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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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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인가, 미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른바 7세 고시. 겨우 7살 어린아이들이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는데, 그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4세부터 학원에 다닌단다. 그리고 방송에서 그 시험지를 보여주는데, 이 미친...!!!

사실 개인적으로 내 주변에 나이에 맞지 않는 영어공부로 인해 영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된 학생 하나를 알고 있다. 바로 내 큰 조카다. 조카 녀석이 사립유치원을 다녔는데, 유치원에서 원아 3명을 뽑아 학예회에서 영어발표를 하게 시켰는데, 내 조카가 거기에 뽑혔었고, 그 후 녀석은 영어라면 진저리쳤다. 나도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게, 조카의 영어발표를 현장에서 관객으로 보았고, 녀석이 그 문장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나름 영어교육과 출신으로서 그 문장들이 조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추상적 의미임을 알았다) 어떻게든 외워서 암송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 때 그 녀석이 불쌍했었다. 그게 왠 고문이란 말인가?

7세 고시 시험문제도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내가 경악한 이유는 영어의 난이도가 아니라 아이들의 뇌성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7세가 어떻게 그런 추상적인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즉 7세 고시 시험문제는 아이들의 진정한 언어 능력이 아니라 암기능력을 테스트하는,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는 고문도구일 따름이었다. 아니, 그건 분명 아동학대다.

김누리 교수 또한 이런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비판하는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를 썼다. 한국에서 왜 경쟁 교육이 등장했는지 그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고 특히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설파한다. 특히 한국사회가 사회적 정의를 내세워야 할 때 '공정'을 내세우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교육이 활용됨을 비판한다.

다만 김누리 교수의 글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경쟁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다. 저자는 교육에 경쟁이 활용되는 것에 비판적이지만, 나로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경쟁적인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부패한 기득권의 이너 써클에 들어가야만 편하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아닌가 싶다. 시험을 몇 번 잘보면(예를 들어 서울대 법대-사시-판검사)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바로 그 구조. 즉 경쟁이 아니라 그 구조를 혁파해야만 이 사회에 다양성이 도입되고, 그리하여 아이들이 한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내가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혁신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 교육을 칭송하지만, 지금 독일은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빠르게 AI가 도입되는 현 상황에 독일 교육은 전혀 대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즉 경쟁이 있어야 혁신이 있고, 그래야 아이들의 미래를 공적 교육영역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교육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는 단지 현상일 뿐이고, 우리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의 좁은 문이 아니라 다양한 문들을 제공하고, 또 그 다양한 문들을 통과해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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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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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시절 우리는 '낙수효과'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더랬다. 나라의 경제정책의 초점을 분배보다는 성장에 두어, 몇몇 기업이 정책의 혜택을 받아서(그 대신 약자에 대한 분배를 줄인다) 나라의 GNP가 성장한다면, 그 부유함이 자연스럽게 하위 계층으로 흘러갈 거라는, 그런 이상한 믿음. 그때는 그것이 진리였고, 믿음이었지만, 2026년 현재, '낙수효과'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오히려 나라의 부가 한쪽에 치우침으로 인해서, 계층간 부의 격차가 증가하고, 그리하여 결국은 나라의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존재인 중산층이 붕괴하지 않는가?(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미 저자는 2000년대 초반에 이 책을 통해 '낙수효과'를 부정한다. 저자는 경제발전 이데올로기가 지나치게 신비화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근대화가 빈곤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빈곤으로서 근대화한다고 말한다. 즉 경제발전은 빈부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이익이 나는 형태로 고쳐 만드는, '빈곤의 합리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빈부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아니라 정의의 차원해서 해결해야 함을 말한다. 즉 잘 형성된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에 따른 행복주의가 아니라 참다운 뜻의 행복주의, 인간의 즐거움, 행복을 느끼는 능력, 그것을 발전시키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저자의 뜻과는 달리, 빈곤의 해결에 있어 경제발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근거는 2026년 현재의 한국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발전이 있어야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다만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저자의 주장처럼 정치의 민주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분배는 정의이며, 이것은 올바른 민주주의 하에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민주화되어야 경제가 민주화되고 그래야 그나마 사회의 빈곤이 해결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시민의 참여와 권력에 대한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니면, 현재의 미국처럼,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조차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섬뜩했던 것은, 이미 2000년 초반에 저자는 2026년의 미국을 예언했다. 그 당시에 벌써 미국 사회의 모순은 존재했고, 이런 학자들의 경고를 미국 사회는 무시했으며, 그리하여 미국 시민들의 삶은 날로 불행해지고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경제성장은 문제해결의 만능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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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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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학번인 나의 대학시기는 아직 80년대의 운동권 분위기가 남아있던, 그리고 각 대학의 학생회가 모여 데모를 하던 시기부터, 96년 연세대사태와 97년 IMF사태 이후 개인화되고 각자 취업을 위해 힘쓰는, 그런 급변하는 학내 사회에 걸쳐 있다. 덕분에 나는 1980년대의 대학사회와 2000년대 대학사회, 그 양극단의 사회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시대적 행운을 누리고 있고 그래서 더욱 독서가 풍성해진다.

정지아 소설가는 몇 년 전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그야말로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녀에게 부모님이 빨치산 출신인 것은 그녀의 뚜렷한 정체성이었고, 특히나 1980년대의 대학에서 그녀는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운동권 분위기에서 술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한 잔도 버거워하던 그녀는 어느새 엄청난 술애호가가 되어 자신의 에세이를 '술'을 소재로 쓰게 된다. 제목 그대로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나도 겪어봤지만, 1996년 이전의 대학모임에서,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반드시 만취하게 했다. 그들은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울분으로 술을 먹었고, 솔직한 대화를 위해 술을 먹었으며, 아니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술을 먹었다. 그리고 술에 관련된 여러 일화들을 자랑스럽게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다. 정지아도 그렇게 술을 배웠고, 그 분위기에 매혹되었고,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술을 즐긴다. 그것도 취향까지 갖춰가며.

이 에세이는 정지아의 술 예찬가다. 그리고 사람이야기다. 술을 마시며 사람과의 벽을 허물고,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는, 그야말로 2020년대에 펼쳐지는 1980년 대학가 풍경.

아마 지금 신입생들에게 과거 운동권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술을 강권한다면, 바로 괴롭힘 신고가 들어갈게다. 2026년 현재 인권의식은 1980년대보다 훨씬 상향되었지만(솔직히 그 당시 운동권에 인권의식은, 특히 그 권위주의적 사고는 말도 못했다ㅡㅡ;;;) 그 밀접했던 인간관계와 정은 어느새 잊혀진 풍경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 그리워질 때는, 다시 이 책을 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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