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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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냈던 긴긴밤을 떠올려본다.

- 탈수 오기 전에 대형병원으로 가보라고 소아과에서 소견서 받았을 때

- 어린이대공원에서 잠깐 쓰레기 버리다가 돌아봤더니 애 없어져서 찾았던 순간

- 다른 아이를 쳤다고 상대부모님이 화가 많이 나셨다는 전화를 어린이집에서 받았을 때

- 온몸이 벌거벗은 상태로 의식없이 링거만 맞고 있는 아이를 응급실에서 봤을 때

- 아무것도 안 보이는 'ㅇㅇ천'의 밤, 어둠이랑 내 아이 아닌 다른 사람들 밖에 안 보였을 때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긴긴밤'들이 있을 것에 비하면 고작 몇 가지일텐데 지금도 아찔하다. 앞으로의 '긴긴밤'을 나는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견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보내고 싶지 않아서 보내는 게 두려워 엄마는 마음 속이 아릿하고 찌릿하다.

이 책은 '노든'이라는 코뿔소가 자신을 성장하도록 돕는 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가족이 되고 해체되고, 친구를 만났다 이별하고, 드디어 새 친구를 만났는데 상실과 함께 다른 친구가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시선으로 코뿔소 노든의 한 생애를 바라보았고, 노든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던, 그래서 내가 살 곳 '바다'를 찾을 수 있었던 그 구구절절함에 코끝이 찡해진다.


'긴긴밤'을 함께 보낸 누군가가 있었고, '긴긴밤' 동안 외로히 분투하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그 긴긴밤을 보내기 위해 지지해주는 자와 견디는 자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인간? 사람?

자신의 친구들을 앗아간 이들을 코뿔소 노든은 '인간'으로 본다. 그들에게선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난다. 바로 총 냄새다. 인간들은 코뿔소의 뿔을 자른다. 노든의 가족들을 죽였다. 그래서 노든은 인간이라면 다 들이받으려는 복수심에 불타있다.

하지만 모두가 나쁜 '인간'은 아니다. 노든을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하고, 영양주사를 맞게 한 '사람'도 있다. 나중에 노든은 친구 코뿔소 '앙가부'를 통해 세상엔 좋은 '인간'들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의심이 되는 '인간'들이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동물들을 공격하지만은 않았다.


친구는?

노든의 아내는 '우리'에서만 자라온 노든에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 평생을 동물원에서 자라온 앙가부(코뿔소)는 '노든'에게서 바깥세계에 대해 듣는다. 치쿠는 바다에서 동물원으로 들어온 펭귄 친구를 통해 '바다'가 무엇인지 알았고, 육지에서만 살았던 노든은 치쿠가 말해준 '바다'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접하게 됐다.

이렇게 친구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알려주는 존재와 같다.


다른 무리들과 자란 또 다른 존재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들의 무리에서 자라 '훌륭한 코끼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노든은 코뿔소였고, 코뿔소 답게 자라야 했다. 그래서 코끼리 무리를 떠났다. 훌륭한 코끼리처럼 자란 노든은 코뿔소로 성장해 간다. 이와 비슷하게 '나(펭귄)'는 처음 만나고, 성장하게 도와준 존재가 코뿔소였다. 노든처럼 훌륭한 코뿔소가 되고 싶었지만, '펭귄'으로 자라야했다. 그래서 훌륭한 코뿔소와 같이 자라 '나'의 세계 '바다'로 나아간다.

한 인간의 성장을 위해 '가족'만 필수요소일까? 생각이 든다. 다른 존재이고, 다른 환경일지라도 누군가의 충만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충분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노든처럼 그리고 '나'처럼 말이다.


글과 그림 모두 루리작가님이

글과 그림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글과 그림 모두 한 작가님에게서 나왔으니 전달력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다. 코뿔소를 가둔 철조망이, 펭귄이 힘써 내려간 절벽이 그림을 통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다만, 코뿔소에게 모든 슬픔을 다 떠넘겨 주신 건 (어쩔 수 없으셨다 하더라도) 너무 슬펐습니다. ㅠㅠ


노든에게 '나'에게

노든! 너는 너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쏟아내고 살아냈어. '나'라는 펭귄이 적에게 똥을 찍찍 쏘아댈 수 있고, 재빨리 숨을 수 있는 생존능력을 갖춘 것보면, 넌 한 생명을 그에 맞게 잘 키워냈어. 아무런 죄책감도 갖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삶을 마저 살아냈으면 좋겠어. 감당할 수 없을만큼 슬픔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삶 속에 작은 행복 속에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얼룩알의 펭귄!!('나') 당차게 야무지게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받았듯이 그 삶을 잘 살아주길 바라. 끝이 없는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고, 바다친구들 잘 사귀고, 맛있는 정어리도 실컷 먹고!! 특히 맹추위조심하고, 바다표범이랑 고래를 조심히 피해다니거라!


상실을 경험하거나, 긴긴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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