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은 집 나를 닮은 인테리어 - 나답게 삶을 즐기는 인테리어 스타일링북
HERS 편집부 지음, 박승희 옮김 / 즐거운상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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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처럼 처음부터 집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 반평생을 떠돌아다니던 집들은 내 집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달라질 수 없다는 집들이었다. 곧 떠나게 될 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핑계이며 내가 집을 꾸미지 않은 이유의 30프로에 해당한다. 나머지 70프로는 내가 관심이 그냥 없던 거였다. 그래서 인테리어나 미적인 감각이 제로였고 말이다.


전월세로 10년 가까이 여러 집을 떠돌다가 내 집이 생겼다. 기쁘기도 했지만, 두려웠다. 새 집인데 예쁘게 꾸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집 아닌 집은 다 예쁘던데, 내 집은 어떻게 꾸미지? 해본 사람이 해야지, 안 해본 사람이 하려니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오브제 냉장고 하나만해도 색배열 때문에 매장을 들러가며, 냉장고 홈페이지에서 이색 저색 들이대며 몇날 며칠동안 좋은 색배열을 못찾아 난리였다.


가구를 사려고 들어갔던 가구집 사장님이 그랬다.

"컨셉을 잡으세요. 그리고 그에 맞는 가구를 구입하세요."


맞는 말씀인데 취향이 없는 사람이라 컨셉도 잡기도 어려웠다.(사장님 제가 그걸 몰라서 미치것어요.ㅠㅠ) 계속 '다 좋아~'하는 취향없는 나와 씨름하는 수밖에 없었다. 씨름하다보니 보이고 들렸다. TV없는 우리집은 서재형 거실로 꾸미고 싶어했던 내 요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서재형도 화이트계열로 갈지, 나무색감으로 갈지도 한참 고민했다. 나는 나무색도 좋았고, 화이트톤도 좋았다.(다 좋은 걸 어떻게!! 취향이 없다는 것! 결정엔 최악!!) 그래서 거실은 나무색톤으로 부엌과 안방은 화이트톤으로 컨셉을 잡았다. 나머지방은.... 막 컨셉?^^(너무 사담이 길어졌다)




"도전하지 않으면 집은 점점 녹슬어버려요."

이 한 문장에 마음이 가서 고른 책이었다.

처음엔 집을 어떻게 꾸밀까 설레이고, 도전하고, 고민했는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집에 이젠 익숙해져버렸다. 이 집도 이렇게 가다간 녹슬어버리겠다는 생각에 집에 대한 애정이 식어 미안해졌다.

'이 책 보고 더욱 집에 애정을 가져보자!' 하고 이 책을 집으로 가져왔다.

쭉 훑어보니 내가 고민했던 것들, 내가 갖고 싶어했던 공간들이 보이고, 떠올라서 좋았다.

최근,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코로나 확진이 됐다. 가족 챙기고 집안일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날들이었다. 감정도 피폐해졌고, 나 자신을 다독일 에너지도 없었다. 책이 읽힐 리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의 개성이 담긴 집들을 구경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다독여졌다. 책이 안 읽혀서 마음 둘데가 없었는데, 이 책의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책이 그나마 손에 잡혔고 시간도 그렇게 흘러보낼 수 있었다.

그저 남의 집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 찾은 책인데, 이 책을 보며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깨달은 게 있다.


가끔은 독서에도 환기가 필요하구나!


내가 읽던 책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이 때론 한 곳에 박혀있던 내 시선에 활기와 에너지를 불어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주 이렇게 시선을 돌려줘봐야겠다.

우리나라와 서양 사례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일본인들의 가정이었다. 집주인들의 직업을 보니 전문직에 여유롭고 자신들을 꾸미는 안정감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처럼은 될 수 없는 나는 전형적인 구조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다양한 것들(집이나 가구의 재료, 식물, 구조 등)로 자신의 개성을 얼마든 꾸밀 수 있다는 건 대략 참고할만 했다. 인테리어 잡지를 읽는 느낌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집의 모습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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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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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냈던 긴긴밤을 떠올려본다.

