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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 세금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가?
오무라 오지로 지음, 김지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9월
평점 :
세금은 국가의 운용자금이다.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는 실무자나 재무관들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새로운 세금을 고안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대 로마의 공중화장실세와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수염세가 있다. 이 모든 상황이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면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처럼 보인다. 세금 부과 방식은 국가의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가장 큰 틀의 원칙 하나는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세금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빈부 격차는 더욱 극심해진다. 여기에 더해 과세 대상에 따라 산업의 발전과 쇠퇴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세금 제도가 국가의 앞날을 좌우한다."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그럼 실제로 세금이 역사를 바꾼 사례와 조금은 엉뚱한 세금의 사례를 알아보자!
영국을 번영시킨 '해적세'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은 신사의 나라인데 어떻게 해적을 양성하며 그들에게 세금을 징수했을까?
영국은 처음부터 강대한 나라는 아니었다. 중세 무렵까지만 해도 유럽의 변방 국가에 불과했다. 그랬던 영국이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이 변화의 원동력은 사실 해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 시대의 영국은 독일 등에 모직물을 수출해서 재정을 꾸렸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계기는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에 있다. 항해 중에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의 포토시 은산에서 은이 대량으로 생산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럽의 은 가격이 폭락했고 은 수출이 주요 산업이었던 독일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에 독일 수출이 부진해진 영국도 결국에는 재정난을 겪게 됐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고육지책으로 '해적 행위'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영국이 이용한 해적선은 '사략선'이라 불렸다. 사략선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적국의 선박을 노획하는 배를 가리킨다. 영국은 해적선의 약탈 행위를 승인하는 대신 노획품의 5분의 1을 국고에 바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자 너나 할 거 없이 바다 사나이들은 모두 해적이 됐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1587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주도로 진행됐던 드레이크의 해적 항해는 영국에 약 60만 파운드의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중 약 30만 파운드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영국의 1년 치 국가 재정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렇든 해적세가 가져다준 막대한 세수는 영국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영주와의 첫날밤 때문에 생긴 '초야세'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유럽에는 '초야세'가 있었다. 황당하지만 영주는 영주민이 결혼하는 부인과 첫날밤에 동침할 수 있는 '초야권'이라는 권리를 가졌다. 결혼하려는 영주민이 영주의 초야권을 거부하려면 세금을 내야 했는데 이 세금이 바로 초야세다. 초야세의 흔적을 찾아보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자. 이 곡의 내용은 초야권의 부활을 노리는 백작과 영주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초야권이 오페라로 만들어질 만큼 유럽에서는 보편적인 제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말자 상속' 관습이 초야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말자상속이란 집안의 막내가 상속자가 되는 제도다. 첫째 아이는 초야권으로 생긴 아이라 아버지가 불확실하니 아예 확실한 핏줄인 막내를 상속자로 삼는 것이다.
가슴을 가리고 싶거든 '유방세'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인도 케랄라주에는 '유방세'라는 가혹한 세금이 있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교묘한 식민지 지배 방식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커지는 종교 대립과 카스트 제도의 갈등으로 민중은 분열되고 부와 노동력을 착취당해야 했다. 더구나 인도 각 주의 위정자들은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민중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다. 그중 하나가 유방세다.
유방세는 신분이 낮은 여성이 거리를 다닐 때 유방을 감추고 싶다면 내야 하는 세금이었다. 유방세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서 유방을 가릴 수 없었다. 세액은 유방의 크기에 따라 정해졌다. 과세 대상이 된 여성은 스무 살이 되면 관리에게 유방을 측정 당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케랄라주의 체르탈라 지구에 난젤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농민의 부인이었던 난젤리는 카스트 제도 최하층에 속해 유방세 납부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방세를 내지 않았음에도 언제나 가슴을 감추고 다녔다. 어느 날 징세관이 병사들과 함께 난젤리의 집까지 찾아왔다. 난젤리는 징세관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집 안으로 들어가 자기 가슴을 도려냈다. 그리고 그 유방을 징세관에게 건넸다. 난젤리는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남편도 장례식을 치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비참함 사건이 계기가 되어 케랄라주에서 항의 운동이 일어났고 유방세는 폐지됐다.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낸 '포르노세'
이탈리아에서는 포르노 영화, 비디오, 잡지 등 포르노 산업에 세금이 부과된다. 이는 2008년에 도입된 제도로 세율은 포르노 작품 수입에 일률적으로 25%가 부과된다. 이탈리아는 2000년대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큰 타격을 입어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다. 재정 적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 EU가 시정 권고를 했을 정도였다. 이에 이탈리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수를 늘려야 했다. '포르노세'도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도입된 세금이다. 포르노세가 도입됐을 당시의 이탈리아는 포르노 산업 총매출이 110억 유로(약 1조 3천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25%의 세금을 부과하면 꽤 많은 세수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포르노세의 공헌으로 재정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양하고 황당한 세금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심심풀이로 그리고 교양을 늘리기 적당한 책으로 추천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