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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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길에서 뛸 때는 알 수 없는, 골목길에서 달려야만 나는 소리가 있다.

골목길 안을 뛸 때, 그 좁은 골목을 만드는 양쪽 벽 혹은 테두리, 면을 튕기며 울리는 소리가, 그 느낌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숨바꼭질을 하며 혹은 하굣길로 찾아보는 골목길은 지름길이고, 모험을 꿈꾸며 묘한 쾌감을 자아내는 의미있는 길이기도 했다. 들어갈 때는 미로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통과하면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알던 길도 새롭게 느껴졌다. 새로운 길을 찾아냈을 때 기분이란 탐험가 혹은 개척자가 된 것 같다.

 

골목은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의 기억이다.

도시는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 있는 길들은 가는 핏줄이다. 큰길 뒤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이 골목이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 해야 도시도 생기 있게 살아난다. 골목은 도시의 맨 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며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골목에는 달팽이 속도처럼 느리기 그지없는 시간이 시루떡처럼 쌓여있고, 무수한 집과 흉터 같은 삶의 웅숭깊은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풍상을 겪으며 생긴 얼굴의 주름살과도 같은 골목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도 함께 묻혔고 증발되어 버렸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온다. 사람이나 도시는 시간이 담기고 기억이 담겨 품위와 개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는 내가 살았고, 누볐고, 알아내었던 곳의 그 골목길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들과 사는 현재 내 동네는 좀처럼 골목길을 찾기 어렵다. 아파트로, 빌라로 채워진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누빌 수 있는, 새로운 호기심과 도전을 자극할만한 골목이 없다. 그나마 빌라의 틈사이가 있어 아이들이 들어가 서로 뛰노라면 왜 여기서 노냐고, 여기 입주민이냐고 꾸지람을 들을 게 걱정된다. 자신의 공간을 어느 누구와 공유하기 꺼려하고, 자기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안전을 향한 욕구를 보면, 내가 살았던 이전 시대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와 공간을 공유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는지 비교하게 된다. 현 모습이 마냥 씁쓸하고 서운하다.

 

이 책은 저자 두사람이 건축 동문으로, 부부로 건축을 다루면서 옛집, 골목 등을 거닐고 산책해서 발견한 것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골목도 소개되는데, 그 지역의 모습과 뒷 이야기가 꽤나 흥미롭다. 모르면서 읽기에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수고로우면서도 중간중간 내가 아는 길이 나오면 반갑고 친숙해 신나게 읽게도 된다. 서울 중심부 쪽을 읽으면서 아련하게 거닐던 길들이 떠올라 설레이기도 했다. 옛 역사와 연관지은 지역과 건물의 존폐를 알게 되는데서도 여러 감정을 고루 불러일으킨다.

삽화는 이책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를 한층 더한다. 상상하다가 피로감이 생겼을 때 그림을 보면서 어딘가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림에 마음을 턱하니 넘겨 보기도 한다. 손수 그려진 그림, 색감에서 골목에서 따뜻함과 친근함이 절로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했다. 길을 다닐 때, 차를 피하거나 멈추어 선 경험이 당연한 듯 여겨지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에게서 차를 피하게 하면서도 그 공간이 인간의 것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편리를 추구함이 한편으로는 인간을 밀어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싶기도 하고, 너무 무뎠던 것 같아 쓸쓸했다. 그래서 골목이 더욱 그립기도 하지만, 현재 내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했다. 청결하고, 바르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어서이다. 그런 편리함이 좋아 골목이 주는 애틋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사라졌다. 이 책은 그런 애틋함을 그리움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골목이 주는 의미와 그 따스함을 다시 상기시켰다. 막힘과 고루고루 펼쳐있는 길이 공존하며, 이리저리 연결되고, 그런 것들 사이에서 헤매다가 빠져나오게 되는 그 기분...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만,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도 이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아직은 살아남은 골목들을 보고, 그 안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음이 즐거웠다. 최근 알쓸신잡 부산편에 나온 아미동비석마을과 감천문화마을이 떠오르며 글을 읽으며 나도 마음 속으로 뛰고, 막혀보고, 또 다시 만나고, 빠져나오는 느낌을 이어받았다.

