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은 튀르키예 출신 소설가여서인지 오스만 투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많다. 이 '하얀 성' 또한 오스만 투르크를 배경으로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가 된 베네치아 출신 과학자와 오스만 투르크의 궁성에서 황제에게 총애를 받으려고 애쓰는 투르크인 과학자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14~16세기에 일어났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에는 유럽보다 이슬람의 과학 수준이 단연코 뛰어났다. 역사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유럽과 이슬람의 교류와 동로마 제국 멸망으로 인한 학자들의 유럽 이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일 정도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17세기에 이르면, 이슬람 세계보다는 오히려 유럽 쪽이 과학 지식이 월등하고, 투르크인 과학자는 자신의 노예인 베네치아 과학자에게서 지식을 받아 그것으로 궁성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더구나 대단히 유사한 그들의 외모와 업무적인 협력 관계는 마치 그들이 쌍둥이처럼 보이게도 한다. 특히 서로 지식을 공유하다가 과거사까지 알게 된 그들은 흑사병의 극복을 계기로 동지애가 싹튼다. 그러다 결국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하고, 서로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다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에까지 이르른다.
저자가 두 사람의 활동지로 그린 이스탄불은 그 당시 서양과 동양이 만나는 곳으로서, 여기서 서양과 동양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이는 두 인물들의 정체성이 서로 만나 결국은 동양과 서양의 정체성, 개인과 개인과의 정체성이 만나는 상징적인 곳이다. 두 인물은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결국은 '나는 왜 나인가'의 문제에 다다른다.
오르한 파묵이 다루는 역사와 배경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인간의 문제는 이곳과 동일하며, 그러므로 그가 가지는 문제의식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르한 파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