하는 것이지 국왕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의 차이를 근간으로 선조 이후로 극명해지는 붕당의 폐단 속에서 사대부들은 왕을 선택하는 '택군'을 단행한다. 택군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독살사건이다. 독살은 쿠데타에 비해 음지에서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권 강화를 주장한 정조, 경종, 효종, 효명세자 등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독살로 의심되곤 한다.

또한 여러 왕들이 죽음에 이르는 계기가 바로 '종기'이다.
과연 종기가 어떤 것이기에 왕들이 죽음에 이르렀는지는 아래 한겨레 신문의 글을 통해 만나보자.

조선시대에는 종기(腫氣), 즉 ‘부어오르는 증상’을 통칭하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연부 조직에 발생하는 봉와직염이나 관절에 고름이 차는 관절염은 물론이거니와 오장 육부에 생기는 염증에 암과 같은 악성 종양도 일종의 종기로 바라보았다. 즉, 인간의 몸에서 어딘가가 붓고 아프고 열과 고름을 동반한다면 그 모든 것이 종기의 일종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기를 치료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부 병변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염성 질환과 염증 질환, 심지어 암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분야의 질병을 다뤄야 했기에 종기를 다루는 일을 그토록 중요히 여겼던 것이다.
원문 보기: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48527.html#csidx637af77f7dc0d2cba8dd38be2246151 

종기는 단순히 피부에 농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암까지도 아우르는 질병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종기를 치료하는 탕약과 연훈법 그리고 침 요법까지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하였지만 이 역시 변변치 않았던 것 같다. 이를 이용해 여러 왕들을 독살했던 계기가 된 듯하다. 

과연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인가? 아니면 왕의 나라인가?
역사를 살펴보지만 조선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지금도 정치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만 보이지 우리 일반 시민은 눈에 보일까?
역사를 보며 뭔가를 깨닫고 바꿔야 하는데, 과거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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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양장 특별판)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조선 왕 독살사건 (양장특별판)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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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에서 대표적인 독살사건은 소현세자의 죽음일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문종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만들고 여러 기기들을 만들었지만 세종의 업적으로 흡수된 문종의 업적들...
우리가 배우기로는 몸이 병약하여 3년간의 시묘살이로 얻은 병으로 단명했다고 알고 있다.
결국은 유교 통치이념을 굳건히 하려다 오히려 잘못된 케이스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
계유정난,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던 수양대군의 손길이 그의 형이었던 문종까지 뻗쳤단 말인가?
문종의 죽음, 그의 죽음은 허리 위에 종기가 나 이틀을 휴양하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과연 종기가 죽을 병이던가? 하긴 요즘같이 페니실린이나 소염제가 있는 시절이 아니니 죽을 수 있다지만 조금은 허망하다. 문종을 치료한 어의 전순의, 그는 일본의 대마도주가 보낸 명의 숭태라는 승려에게서 의술을 배웠다.
그렇기에 조선의 의학을 집대성한 향약집성방이나 의방유취를 무시하고 세자를 치료해 세종의 문책으로 직급이 강등되기도 하였다. 이런 경력이 있기에 문종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치료방법이 과연 적절했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종기 환자가 금해야 할 것들 중 꿩고기, 무리한 움직임, 농 익기 전에 침 치료 등을 문종에게 시술했다.
이 정도라면 어의로서 문종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는 세조가 집권한 후 원종공신 1등 79명 중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 세조의 쿠데타의 큰 그림은 세종의 죽음부터 시작된 거대한 음모였고, 여기에 문종은 꼭 제거되어야 할 첫 번째 산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독살과 관련하여 피바람을 일으킨 연산군.
그는 자신의 어머니의 사사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식솔들은 노비로 전락시켰다. 그렇다고 그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날 만한지는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연산군이 폐비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계유정변 이후 왕권보다 거대해진 공신 집단을 무너뜨린 것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나아가 재산 몰수를 통해 공신들의 물적 기반을 해체시킨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몰수 재산에 개인적 욕심을 냄으로써 스스로 대의를 추락시켰다.
연산군의 가장 큰 실수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국왕 혼자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국왕과 사대부가 공동으로 다시리는 나라"라는 사대부들의 통치관을 부인한 것이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와 관련된 신하들은 죽이되 그 재산은 다른 신하들에게 주었다면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몰수한 재산을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었다면 민심을 얻었을 것이다. 대의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군주는 결국 스스로 고립되어 신하들에게 축출되고 말았다.

