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왜 당신을 간부로 임명하지 않는가 - 일개 사원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사장의 속내
고야마 노보루 지음, 김보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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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결정을 미루는 사장에 대한 불만으로 하루가 지겹고 짜증이 나곤 합니다.  그런데 책 차례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의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 회사를 그만둬라!" 시작부터 엄청나게 센 코맨트로 시작을 하네요.​

관리직으로 15년 근무하며 관리팀장 역활을 하는 저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 입니다.

그동안 5명의 사장님과 근무했지만, 저도 근로자이다보니 사장편으로 일하기보다는 직원 입장으로 일해 올때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저의 직장생활을 되돌아 보며 책을 읽는데 사장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관리직은 과감히 사직시키라는 이야기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킵니다. 

헐~~ 왜?? 사장이 틀린 것을 틀렸다하며 직원들과 사장의 중재자 역활을 수행했는데 그게 뭐가 잘못됐나?

 저자인 고야마 노보루 역시 중소기업, 한때 최악이었던 회사를 최고 경영품질의 회사로 탈바꿈한 사장님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장의 업무는 "결정하는 일"이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관리직이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바로 실행하게 되면 빨리 실패하게 되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굳이 사장의 의견에 반대하는 직원을 모시고 회사를 꾸려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시스템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대기업과는 다른 환경인 중소기업에서는 독재자형 사장의 역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관리직이라면 경영관리팀, 총무팀, 인사팀등 기업의 서포트 조직을 말하는 건가? ​

​아니, 아니죠~~. 저도 처음에는 저와 같은 관리직군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관리직이라면 과장이상으로 결정권한이 있는 사람을 통칭한다.

사장을 탓하지 말고, 회사를 권두던지 자신이 변하든 양자택일을 강조하는 저자. 일리가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며 반성해 봅니다.

 사장에게 보고할 때 직원은 자신을 보호하고 두둔하기 위해 좋은 점, 장점만 보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잘못된 점에 대해 시정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된다.

당신이 관리직이라면 가장 먼저 "나쁜 것부터 보고한다" 는 원칙을 부하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사장이 현 상태를 파악하고 피해를 최소화 할 방법을 마련하게 된다.​

 관리직으로 부하 직원을 나무라거나 꾸짖을 때가 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다.

하지만 조직과 부하의 발전을 위해 그들의 실수나 착오에 대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당신이 관리직이라면 부하를 혼낼때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일"을 토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솔직히 나도 부하직원이 잘못했을 때 화를 내지 못하고 분을 삭히다 못해 폭발한 경험이 있는데 이 원칙을 시행해야겠다.

 부하직원의 업무 지시를 확인하는 법은 "네, 아니오"로는 절대로 대답할 수 없도록 질문하는 것이다.

"00 건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xx처리는 언제까지 끝날 것 같아?" 처럼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귀가 아닌 "입으로 듣고자" 질문하면, 부하도 애매한 대답은 할 수 없다. ​

 일반 직원이 알지 못 하는 사장의 직무와 결정. 고독한 그들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15년 동안 근무하며 몸에 베인 습관과 관습으로 나태한 관리직인 저의 모습에 반성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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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크릿 - 부와 행복을 끌어당기는 단 하나의 마법
밥 프록터.그레그 S. 레이드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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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08년 젊은 기자 나폴레온 힐은 철의왕 카네기와 인터뷰 중

"20년간 무급으로 나와 함께 일한다면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한 리더들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주겠다" 는 제안을 받게 된다.

20년간 무급?? vs 성공한 리더와 만남의 기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250명은 이미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251번째 나폴레온 힐은 이 제안을 받아 들였다.

20년간 성공 철학을 인터뷰한 결과 1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라,​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라,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라, 긍정적 사고를 하라, 열정적으로 도전하라, 창조적 비전을 구축하라,

역경과 실패를 통해 배워라, 구제적으로 사고하라, 우주적 습관의 힘을 활용하라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모르는 것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신념으로 엄청난 부와 성공을 이루어 냈다니.....

 이런 철학을 실제 삶에 적용해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에 대해 재 조명하며 책 내용을 구성해 나갑니다.

외국의 자기개발 책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듯이 책이 목적이 아니라, 강연의 보조자료이다 보니 읽고 나서도 '딱히 이거다' 라고 느낄 핵심이 없습니다.​

이 책도 내용 중 몇가지 좋은 구절 옮겨 봅니다.