- 탈수 오기 전에 대형병원으로 가보라고 소아과에서 소견서 받았을 때

- 어린이대공원에서 잠깐 쓰레기 버리다가 돌아봤더니 애 없어져서 찾았던 순간

- 다른 아이를 쳤다고 상대부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는 전화를 어린이집에서 받았을 때

- 온몸이 벌거벗은 상태로 의식없이 링거만 맞고 있는 아이를 응급실에서 봤을 때

- 아무것도 안 보이는 'ㅇㅇ천'의 밤, 어둠이랑 내 아이 아닌 다른 사람들 밖에 안 보였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긴긴밤'들이 있을 것에 비하면 고작 몇 가지일텐데 지금도 아찔하다. 앞으로의 '긴긴밤'을 나는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견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보내고 싶지 않아서 보내는 게 두려워 엄마는 마음 속이 아릿하고 찌릿하다.

이 책은 '노든'이라는 코뿔소가 자신을 성장하도록 돕는 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가족이 되고 해체되고, 친구를 만났다 이별하고, 드디어 새 친구를 만났는데 상실과 함께 다른 친구가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시선으로 코뿔소 노든의 한 생애를 바라보았고, 노든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던, 그래서 내가 살 곳 '바다'를 찾을 수 있었던 그 구구절절함에 코끝이 찡해진다.


'긴긴밤'을 함께 보낸 누군가가 있었고, '긴긴밤' 동안 외로히 분투하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그 긴긴밤을 보내기 위해 지지해주는 자와 견디는 자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인간? 사람?

자신의 친구들을 앗아간 이들을 코뿔소 노든은 '인간'으로 본다. 그들에게선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난다. 바로 총 냄새다. 인간들은 코뿔소의 뿔을 자른다. 노든의 가족들을 죽였다. 그래서 노든은 인간이라면 다 들이받으려는 복수심에 불타있다.

하지만 모두가 나쁜 '인간'은 아니다. 노든을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하고, 영양주사를 맞게 한 '사람'도 있다. 나중에 노든은 친구 코뿔소 '앙가부'를 통해 세상엔 좋은 '인간'들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의심이 되는 '인간'들이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동물들을 공격하지만은 않았다.


친구는?

노든의 아내는 '우리'에서만 자라온 노든에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자라온 앙가부(코뿔소)는 '노든'에게서 바깥세계에 대해 듣는다. 치쿠는 바다에서 동물원으로 들어온 펭귄 친구를 통해 '바다'가 무엇인지 알았고, 육지에서만 살았던 노든은 치쿠가 말해준 '바다'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접하게 됐다.

이렇게 친구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알려주는 존재와 같다.


다른 무리들과 자란 또 다른 존재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들의 무리에서 자라 '훌륭한 코끼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노든은 코뿔소였고, 코뿔소 답게 자라야 했다. 그래서 코끼리 무리를 떠났다. 훌륭한 코끼리처럼 자란 노든은 코뿔소로 성장해 간다. 이와 비슷하게 '나(펭귄)'는 처음 만나고, 성장하게 도와준 존재가 코뿔소였다. 노든처럼 훌륭한 코뿔소가 되고 싶었지만, '펭귄'으로 자라야했다. 그래서 훌륭한 코뿔소와 같이 자라 '나'의 세계 '바다'로 나아간다.

한 인간의 성장을 위해 '가족'만 필수요소일까? 생각이 든다. 다른 존재이고, 다른 환경일지라도 누군가의 충만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노든처럼 그리고 '나'처럼 말이다.


글과 그림 모두 루리작가님이

글과 그림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글과 그림 모두 한 작가님에게서 나왔으니 전달력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다. 코뿔소를 가둔 철조망이, 펭귄이 힘써 내려간 절벽이 그림을 통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다만, 코뿔소에게 모든 슬픔을 다 떠넘겨 주신 건 (어쩔 수 없으셨다 하더라도) 너무 슬펐습니다. ㅠㅠ


노든에게 '나'에게

노든! 너는 너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쏟아내고 살아냈어. '나'라는 펭귄이 적에게 똥을 찍찍 쏘아댈 수 있고, 재빨리 숨을 수 있는 생존능력을 갖춘 것보면, 넌 한 생명을 그에 맞게 잘 키워냈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삶을 마저 살아냈으면 좋겠어. 감당할 수 없을만큼 슬픔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삶 속에 작은 행복 속에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얼룩알의 펭귄!!('나') 당차게 야무지게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받았듯이 그 삶을 잘 살아주길 바라. 끝이 없는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고, 바다친구들 잘 사귀고, 맛있는 정어리도 실컷 먹고!! 특히 맹추위조심하고, 바다표범이랑 고래를 조심히 피해다니거라!


