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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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자전거 도둑

수남이는 16살로, 전기용품 도매상의 점원이다. 야무지고 꼼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한 수남이는 주인 영감님의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물론 주인 영감님이 늘 좋은 건 아니지만,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고 자랑스러워해주는 좋은 어르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런 수남이가 전기용품 배달을 다녀오다가 접촉사고가 생겼다. 자동차 주인은 자전거를 볼모로 5천원을 가져와야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수남이는 자물쇠가 잠긴 채로 자전거를 들고 돌아온다.


어리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수남이가 처음엔 고아인 줄 알았다. 그런 수남이에게 가족이 있다.

어른들의 말에 마음이 좌지우지하면서도 작은 칭찬에도 기분 좋아지는 수남이다. 아빠가 도둑질만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라? 어르신은 자전거를 통째로 들고온 걸 잘했다고 한다. 도둑질이라는 게 주는 묘한 쾌감과 아버지의 당부 그리고 할아버지의 가당치 않은 칭찬 사이에서 수남은 고뇌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아직은 모든 일이 크게 부딪혀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사춘기청소년의 복잡다단한 마음이 잘 담겨있었다.


2.달걀은 달걀로 갚으렴

여기서 나온 선생님처럼 인내와 지혜로 똘똘 뭉친 선생님이 내 아이의 선생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 아이는 어떻게 계란 하나로 저리 깊은 생각을 할까?

'계란'하나만으로도 여러 시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묘하고 신선했다.

도시 아이를 보며 열등감을 느낄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도시 아이들이 시골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조곤조곤 말해주는 선생님의 말이 좋았다.

열등감만 집어먹으며, 남에겐 없고 내게 있는 건 볼 줄 모를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겠다.


3. 시인의 꿈

'시'의 말을 모으기 위해 다니는 할아버지라니!

이렇게 낭만적인 할아버지가 있을까?

시에 대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는 할아버지와 아이,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다.


4. 옥상의 민들레꽃

'아파트'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 그걸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어떻게 이렇게 예리하게 꿰뚫을 수 있을까?

어린 아이라고 무시하는 그 많은 어른들 가운데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해서든 내보려는 아이,

누구보다도 제대로 된 답을 알고 있는 '나'란 아이.

왜 어른들은 '회장직'과 '아파트값'과 '모임명' 같은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리웠고, 판단을 멈추게 했나? 아이만도 못한 어른이라서 참 부끄럽다.


5.할머니는 우리 편

학군과 환경을 따라 자꾸 이사를 하는 우리집이지만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할머니는 우리편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손자의 할머니 사랑이 흐뭇하다.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건 꾸짖음이 아니라 아이의 편의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걸 텐데 자꾸 잊어버린다. 마지막 할머니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주장이 참 멋졌다.


6.마지막 임금님

성경에 나오는 '욥'이란 인물이 생각난다. 끝까지 살아남는 그 사나이와 처한 상황이 비슷한 인물이다.

자식을 잃고, 재물을 잃고, 피부병으로 온갖 고생을 다하는 사람으로.

끝까지 정신승리하는 사나이는 인물 자체가 현실적이진 않지만, 그가 말하는 한마디한마디에서 우리의 삶 속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보여준다.


어쩌면 탈무드 같고, 어쩌면 깊이있는 동화명작을 보는 것 같은 단편집이다.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한국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기도 하다.


문장에서 시의 운율이 랩의 라임이 느껴진다. 이래서 박완서 작가님의 문장이 좋다.


바람이 여전하다. 저만큼서 흙먼지가 땅을 한꺼풀 벗겨 홑이불처럼 둘둘 말아오는 것같이 엄청난 기세로 몰려온다. p.31


사회 현실과 인물의 속내를 꿰뚫는 예리함과 섬세하게 찌르는 날카로움의 정도가 좋다.


그러니까 궁전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나 봅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모두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p.104


문장이 이토록 마음을 울릴 수 있나?


"시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살기가 불편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살맛이 있었을거야."

"살맛이 뭔데요? 그것은 초콜릿 맛하고 닮은 건가요? 바나나 맛하고 닮은 건가요?"

"그건 몸으로 본 맛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보는 살맛하고는 비교를 할 수가 없지.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껴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란다."

p.94


잊혀진 한국미가 느껴져서 좋다. 바람의 유익을 말해주는 단락이, 나무의 종류를 쭉 읊어 내어주는 문장이 참 좋았다!


