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나는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내가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인줄은 몰랐고(실제 겪어본 거식증은 절대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다) 다만 그 상황에서 내가 도망가면 동생이 죽을 것 같다는 강력한 느낌에 그냥 버텼더랬다(실제로 거식증은 사망률이 10%나 되는 위험한 병이다). 그 당시 동생의 행동은 나에게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 부모님들도 동생이 거식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에게 왜 힘든 동생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나무랬었고, 결국은 나 또한 이제까지 내가 앓고 있는 공황장애와 전환장애를 그 당시 얻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때 얻은 병으로 인해 나의 직장 생활도 결국 파탄이 났고.(분명 내가 100% 당한 상황인데, 사람들은 내 병을 이유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ㅡㅡ:::)
이런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같은 다이어트 상황에서도 왜 누군가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거식증으로 가게 되는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사회에서는 날씬한 몸을 희구하는 여성의 욕망이 그녀를 거식증으로 몰고간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왜 그녀가 자신의 본능적인 생존욕구를 무시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를 못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거식증 관련 책을 읽어봐도, 그들의 설명은 너무나 피상적이었고, 내 체험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 '먹지 못하는 여자들'을 보고서야 왜 내 동생이 그런 상황에 빠져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 해들리 프리먼은 스스로가 거식증 환자였고,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를 거식증과 싸워왔다. 그녀는 마침내 거식증과 정면으로 대면했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선택을 했으며, 결국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이건 정말 중대한 사건이다. 내 동생 또한 3년을 월경을 안했던 것처럼, 거식증 환자에게는 생명이 깃들지 않는다) 다행히 저자는 세계적인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그 저널리스트의 정신과 실력으로 자신이 겪은 거식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저자의 글에서 강한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은 바로 거식증 환자의 통제욕구다. 내 동생도 자신의 몸에 엄청난 통제를 가했고(식욕만큼 본능적인 것이 없는데, 그 욕구를 통제하는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자신 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나한테도 강력하게 통제력을 행사했다. 즉, 나는 내 모든 행동에 대해 동생에게 통제받았고, 마음대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했으며, 사소한 소비조차 동생에게 통제받았다.(동생이 어머니에게 자신이 번 돈으로 언니에게 용돈을 주겠다 했고 어머니는 흔쾌히 수락했다ㅡㅡ;;;) 지금도 집에서 엄마랑 통화하다가 전화가 길어진다고 동생이 화를 내면서 나한테 던졌던 철제필통이 눈앞에 선연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통제 욕구 안에는 강한 불안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춘기에 접어들 때 성인이 된다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면서 식사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내 동생은 (내 짐작이긴 하지만) 자신의 동갑내기 사촌이자 영혼의 친구가 자살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후에 일이 벌어진 듯 싶다. 갑작스럽고도 엄청난 불안이 그녀들에게 닥쳤고, 그들은 자신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그 불안을 컨트롤하려 하거나 혹은 그 불안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 책이 훌륭한 것은, 거식증 환자들이 단순히 예뻐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제한다는 것을 거식증 환자나 그 보호자가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환자들의 치료가 단순히 식사량의 조절 만이 아니라 그 불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거식증을 극복한 과정을 이야기함으로써 환자나 보호자가 희망을 가지고 그 힘든 과정을 함께 겪어낼 수 있음도 말한다.
사람들은 거식증이 환자 혼자만의 일인 줄 알지만, 사실 보호자들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특히 그 통제력을 보호자에게 폭력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을(아마 이것이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타인에게 이야기했을 때, 겨우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핀잔을 들을 확률이 높다(특히 내가 의지해야하는 부모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ㅠ.ㅠ)
이제까지 나름대로 거식증을 다룬 책들을(많이 있지도 않지만 그나마 출판된) 읽어왔지만, 실제 거식증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해봤던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책이 단연코 큰 도움이 된다고 확언할 수 있다. 사회의 편견 속에서 잘못 이해되온 거식증에 대해 이만큼 정확하게 말하는 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