상실을 경험하거나, 긴긴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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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독립 : 부엌의 탄생 띵 시리즈 15
김자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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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더라?

인터넷 서점에서 소개와 인용문장을 보고 선택했던 것 같다. 일단 '식탁', '음식'이란 단어가 '요리주체'가 되는 내겐 자주 흥미로운 소재였고, 그것들을 다룬 글이 뭔가 내 구미를 당기게 한 모양이다.


의류학을 전공하고 패션 매거진의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가, 밥을 스스로 지어 먹는 '식탁독립!'이란 걸 하게 된 건, 과거 4년간 지리산 근처에 집을 마련하였을 때였다.(이유는 없지만, 숙박업도 하신 모양이더라고요^^) 네ㅇ치킨이나 교ㅇ치킨을 사려면 읍내까지 16km(차로 25분)의 거리이고, 배달도 불가능하며, 동네 마트는 8-9시면 닫는, 편의점도 자정이면 문을 닫는 곳(작가님 표현에 의하면 전혀 콘베니언트하지 않은 콘베니언스 스토어라고 함)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저자만의 독립된 식탁이야기가 공개된다.


초보요리사의 좌충우돌 요리 경험에 섬세한 감정을 담겨있어 공감이 된다. 주변이야기와 기존 경험 갖가지를 떠올리며 펼쳐나가는 그녀만의 에세이가 실소를 터뜨리게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삼시세끼는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를 말하는데, 다른 처지임에도 '바로 그거다! 맞다!'하며 박수쳤다.

나도 처음 요리할 때 이런 심정이었지라는 추억을 떠올렸다.

오! 초보라며 이분이? 내 도전의식도 고취되었다.(라구소스와 매생이 부분에서 그랬음)

우리 남편도 나보다 요리 잘하는데부터 남편과 미묘한 신경전도 소소하게 이해됐다.

스텐팬부터 밥솥까지 '요리에 깊숙히도 들어가셨네' 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 살림에서 배울 것도 쏠쏠히 있다.(아주 많다는 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오이지, 콩국수)에도 침이 고이는 게 만드는 표현!!


이사스토리, 고등학교때 경단만들기, 엄마를 향한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 등 누구나 겪고, 느껴봤을 소소한 경험인데도 무릎을 탁치게 하는 센스넘치는 문장들과 현실을 통쾌하게 콕콕 집어내는 표현력까지 더해 표지만큼이나 상큼하고 즐거운 에세이였다.


매 에세이 챕터가 끝나면 '오늘 배운 것'이라는 마무리 짓는 '결론 메시지'도 색달라 좋더라!

띵시리즈 답게 소소하고 유쾌하면서 애정이 갈만한 에세이였다!^^




... 이 책은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세 끼니를 지어 먹게 된 사람의 분투기다. 조리대 앞에 서서 느꼈던 솔직한 마음을 썼다. 무력감과 외로움, 피로와 분노, 그리고 사랑과 자부심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 밥을 짓는 일이란 깊이 침전된 기억들을 휘젓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p.11


.... 나는 별 볼 일 없이 빈들빈들 살아보려 여기까지 왔는데, 끼니는 쉼 없이 찾아와 간섭한다. 그래서 이봐, 오늘 점심은 뭐 먹을 거야? 냉장고 비었던데, 저녁은 어쩌려고? 매일매일 나의 나태를 꾸짖는 끼니. 그 근면이 끔찍할 정도다. p.21


내가 먹고 싶다는 걸 죄다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두 번째 엄마를 만난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는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해싿. 가장 신기한 건 검색이나 계량은 하지 않고 가끔씩 간을 보며 뚝딱뚝딱 요리한다는 것. 어느 날 "그 양념 비율은 어떻게 아는 거야? 외운 거야?"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예전에 먹었던 맛을 생각하면서 하나씩 넣어보는 거야. 해보면 다 알게 돼." 어. 그래. 멋지다. 근데 좀 얄밉네? p.31


오늘 배운 것: 랩이고 물안경이고 다 소용없다. 파를 썰 때는 광광 우는 수밖에. p.39

... 제로 레벨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우선 사온 재료를 모두 적는다. 다른 종이에는 그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적는다. 그리고 또 다른 종이에는 다음번에 사야 할 것을 적는다. 세 개의 리스트는 끼니가 지날 때마다 수정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메모 1

냉장: 절단 닭고기, 국거리 소고기, 돼지고기 앞다리살과 ....양송이 버섯, 사과, 단감, ....