시골의 바람부는 날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보리밭은 바람을 얼마나 우아하게 탈 줄 아는가, 큰 나무는 바람에 얼마나 안달맞제 들까부는가,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함께 사는 숲은 바람에 얼마나 우렁차고 비통하게 포효하는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이 골목에서 자기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수남을 고독하게 했다. p.23-24


"도시 아이들은 아마 토끼풀하고 괭이밥하고도 헛갈리는 애 천질걸. 한뫼야, 우리가 문명의 이기에 대해 모르는 건 무식한 거고, 도시 아이들이 밤나무와 떡갈나무와 참나무와 나도밤나무와 참피나무와 물푸레나무와 피나무와 가시나무와 은사시나무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와 삼나무와 잣나무와 측백나무에 대해 모르는 건 유식하다는 생각일랑 제발 버려야 한다. 그건 똑같이 무식한 거니까, 너희가 특별히 주눅들 필요는 없지 않겠니."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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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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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들 중 '컬링'을 보며 평창 올림픽 때 '영미영미!!'하고 열광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컬링 경기를 봤다. 양궁의 과녁과도 같은 원 안에 손잡이가 있는 빨간색 혹은 노란색 스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해설을 해 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봐도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컬링'을 지식백과에서 찾았다. 거기서 인용된 글들에 구미가 당겨졌는데, 바로 이 책 '그냥, 컬링'의 내용이었다.


난 2018년 평창올림픽으로 처음 '컬링'을 알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또한 그랬을거다. 그런데 이 책은 2011년에 출판됐다. 무엇이 작가님을 '컬링'에 관심을 갖게 했을지, 어떻게 이런 '비인기 종목'(?, 지금은 인기종목이에요!! 적어도 제게는!!)을 콕 집어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물론 끝내는 알 수 없었다는 게 비극이지만 말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컬링 경기가 멈추기 전까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책임에도 '컬링에 대한 지식들이 틈틈히 들어있었고, 따로 컬링 규칙을 알아보니 이번 베이징 올림픽 속 컬링경기가 상당히 재밌어졌다. 빙판계 스포츠 선수들 등장과 함께 주인공인 차을하의 동생, 차연화가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라 이또한 (미비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속 피겨 경기와 맞물려서 반가웠다. '그냥, 컬링'팀이 강원도에 가서 매일 감자캐고, 자고 밥먹고, 일하며 하체 근육을 키우는 장면은 강렬하고 뜨거운 여름방학의 모습이 상상됐다. 힘겨워도 추억이 될만한 이야기. 수박에, 물속에 풍덩까지!!

재치있는 문장과 비유, 표현만으로도 책장 넘기기 바쁜데, 컬링이야기에, 스토리 전개도 시원시원해 읽기 좋았다.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학교 내 체벌이 지금의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일 수 있겠다.

이 책이 나온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권력 앞에서 '약자'는 '약자'로 답이 되어버리는 서민들의 현실은 비슷해서 씁쓸하다.


누군가의 관심 밖인 비주류이면서, 아직은 성인이 안 된 미성년자들이 자신이 즐거워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니, 난 중고등학교 시절에 뭘 했나를 떠오르기도 하고, 이렇게 노는 이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싶기도하고, 이 아이들의 미래는 한국 사회 속에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11년 전이라 참 오래된 책인 건 맞는데, '컬링'을 애초에 알아봐주시고 이렇게 멋진 소설을 만들어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 덕분에 재밌게 컬링을 알았고, 책 또한 재밌게 읽었다.^^


컬링 한번 보셨으면, 이 책에서 스톤(stone) 나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해설위원분들도 친절하게 말해주시긴 했지만, 글로 읽는 컬링 이것 또한 묘한 매력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으면 밥상의 그릇들이 컬링 스톤으로 생각!까지는 안 날지라도 '그런 상상 가능하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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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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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는 아니었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잘 키울 거라 생각했는데, 계획하고 예상한 대로 내 아이를 잘 키워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그 아이였는데, 지금은 내 눈을 똑바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이런 사이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여러 질문을 내게 던져내던 책! 바로 이 책 '다섯째 아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둘째 아이) 응급실과 아이를 수차례 잃어버린 일들을 겪느라 1년을 보낸 후, 어린이집에서 문제아로 찍힌 지 몇 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책인데도, 2020년대를 지나고 있는 엄마인 나에게도 관통하는 것이 있었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조금도 쉽지 않다'는 것. 그 사실을 소름끼치도록 극에 치닫게 알려주는데, 또 위로와 격려라는 묘한 감정도 주는 아이러니한 책이었다.


