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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사회문화 #고통구경하는사회
'함께 추모합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10월 29일 포털사이트 N의 첫 화면에 뚜렷하게 적혀있는 문장이다. 작년 10월 29일엔 코로나 시기를 지나 모처럼 할로윈 데이를 즐기려고 이태원으로 나온 이들 중 159명이 압사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오늘은 이들에게 벌어난 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행진과 대회 또한 있었다.
이 책은 정확히 그 사건을 추모하는 듯,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작년의 그 사건을 시작을 열었다. '고통'이란 현장과 참사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양했다. SNS와 유튜브 등 빠르게 업로드되고 공유되는 매체가 익숙해지면서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특히 이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누군가는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들이댔고, 다른 누군가는 누워있는 이들을 함께 살리려 구조대 사이에 끼어들었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뉴스를 기다리며 사망자 수에 안타까워했고, 어디선가의 누군가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상을 전달했으며, 누군가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영상보다 더 깊숙한 고통을 살피려 했다. 좁은 골목길이라는 환경과 신고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공기관에 대한 비난은 잠시 접어두고, 사고로 인한 고통을 내가 실제로 대했더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그곳에 있었더라면 나는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달랐을까를 생각해본다.
저자는 그 사건을 예시로 각자의 위치에서 참사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다각도적인 면모를, 다양하게 고통을 구경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SNS와 유튜브로 무분별하게 공유된 영상으로 구경당하게 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촬영이 되어야 하는지 등의 윤리적인 잣대를 고민해본다. 언론인들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다 우리가 그런 고통에 (영상을 보며) 더 많이 노출됨으로 무력함으로 죄책감 또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구경으로 시작했던 어쨋든간에 그 시선을 멈추지 말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그는 이야기했다.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 때로 대중이 활용하는 기술은 부당할 정도로 쉽게 공격받는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볼 수 있는 큰 단위의 숫자만드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행동했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좋아요'와 '리트윗'같은 대중화된 기술의 효과를 괄시하거나 폄하할 필요 역시 없다. p.36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적인 이슈에 얼마나 무심한 부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뉴스에 나오는 사고는 중요했지만, 내게 급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당장 오늘 챙겨야 할 내 아이의 스케줄, 아이의 먹을 거리, 요즘 아이에게 보이는 문제 등이 내게는 어느 것보다 중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읽은 사건들은 생소하거나 겉핥기로 지나간 뉴스들이 참 많았다. 날씨는 그저 그때그때 방어하고 대처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방글라데시란 나라에서는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삶과 환경을 연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사실 기후가 전 세계적인 위기임에도 실질적인 위기에 닥치지 않았다는 거리감에 잘 와닿지 않았다. 최근 기사로 많이 등장하는 산업재해들을 여러 기사들을 접했지만, 달리 뭔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게 전부였었다. 자신들이 위험에 방치되어 있어도 그저 자신의 노력으로만 감수하고, 실제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기까지 했지만, 회사를 상대로한 그들의 목소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었다. 실제적으로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고 나니 충격적이었다. 5.18 사건도 내게는 태어나기도 전 일이니 쉽게 와닿지 않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고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지 오래였어도, 마른 눈물을 매년 끌어 올려야 겨우 고통을 인정받기에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부모의 행동을 읽었다.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떠나보낸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더이상 사과할 사람은 없는데 그들은 어디가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애끓는 부르짖음의 끝은 사과가 아닌 혐오라는 어이없는 사회 반응에 참담함을 느꼈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들의 쉼터이야기 또한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수고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떠올리게 되었고, 갑의 비난을 피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노동자분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의 선행을 볼 때, 선행 자체보다 이분법적으로 선행한 자들의 상황에 먼저 주목하는 관성적인 우리의 시선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떤 사건을 대하면서 내가 무심히 갖고 있던 무관심함, 그리고 회피의 시선을 제대로 직시하게 해 준 책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저자의 문장엔 동의하긴 어려웠다.(꼬투리를 잡으려고 한 건 절대 아니다.ㅠㅠ 납득하지 못하거나 불편했던 것을 솔직히 말하고자 한다.) 가령 지역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로 인식하기 쉽다고 주장하는데, 지역 뉴스로 사회적인 문제들이 많이 다뤄서라고 했다. 기사들이 선별되고 편집되는 과정이 중앙집권적인데 편중되어있다는 것을 KBS, MBC뉴스의 기존 기사의 주제로 저자가 분석한 것은 납득할 만한 것이긴 했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대로 서울사람은 모르는 지방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인지 몰라도) 지방에서 유독 사건사고가 많다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어쨌든 나는 내 기준에서 보건데 뉴스란 것이 대체로 부정적인 내용이 많을 뿐더러 지방에서만 사건사고가 많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P지역에선 대기업 회사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출산율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던 걸 기억한다. 또, 최근의 사건들(신림동 칼부림 사건, 분당 흉기난동 사건, 신림동 성폭행사건)을 보면 거의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한편, 저자가 말한대로 국민의 반이 서울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으니 뉴스 또한 자연스럽게 그 지역 중심으로 기사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젠더 갈등을 다룬 내용을 보면서 어떤 기사가 어떤 댓글을 인용하여 마치 그 집단을 대표하는 듯 표현하는 것은 나도 위험하다는 데 같은 생각이다. '맥락을 제거한 채 화해를 강요하는 일이 아니라, 지워진 맥락을 복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고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일(사실 쉽지 않긴 하겠다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페미니즘이 과연 '변질'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한 문장에서 살짝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변질'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후 '기레기'에 대한 단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p.218)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의 저자인 김인정 기자님의 저널리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보며 기자님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혐오표현인 '기레기'라는 멸칭은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낙인이며, 저널리즘의 실패 사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p.218)' 문장을 보면서, 그런 단어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추는 없이 그 단어에 대해 '멸칭'이라고만 칭하며 거론한 것은 (내가 별 거 아닌 것에 너무 예민한 지 몰라도) 단어에 대해 불편함을 보인 것처럼 내겐 보였다. 저자분은 기레기라할만큼 그들 부류의 행동은 하지 않았더라도, '기레기'라 불릴만한 행동을 한 다른 이들의 행위를 덮어준 것처럼 여겨져서 거슬렸다면,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걸까?
아무튼 그렇다하더라도 이 책을 보면서 남의 고통에 무작정 취재만을 위해 달려드는 게 아니라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자문하고, 고민하는 기자님의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깊고도 심오한 고민에, 위험과 고통의 자리에 에 기꺼이 나아가길 서슴치 않는 용기가 담긴 이 르포집 한 권으로 나는 다른 이들의 고통에 그저 시선만 주는 데서 멈추지 말고 의식적으로 조금더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받았다. 행동으로 나아가기까지 포기하게 되더라도 고민하기를 그치지 말 것을 말이다.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로 전진해야 한다는 방향을 기억하며 고민하고 또 작은 것이라도 행하는 데까지 나아가보기로 했다. 그게 우리가 고통을 봐도 되는 이유다. 우리는 연대된 이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체 안에 함께 하는 이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섬세함으로 머물러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옮아가야 하는지까지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기자의, 미디어의, 카메라의 윤리가 결정되는 것도 이러한 지점에서다. p.34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