조선 왕 독살사건은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넘어갔던 조선의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모든 권력과 부를 쥐었어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조선의 왕, 그리고 정도전이 꿈꾼 사대부들이 통치하는 나라를 실현하려는 신하들 사이에 암투가 새롭게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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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하필 나를 괴롭히기로 했을까? - 심리학, 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을 분석하다
빌 에디 지음, 박미용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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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만큼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현실감이 괴리된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난다.
흔한 말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쉽사리 용서가 안된다.

우리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들이 있는데 과연 어떤 유형의 인간들일까?
자기애성 고도갈등 성격 -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믿으며 과도한 관심과 존중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경계선 고도갈등 성격 - 아주 친절하다가 예기치 않게 화를 내는 식으로 변덕을 부린다.
반사회성 고도갈등 성격 - 소시오패스(sociopaht)로 자신의 욕구를 감추고 위장해 남을 속이고 빼앗으며 지배하려 한다.
편집성 고도갈등 성격 - 극도로 의심하고, 사람들이 배신할까 봐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연극성 고도갈등 성격 - 엉뚱하고 극단적인 이야기나 완전히 거짓인 이야기를 꾸며낸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북미 대륙에만 3천5백만 명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가? 과연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상대방을 비판하는 대신 공감과 관심과 존중으로 연결하고, 고도갈등 행동에 대해 선을 그어야 한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들은 남을 지배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면 가능한 상담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
위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들에 대한 자세한 진단과 대처법은 책을 통해서 만나보기 바란다.
한가지 아쉬운 건, 책의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고도갈등 성격에 대해 사례가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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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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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다소 이국적이다. 홍차와 장미.
홍차 때문에 처음엔 인도 쪽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를 보니 일본인이다. 모리 마리, 남자? 여자? 잘 알 수 없다. 책 표지의 그림을 보니 여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표지 그림이 특이함에 끌렸다.

작가 모리 마리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라고 한다.
어린 시절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정도로 공주로 자라 16살의 나이에 대상인의 아들과 결혼하였고, 파리에서 살았으며 두 아들을 낳은 후 이혼하였고, 재혼했지만 그 결혼도 파국. 결국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 자신이 "정신은 어린애인 채 몸만 어른이 된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표현에 동의하게 된다. 거기에 마리 모리는 1903년에 태어났다. 대한제국 광무 7년으로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째 되는 해이다. 그만큼 마리 모리가 결혼할 당시가 1918년이니 무려 100년 전 수필이라는 거다. 우와!

당시 의사로 독일에 유학한 아버지 모리 오가이,
그의 영향으로 부족함 없는 유년기를 보내며 당시 접하기 어려운 서양 음식의 세계에 빠진다.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속담처럼 그녀가 결혼 후 처음으로 도전한 서양식 요리가 대 히트를 치며 요리에 재능을 발견한다. 하지만 하인을 두고 사는 시댁에서도 요리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 후 파리 생활에서 조금씩 서양 요리에 취미를 붙이며 간단한 레시피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요리를 주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여러 가지 레시피를 책에서 소개하지만 남자인 내게는 무용지물.

한 여인으로서의 인생을 반추하며 쓰인 수필.
행복한 어린 시절, 왕비처럼 대우받던 초기 결혼 생활까지는 마리 모리는 자신의 삶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쓴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이 파국으로 달리며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음식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아마도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로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택한 듯하다.
나이로는 고조할머니에 해당하는 여성의 삶, 그것도 생소한 일본의 잔잔한 일상이 그림같이 펼쳐지는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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