보수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자신의 기준을 갖고 있던 남녀(데이비드, 해리엇)가 서로를 알아보고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도시 런던이 아닌 변두리의 대저택을 구입한다. 그곳에서 많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꿈꿨다. 행복을 추구했고, 행복하기 위해 그들이 꾼 꿈을 따라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5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4명의 아이를 낳기까지 경제적인 문제나 육아의 버거움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그들과 더불어 매년 특별한 날(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을 보내며 그들의 꿈은 성취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섯째아이가 태어나고 달라졌다. 사람들은 떠났고, 가족 다른 구성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아이는 시설에 보내어져서 이 책에서 사라지는 듯 했지만, 엄마인 해리엇을 통해 구출되고, 다시 한 가정의 중심부에 서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집을 떠난다. 다섯째 아이만 빼고. 다섯째아이, 벤 그의 어떤 면이 그 모든 것을 해체되도록 만든 걸까?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이 '다섯째아이'라는 한 존재를 통해 파괴되어버렸다. 경제적인 흔들림 속에서 (데이비드 아빠 찬스)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극복했다. 계속 태어나는 네 아이를 육아해야 하는 상황도 가족(친정엄마찬스)의 도움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섯째아이란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하고, 괴기하며, 희망이 없어보이는 아이다. 더이상 부부는 그들의 꿈과 이상을 끌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각자의 인물들, 그들의 선택을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혼을 한 부모님 중 누구를 따라갈까? 네 아이를 돌보는데 나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까? 나는 런던(도시)를 따라 변두리(시골)에 갈 의향이 있을까? 여러 질문을 해보았는데, 무엇보다도 '다수(네 아이)를 위해 벤(다섯째아이)을 집밖으로 쫓아낼지, 소수(벤)을 품어내기 위해 그에게 집중할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데에 가장 관심이 갔다. 대부분의 부모 아니 특히 엄마라면 아픈 손가락을 먼저 붙들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민이 된다. 내가 해리엇의 입장이라도 (몇년 전도 나도 그랬듯이), 그녀처럼 벤을 찾아 수용소에서 나오게 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까진 못해도) 책임지려했을 것 같다. 네 명의 아이도 내겐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많은 반면 벤을 사랑해줄만한 사람은 나(엄마) 외에는 아무도 없다. 회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만은 없는 사람이 바로 '엄마'니까, 그게 어쩌면 엄마로써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변두리에 집을 사고, 많은 자녀들을 거느리는 꿈을 꾸게 했던 건 무엇일까?

데이비드는 행복을 추구했다고 책에 나왔다. 그의 목표는 가정이었다. 아마 많은 자녀들과 풍족하게 살아가는 걸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 2시간이 소요되는 출퇴근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많은 자녀를 갖고 싶어했다. 해리엇 또한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왔고, '가정 생활'을 행복한 인생의 기본으로 여긴 해리엇의 부모의 영향을 받아 데이비드와 비슷한 꿈을 꾸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가정은 그들에게 기반이었고, 그게 곧 행복이지 않았을까?


행복을 위해 나는 무얼하고 있나?

데이비드와 해리엇이 행복을 위해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꾸준해보였다. 그들은 '행복'하기 위해 꾸준하고 일관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을 위해 무얼 하고 있을지 나 자신에게 질문해봤다. 딱히 '행복'하기 위해 삶을 산다기 보다는 나이가 들다보니 '내게 편(안)한 것'을 많이 찾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독서취향찾기, 치고 싶을 때 피아노치기 등 취미)을 편하게 내키는 대로 하려 하고, 또 '관계'에 굳이 목매지 않으려고 마음을 내려놨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라고 되내이며 그동안 완벽하려고 애쓴, 끊임없이 이상적인 이들과 비교하며 나를 자책했던 모습을 내려놓기로 했다. 아마 이게 행복을 위해 하고 있다면 하고 있는 것들일 거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내는 소리를 듣는 듯 소름돋게 하고, 더이상의 최악은 없다라고 말하는 듯 극단으로 몰아넣고, 계속 '너라면 어쩔껀데?'라는 질문을 쏟아내는 책이었다. 다시 꺼내 읽으며 (몇 년 전) 처음 읽던 때와 비슷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기도 하고, 또 내 아이도 크면 저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기도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애키우는 건 부모의 '노오력'이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데서 묘하게 공감했고, '내 아이가 다섯째아이만큼의 최악은 아니다'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위로했다.