​"두려움은 단지 믿음의 후진기어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실패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강인함과 성장은

오로지 끝없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R.I.C.H하게 살자, 존중(Respect), 진정성(Integrity), 고객중시( Customer focus), 하는 일 즐기기(Having Fun in the process) 의 약자로

​드와이어 그룹의 정체성과 브랜딩의 중심에 놓여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어디서든 일생 동안 5만에서 9만 시간을 일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지 않는다면 실로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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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 앞바다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5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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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 순애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사랑. 마지막 사랑. 절망.  

주인공의 사랑의 아픔이 전해져 책을 읽는 동안 해피앤딩으로 끝나기를 기도하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깁니다.

"사랑". 서른 여섯살의 베스트 셀러 작가인 정훈에게는 작품 소제로 흔할 뿐더러 식상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정작 군대 제대 이후 작품 활동을 하느라 결혼도 사랑도 꿈꾸지 못 한 채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간다.

결혼, 사랑, 가정의 꿈이 깨어진채 죽음을 통해 남자친구에게 복수를 꿈구는 혜진을 사랑하게 된 정훈.

비극적 사랑임을 직감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을 지키려는 정훈. 

그 사랑의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이들의 사랑은 여름날 짧은 소나기처럼 지나간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할 거라는 편지 한장으로 이별 통지를 받은 정훈. 

그리고 전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사랑이 떠난 정훈에게는 현실의 삶이 무의미합니다.

그녀를 잊기 위해 짐승처럼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다른 여자들을 만나보지만 그녀의 빈공간을 채울 수 없습니다.

​현실을 잊기 위해 자신 만의 혜진을 혼자 간직하려 범섬 바다 암벽에 가장 아름다웠던 혜진의 모습을 조각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혜진이 아닌, 정훈 혼자만의 혜진을 위해.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면 이러한 구성은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왜 이리 마음에 드는 걸까요?​

이유는 소설을 읽는 동안 영화를 보듯 인물들의 감정이 자세히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읽고 있는 동안 이야기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

주인공 정훈과 독자인 내가 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에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애끓는 사내의 허탈감에 어두운 밤바다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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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을 그리다 - 내실에서 꿈을 찾은 예술가
정항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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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하면 제일 먼저 율곡의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그 다음은 여류화가, 오만원 지폐, 그리고 왜? 입니다.​

여성 비하적인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돈의 고액권에 해당하는 인물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반감때문입니다.

솔직히 신사임당에 대해 아는게 없다보니 이런 반감이 더하지 안았을까하는 생각에 책을 통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신사임당 => 성씨는 '신', 이름은 '사임당'​?? 과연 맞을까요?

'사임당'은 조선 시대 선비가 자신을 나타내는 '(號 -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이름)' 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율곡이 어머니 사후에 남긴 <어머니 행장>에 나옵니다.

 "어머니의 휘(諱 - 죽은 어른의 생전의 이름)은 모(某 - '아무개'의 뜻을 나타내는 말,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거나 굳이 밝히려고 하지 않을 때 쓴다)로

진사 신명화의 둘째 딸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적은 글에도 어머니의 성함은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여인이라면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 들였을 삶이었을 텐데 오히려 남자도 아닌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굳이 지었다니 더 놀라운 일입니다.

 '사임당'이라는 당호는 여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으로 '사(師)'는 스승이니 본닫는다는 뜻이고,

'임(任)'은 중국 주나라 문황의 어머니 '태임(太任)의 '임'자에서 따온 것이다. 즉, 태임을 사모하고 본탑고 싶다는 뜻 입니다.

훗날 율곡이 이르기를, 어머니께서 실시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네 가지 태교법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비가 몸을 닦는 데에도 필수 덕모이라고 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학문과 글을 익혔을까?

당시 여자는 길쌈하고 바느질 잘하면 그만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60여년으로 거슬러 조선 전기 1551년에 일이니 말이다.

사임당의 고조할아버지는 세종 임금때 좌의정을 지낸 문희공 신개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신자승이고, 할아버지는 신숙권은 영월군소 재임하였다.

사임당의 외할머니는 강릉최씨로 중종 임금 때 사헌부대사헌과 형조참판을 지낸 강릉의 문벌 최응현의 딸이었다.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이씨 사이에는 아들 하나 없이 딸만 다섯으로 그 중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런 명문가에 태어났으니 요즘말로 하면 '금수저'였음에 틀림이 없다. 이 즈음에 약간의 빈정이 상해 그럼 그렇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만약 그의 아들 율곡이 없었다면??

