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크리스천들에게 김하중의 신앙 이야기 1
김하중 지음 / 두란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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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대학교 입학한 새내기 젊은이에게 술, 담배의 유혹은 참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또한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신입사원에게도 신앙인으로 떳떳이 술을 거부하기도 눈치가 보이는 현실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란 참 힘이듭니다. 

우리와 같은 길을 걸은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불신앙인으로 살아오다가 비서관이 되서 하나님을 영접한 김하중장로의 이야기에 따르면 접대 술과 폭음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술 냄세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시고, 또 바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하게 하시면서 술자리와 멀어지게 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외국 대사 접대의 경우에도 기도를 통해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는 이야기를 더 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해도 지혜롭게 상황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김하중장로의 삶의 간증을 읽어가며 부럽기도 하고, 왜 나에게는..... 이라는 절망도 듭니다.

그리고 성공 스토리 일색으로 써나간 글에 솔직히 너무 자랑하는거 아니야? 하는 거부감도 듭니다.

하지만 3번째 파트 " 하나님을 믿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읽으며,

항상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나아갈때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언젠가는 웃으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음에 힘을 얻습니다.

 3포시대, 잉여시대라며 자신을 비하하는 젊은 세대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책,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으면 자괴감으로 조금은 씁씁할 생각이 들 수 있답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으며 선배 세대의 신앙인의 권유와 충고를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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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4 - 임진왜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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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KBS 역사저절 그날.

이번 책에서는 임진왜란 그리고 조선의 영웅 이순신과 조선의 무능아 선조의 이야기로 꾸며집니다.

또한 이순신을 종6품에서 정3품까지 무려 7단계를 올리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류성룡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몰란던 이야기 중 하나는 이순신과 류성룡이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며, 이순신의 형과 류성룡이 친구였다는 사실입니다.

한 동네에서 자라며 이순신의 인간됨과 성품을 보았으며 함경도에 전공과 무공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두분의 인연은 참으로 묘합니다.

정읍현감이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날이 류성룡이 우의정에 오른 날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적탄에 순국할 당시 류성룡 선생은 북인의 탄핵으로 정승의 자리를 파직당한 날이라고 합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의병과 관군 그리고 백성들이 있었다면,

임금인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하려다 거부당하는 바람에 의주에 머물러 있게 되었습니다.

세자인 광해군에게 조정을 나누어 주고 평양 인근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게 했으며, 조정의 신임이 세자에게 옮겨가자 선위파동을 수차례나 펼칩니다.

거기에 의병과 군졸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명나라 제독 이여송을 기리는 사당까지 만들어 대우합니다.

나라의 안위보다는 자기 왕의 자리를 더 중시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 평안한 시대에 과거를 돌아보니 선조가 이처럼 무능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 속 그날에 과연 내가 선조였다면...... 이렇게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는 과거이지만 이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얻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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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 - 은혜를 담는 그릇
최병락 지음 / 두란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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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죄가 되는 세상에 목사님이 책을 내었습니다. 그 제목은 바로 부족함.

그런데 내용은 딱딱하지 않고 일반 세상의 수필 같이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 부족함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는지 알아볼까요?

"부족함은 예수님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감사는 부족함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보물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픔은 사명입니다. 부족함은 그 자체로 사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부족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부족하면 모든 것이 감사로 바뀝니다. 부족하면 내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죠.

너무 많으면 무엇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부족하면 내게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단박에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족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남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나를 보면 겸손해지고, 남을 보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품이며 선물이지만, 열등감은 겸손을 왜곡시킨 사탄의 모조품입니다.

부족함이 겸손의 옷을 입는다면 믿음의 영웅들처럼 쓰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함이 열등감으로 바뀐다면​ 하나님은 그 열등감이 치유되기 전까지 우리를 쓰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떤 것을 채우더라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녹아지고 삶에 대한 그들의 시각이 바뀔 때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절대 긍정이 아닌 모든 것에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1)

바울은 가난을 부유함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배고플 때 요술을 부려 빵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 가운데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관했습니다.

가난에도, 배고픔에도, 어떠한 부족함에도 만반의 준비를 끝낸 사람. 바울.

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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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 김세윤 박사에게 묻다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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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하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말하는 용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기독교인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뜻보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많이 인용됩니다.

9시뉴스에 자기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목사가 칼을 들고 다른 목사를 찌르는 일까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할 기독교와 목사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소금과 빛' 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3~16)

교회는 먼저 세상의 '소금'으로서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파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였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상처를 취유하기는커녕, 교회의 내부가 심히 부패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빛' 노릇을 한다고 전도하고 선교하니, 요새 유행어대로 "너나 잘하세요" 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냉소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죄사함과 무죄선언이라는 법정적 의미로만 '이신칭의​의 복음'을 선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이라는 관계론적인 의미도 함께 강조해야 한다.

'칭의'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함을 알게 된다.

"이중계명 =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

​우리가 잃어 버린 '이웃사랑'을 회복한다면 동성애자, 우상숭배자, 타종교인등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인간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복음'​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적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을 멸시하거나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 저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기에 자신들의 방법으로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얻으려 하는구나. 참 안쓰럽다. 어떻게 하면 저 분들을 도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먹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타 종교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도리라면,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는 자신들의 위치에서 복음의 정신, 성경적 원칙을 반영하려 노력하여 우리 사회에 인권이 확대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며, 화평이 증진될 때,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기독교가 신뢰와 존경을 얻고, 전도의 문도 열리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 순종하여 그런 '착한 행실'을 할 때. '의의 열매'를 맺을 때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키는 '일꾼', 또는 사단의 통치를 무찌르는 '군사'의 소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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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아서 - 어느 무신론자의 진리를 향한 여정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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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이성적 사고를 하는 현대인에게 신을 이해하고 믿기까지는 참 많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과연 신이 있나? 있다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모순되어 있는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질병이나 고통 속에 버려져 있나?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 신에게 기도하고 매달려 보았지만 왜 현실은 변하는게 없는가?

계속되는 질문과 현실 배반적인 모습들 속에 결국 신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이 있다. 신을 믿어라 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로 보입니다.

 무신론자인 작가는 어떻게 신을 찾게 되었을까요?

작가가 신을 찾게 된 계기는 "죽음" 외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죽음이란 공허하고 흉할 뿐 순식간에 닥친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내가 없는 세상을 믿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신을 찾아가는 출발점에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안다고, 심지어 그런 진실이 존재한다고 나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하늘이 열려 내게로 쏟아져 들어왔고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의 저혈당증이라는 우연한 생리학적 해리상태에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을 고스란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작가는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느겼다. 이때 대면한 힘 또는 에너지를 "신"이라 정의하였다.

​그때 무언가를 보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작가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신을 알고 있으니까.

 책을 읽고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저혈당 쇼크 상태에서 느낀 해리상태를 신을 만났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 진행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을 만나 소통하고 의미있는 무언가를 얻고 깨닫았다는 이야기도 없이 그저 신을 알기 때문에 신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더욱 이상하다.

조금은 개인적인 내용과 뭔가 해결책이 없는 이야기 스토리. 조금은 실망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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