경악하고 벼랑끝에 몰리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 또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질문하게 하고, 답이 없어 생각을 유도하는 책이 좋은 책이고, 이 책도 그런 책이라는 점에서 재독하길 잘했다며 읽었다. (물론 자발적이지 않고, 타의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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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붙임) 산등성이에 있어 본 적이 없을테니까.

박완서 작가님의 글맛!!!
문장에서 리듬감이 맛깔남이 느껴진다.
이건 타고나는 작가의 능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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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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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개의 단편소설로 되어 있다.


1.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유나씨 아버지의 애인이란 사람 말이다.

동성애는 제 3자인 입장에서도(물론 나도 아직까지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여기선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애인이 있는 것도 모자라 그 애인이 동성이란다. 이 현실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한 의사가 그런 환자의 사생활을 자신의 글 소재로 사용했다는 데에서도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서 논란이 되었던, 그래서 수상작에서도 빠져 재출간되고야 만, 그 책 중 한 작가님이 떠오르기도 했다.(전 그에 대해 비판도 이해도 어떤 입장도 아닙니다.) 하필 이 책에서도 동성애와 타인의 삶을 차용하는 내용이 한데 나온다.

** 공교롭게도 이현석작가님의 이 책 2번책(다른세계데서도)이 그 수상작에 실려있다.


2.다른 세계에서도

이 소설은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위에 말한 논란이 되었던 책, 한 출판사 수상작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 책을 소장하고 있고, 그렇게 읽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부르는 대상이 알고보니 파릇파릇 사랑스러운 대상이라 그런 설정이 신선했다. 재독하면서는 '낙태법'에 대해 관심있게 봤고, 현재는 어떤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따져보게 됐다.

([출처]낙태법 요모조모|작성자 뉴스 큐레이터)

이 책은 당시 낙태법을 주장하는 여성들, 산부인과의사인 나, 그리고 혼전임신한 여동생의 상황과 마음을 잘 묘사했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태아의 생명 못지 않게 태아의 모체가 되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낙태법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수술대상은 12주 이하였지만, 자신 또한 임산부로 낙태를 시켜야 하는 한 산부인과 의사의 괴로움이, 그리고 낙태는 고사하고 이대로 행복을 유지하고픈 여동생의 기대와 같은 모습도 있다. 그 중간에서 내가 겪고 있는 갈등, 결정, 그리고 '당신(편지글의 주인공)'을 향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님이 남성임에도 '의사'의 입장에서 여성의 시각을 빌려 '낙태법'을 바라봤다는 것, 사회적으로도 가치있는 주제를 적절하게 다루어줬다는 것, '낙태법'을 중심으로 여러 입장을 보여준 것이 이 작품이 참 괜찮았다고 여기는 이유다. 어떠한 입장이라기보다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법제정과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3.라이파이

'라이파이'가 뭔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좋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집안의 기세가 기울어졌고, 자신 또한 그저그런 평범무난한 삶을 살았으며, 아내를 간병하며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고 난 후의 아버지가 있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엉뚱한 포즈를 취하고, 말을 한다. 아버지의 노년엔 '라이파이'처럼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되길 더 갈망했었나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걸 알지만, 더더욱 멀어진 상황에 좌절하며 아버지는 결국 자기의 정신을 놓아버린 걸까? 아버지의 병이, 그리고 아버지의 고집이, 현실을 더 처참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이 마음아프다.


4.부태복

사실 이 작품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EBS 라디오에 소개된 책이었는데,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자이면서, 의사인 부태복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게 들렸다. 그가 '남한'을 가볍게 내리깔며 뱉어내는 대사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막연하게 남한이 여러모로 (기술, 경제 등) 북한보다 앞섰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선 오히려 그들을 내려보는 우리의 자만함이 부태복을 통해 시원하게 일격당하는 모습이 짜증스럽다기보단 시원하게 느껴졌다.

첫문장인, '진단은 귀납적 추론이다'라고 말하는 '나'의, 남한식의 진단은 '부태복'의 진단법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부태복)는 굳이 말하자면 연역적 진단을 행한다. 그런 부태복이 아니꼽고, 별스러워 보이지만, 그가 내리는 기가 막히는 진단을, 의사로써의 유능함을 (흔쾌하지 않아도) 난 인정한다.

