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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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얼마전에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인 폴 라파르그는 칼 마르크스의 사위이고 역시 그도 공산주의자였다. 다만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펴냈을 때, 마르크스는 사위의 책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겠다^^;;;

저자인 폴 라파르그는 노동자가 노동중독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일에 있어서 열정을 강요받고 심지어 남는 시간에는 자기계발을 하도록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기독교가 노동을 신성시하고(이는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보여준다) 부르주아의 실용주의 철학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을 노동을 찬양하고,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은 피폐해진다.

즉 저자는 노동윤리의 무자비함을 비판하고 특히 케인즈 이전에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특히 경제공황이 수요가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정확히 통찰하고 있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반박하고 싶은 것이, 저자는 마치 프롤레타리아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하고 자신의 처지를 거부할 선택지가 있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과연 현실에서 프롤레타리아에게 그러한 힘이 존재하였는가 싶다. 저자는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자기착취에 중독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개인보다는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자는 독자에게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고하는데, 노동하고 생각하는 것만이 유일한 미덕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현 시점에서보면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과 금융자본주의가 끔찍하게 결합하여 부도덕한 노동 윤리가 형성되고 이것이 결국은 '트럼프'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에 대한 이유를 이 책이 제시해주고 있지 않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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