냉동:만두, 손질 고등어, 식빵, 어묵

실온: 참치캔, 홀토마토캔, 파스타면 ....

메모2

간장찜닭, 제육볶음,,,,,(메모 1재료로 할 수 있는 음식을 뜻하는 듯)

규칙 같은 건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적어둔다. 저 많은 메뉴를 내가 다 만들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일단 적는다. 우리 팀엔 구원투수 J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 그를 등판시키면 된다. ...

두 개의 메모가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하면 메모 3이 채워진다. 다음번에 장 보러 가서 사야할 것들의 목록이다. ...

p.43-44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을 떄, 내가 처음 한 일은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는 거였다. 구매한 책이 스무 권쯤 되고, 빌려서 본 책도 그쯤 된다. 남들의 실패담과 성공담, 조언과 책망을 듣는 것마저 즐거웠다. 그만큼 커다란 열망이 었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필사였다. 너무 사랑해서 세 번 네 번 읽은 소설을 똑같이 타이핑했다. 필사한 파일을 따로 모아 읽고 또 읽고 다시 필사하고. 집착에 가까운 일이었다.

.... 이 시점에서 나는 글쓰기와 요리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책(만) 읽는 건 만고 쓸데없다는 사실. p.75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안 멋진 말만 쓰더라도 책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글쓰기의 첫 원칙이다. 버티고 앉아 읽고 생각하다 보면 뭐라도 쓰게 된다. 써지지 않을 떈 써지지 않는다고 쓴다. 음식도 마찬가지. 되도록 자주 주방에 서서 이것저것 만들어봐야 자기 것을 갖게 된다. p.77

오늘 배운 것: 해감할 떈 물 1리터에 굵은 소금 한 숟가락을 넣어 녹인 뒤 두 시간 이상 두어야 한다. 숟가락을 함께 넣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p.82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중에서 p.106


사민 노스랏의 책 <소금, 지방, 산, 열>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내용은 "맛을 보고, 맛을 보고, 또 맛을 보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맛을 잘 보고 냄새를 잘 맡느냐에 따라 요리의 수준이 정해진다."고 했다. 감각을 훈련하고 감각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파스타 삶을 물을 맛보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맛보기'와 '간보기'를 같은 표현으로 알고 있던 나는 그저 짜고 싱거운 정도만을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 그녀는 "요리는 재즈 음악가의 귀처럼, 맛을 많이 접할 수록 감각은 더욱 섬세해지고, 다듬어지고, 즉흥적인 변화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라면서. p.126-127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은 자라나는 동안 자신을 먹인 사람을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다. 먹이는 자의 일상을 헤아려보는 일이다. 열심히 저녁을 만들어 한 상 차리고 마침내 식구들이 둘러 앉았을 때, 엄마는 왜 자주 입맛을 잃은 표정이었는지. 뾰로통한 사춘기 딸들과 무심한 남편에게 왜 자꾸만 짜냐고 안 짜냐고 맛있냐고 맛이 없냐고 물어보았는지. p.178


자혜야 간 좀 봐, 라는 말은 엄마의 세계로의 초대였을 텐데 나는 번번이 귀찮음을 표현했다. 콩나물 심부름을 시켰을 떄, 엄마는 왜 만날 나만 시켜? 미리 사다두지 않고서 귀찮게! 소리를 지르면서 발에 신을 꿰었던 일, 입맛이 없다며 우리 먹는 걸 지켜만 보는 엄마에게 한 번 더 권하지 않았던 일, 국이 시원하다 찌개가 맛있다 오늘 고기반찬이 최고다 그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아 귀찮아 왜 자꾸 물어봐 뺵뺵거렸던 일. 그런 장면들이 저 멀리서 되돌아 달려와 내 가슴을 쾅쾅 친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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