하지만, 나보다 아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의외의 뛰어남을 보일 때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랄까? 부태복의 손에 꼽는 몇 개의 실수는 나에게 '거대한 실수'로 탈바꿈하여 그를 믿을 수 없는 의사로 둔갑시킨다.

2018년 소설이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도 우리 속을 썩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기에 등장하는데, 저자가 이를 예언한 것 아니냐 할 정도로 대단하다고들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스도 메르스도 신종코로나와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라서 이미 의학계에서는 알고 있을 '바이러스명'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신종코로나 19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동일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작가님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언급한 것에 대해 놀라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필 그 많은 바이러스 중에 '코로나'를 사용했다는 것자체는 나 또한 깜짝 놀랐다.

결국은 부태복이 맞았다. 음압격리가 필요한 환자였고, 감염위험이 있는 '바이러스'라던 그의 주장말이다.

그와 함께 중국을 통해 탈북한 이들과 귀순한 이들이 다르고 그들간에도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남한 의사들 긴장해야 함다. 이러다 통일 되면 어쩌갔슴까?"라고 한방 쏜 부태복의 말이 지금도 계속 내 귀에 울린다. 그 말이 나를 키득거리게 한다.


5.컨프론테이션

TV에 상담하는 프로들을 보면 '이혼전문변호사'가 제일 할 일이 많아보였다. 그런 면에서 '문화부문' 변호사의 모습을 다룬 게 눈에 띄었다. 법학과출신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미묘한 우월감과 열등감도 알만하지만 그 모습이 스토리텔링되어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이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해 말하는 장면, 서울시내, 미술관 데이트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이 전체적으로 퍽퍽하고 씁쓸한 사회문제를 다룬 분위기인 것과 반해 거기서 살짝 빠져나올, 숨통이 트이는 구간이 된 것 같아 설레이고도 달콤했다.


6.눈빛이 없어

화력발전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란 사람, 그저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열심히 소비하는 사람이었다. '희곤'이 M군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였던 그 속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소박한 인생, 아픔을 보니 그분들의 고통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그 사건 당시 그곳에 있었고, 당한 자들의 눈빛은 그 이후부터 사라졌다.

최근엔 건설현장에서 사망하신 분들의 확인소식들이 조금씩 들렸다. 2018년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작업을 하던 24살 청년 김용균 원청 대표는 3일전(2022-02-11) '무죄'로 판결이 났다. 여전히 그들의 소식은 들리지만 약하고 희미하다. 그보다 더 강하고 구미를 당기는 소식에 더 시선이 가는 내 관성의 본능을 자책한다.

희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눈빛에 관하여 생각해야만 했다.(p.216)


7.너를 따라가면

1980년대 지금의 내가 떠올리는 언니, 마를 피우며 자기는 이곳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후랑크후르트로 간다고 했다. 그 언니는 후랑크후르트에 갔을까?

그 언니 덕에 나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되었고, 지금 수류탄이 떨어지는 이 상황에서 가슴조리며 간호인으로 살아간다.


8.참(站)

'우두커니 설 참'이다. 대학병원에서 타학교 출신 '진영'은 이곳에 남아있고자 하지만 이번에도 '재계약갱신안내'로 문자를 받는다. 동일대학을 나온 김선배는 이미 다른 곳에 병원을 차려 자리를 잡았지만, 최교수는 같이 있는 '진영'이 아닌 떠난 김선배의 자리를 더 아쉬워한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자신을 향한 시선, 그리고 타학교 출신으로 당연히 배제당하는 자신의 처지에 참담하다. 그럼에도 주어진 일 속에서 진실 따라가려하지만,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여론에 따라 진실을 조작을 요구받는 모습에 진영은 갈등한다. 자신도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할지, 아니면 진실을 따라야 할지.... (이 소설이 어려웠다. 이 책의 맨끝이라 힘이 많이 빠져있는 상황었는데, 끝으로 읽기에 강렬하고 묵직해서 다 소화하지 못했다.)


이현석 작가님의 본업은 '의사'다.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은 문장은 냉철하고 예리하다. 그런데 시선은 따뜻하고 포용적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여러 의료계의 상황들, 그리고 약자들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님의 작품이어서 참 좋았다. 책 한 권을 보면서 이렇게 찾아보고, 알아보며 (그다지 깊지는 않습니다만) 파고든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그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이고,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의사선생님께서 이렇게 글까지 잘 쓰시면 어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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