율곡은 어머니의 3년 상을 마치고 열아홉 살 되던 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첫 벼슬로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때를 전후해 율곡은 나라에서 실시한 크고 작은 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을 했다. 그런 이유로 그가 말을 타고 거리에 나가면 아이들은 말을 에워싸고

'아홉 번을 장원한 분(구절장원공)이라고 손뼉을 치며 따랐다. 서른 살에 예좌조랑, 그리고 사간원 정원에 임명되고 호조판서를 두 번, 이조판서를 두 번, 형조판서, 청주목사, 황해도 관찰사 등 수많은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이쯤되면 그 부모가 누구일지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이런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적은 <어머니 행장>에 온화한 천품, 정결한 지조, 현숙한 부인, 그리고 학문은 물론 시, 서, 화, 자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뛰어나다고 기록하였는데 과연 누가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만약 율곡의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그 누가 이 여인을 기억이나 해 줄까?

 ​책에서는 그녀의 재능이 남다르고 중국 서화풍을 모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창작 세계를 펼친다고 칭찬하지만, 그림의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기에는 '조금 잘그렸네' 라고 한마디 할 정도이다. 구도니 생동감이니 수묵의 기법이니 서체의 독특함이니........ 당췌 모르겠다.

하지만 또 한가지! 사임당에 대한 기록과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될것 같다.

후대의 많은 고위 관료와 자칭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하는 데에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중요히 다루고 있다.

 책을 통해 어머니 신사임당과 여류작가 신사임당을 모두 만나 볼 수 있으며, 아들 율곡의 글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사실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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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엮음 /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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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대전에서 졸업한 토종 대전 사람으로, 취업을 위해 상경한 서울생활이 어느덧 15년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 서울에 살며 또 직장이 서울이어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며 많이 정이 들었는지 서울하면 왠지 제2의 고향같은 느낌이 듭니다.

첫 서울 생활은 올림픽공원과 석촌호수 사이 방이동에서 시작했습니다.

반지하 원룸에서 첫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벚꽃 만개한 석촌호수를 걷기도 하고, 올림픽공원에서도 데이트를 하곤 했습니다.

방이동에서만 7년여를 살면서도 한강에는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는데........ 서울을 떠난 지금은 한강을 가로질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방이동 첫 직장을 퇴사하고 분당 미금역 근처의 회사로 이직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해 탄천을 걸었습니다.

처음으로 이직한 스트레스와 새로운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려 참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몇 년 근무하며 직급도 올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계속되는 새로운 업무와 직무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몸무게가 무려 8kg이나 늘어났지요.

더 이상은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 점심시간에 김밥 한 줄을 사서 무작정 탄천을 걸었습니다.

한 2년 정도 탄천을 걸으니 허리 사이즈가 36 -> 32로 줄어드는 엄청난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었죠.

 탄천을 6년여 동안 걷다가 양재천이 있는 서울로 다시 이직을 했습니다.

이때는 수족냉증이 심해져 걷지 않으면 차가운 발로 여름에도 등산 양발을 신고 있어야 했습니다.

또 이직에 따른 스트레스와 사장과의 의견 차이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 양재천을 걸으며 마음을 진정하곤 했습니다.

​4년 여를 걷다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또 이직.

 이번에는 성수동으로 이직했다 또 다시 성북천이 있는 용두동으로 이직했습니다.

성북천을 따라 걷다가 업무 상 은행에 갈 일이 있으면 청계천을 이용해 동묘쪽으로 걸어가며 물고기를 보는 재미도 톡톡히 느낍니다.

이렇게 제 생활 주위에 강과 개천을 이용한 걷기를 통해 스트레스와 잡념을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며 서울에도 많은 개천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보며 청개천만 하더라도 그 지류가 17 개나 된다는 정보에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지류가 복개도로가 되다 보니 지금은 그 형태나 위치를 알아 볼 수 없다는게 참 아쉬운 일입니다.

혹시 오늘도 당신이 지난 그 도로가 예전에는 아름다운 물이 흐르던 개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현재의 다리들 대부분이 예전에는 배를 건너기 위한 나루터 였다는 사실도요.

이 책은 서울 한강의 지류와 근처의 유적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서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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