이런 마을이 한 도시의 생살이며 역사이며, 누군가에게 사연이고 기억이 되는 그 의미를 다시한번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골목이 아름답다는 것을 켜켜히 살아간 우리의 삶의 흔적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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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취향 -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책 읽기
고나희 지음 / 더블: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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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고유한 취향을 갖고 있다. 취향은 우리의 삶에 쉽게 접하는 음식, 패션, 거주하는 집, 음악, (이 책과 같이) 독서 등 전반적인데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취향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시도하면서 우리는 더욱 즐겁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매력있는 단어다. 호기심이 인다. 설레인다. 자꾸 보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좋아하는 단어인 '취향'을 합친 이 책에 나는 그저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취향이란 것은 저마다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 끌린다는 것이 모험적인 일이었을지 몰라도, 난 그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저 누군가의 독서의 취향은 무엇일까 알아보고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면 말고?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독자이자 작가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따라 <나누어 읽는 이의 취향>, <여행하는 이의 취향>, <쓰는 이의 취향>, <품은 이의 취향>라는 네 가지 파트 속에 책들을 구분 해 넣었다. 웃겼던 것은, 나 자신을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이 책에 소개된 책 중 내가 읽은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제인오스틴과 브론테자매의 책과 그리고 드문드문 알고 있는 작가들 외에 책속의 책에 대한 정보는 내게 거의 없었다. 

 그렇게도 책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만반의 준비가 된 작가 앞에서 나는 제대로 된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소개된 책들은 대체로 손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을 시작하는게 더욱 주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시작했다. 독서의 취향에 끌렸던 내 직감을 믿었고, 일단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

 저자의 글은 묵직하고, 사색적이었다. 자신의 여행과 과거의 경험을 끌어내어 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풀어쓰기는 했지만, 그 글은 구체적이고 편의적이기보다 깊이 있고, 신중했다. 다양한 단어들이 글을 통해 생기있었고, 마냥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소개된 책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저자 또한 아주 쉽게 써 주지는 않았다. 자신의 생각 그대로를 친절하게 풀어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독자다운 창의성을 충실히 표현한 것 같다. 평론적인 글의 느낌이 나면서도 시적이고 감성적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걸 지나서 묘하게 그의 글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럴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우리와 같은 문화와 시각, 감정 등을 많은 부분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 대체로 다뤄진 책들은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에밀 브론테의 소설을 보면서는 약간 멈칫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회적 시대적인 비판이 담긴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저 삶을 되는대로 주어진대로만 충실히 살아왔던 내게 어떤 주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상한 짓이었고, 무모한 짓이고, 통일성을 해치는 짓이었다. 단체를 와해하는 몹쓸 짓에 왕따를 자진하는 짓이어서, 도무지 용기를 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내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을만한 불씨가 될만한 책을 읽었더라면? 과연 지금과는 다른 가치를 갖는 삶이 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 아쉽고, 씁쓸한 마음에 그 소설을 다룬 몇 장에 마음 한 켠이 덜컹거렸다.

한동안 글을 쓰고 나누다가 주변과 비교하면서 더이상 쓰는 것이 의미없다고 여겨졌다. 읽기 시작한게 얼마나 되었다고, 쓰기 시작한게 얼마나 되었다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비교 앞에 힘없고, 완성도 떨어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갈 길을 모르겠는 나의 글쓰기 앞에 나는 멈추어 서있었다. 각자의 상황에서는 그만큼의 글이, 자신에게 적합한 글이 보이는 걸까? 마치 저자가 나를 아는 듯, 저자의 고민과 사색 속에 내 자신이 아파했던 어떤 것이 보이는 것 같아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몇 줄 안되는 글에 내 멈춰있던 시선이 흔들렸다. '글을 쓰는 이는 글을 통해 자신을 확인한다'는 말이 그렇게 힘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글 쓰는데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내 앞에 막혔던 글쓰기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제목만 보고 고른 이 책의 저자와의 첫만남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그의 글이 내게는 가볍지 않은 곱씹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단어사용과 표현이 꽤 신선했다. 일방적으로 그가 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나는 책들에 무지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저자가 보여주는 책과 그에 따른 의미들을 내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써내려간 사유을 따라 나도 사유를 걸었다. 책에 대해 갖던 막연한 부담감을 덜었으며, 저자의 접근을 따라 갔던 길을 곁눈질하며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접근을 해 보고 싶다는 기대를 얻었다. 그 책들을 읽고 난 후 이 저자와 그 책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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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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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국어를 할 수 있는 이 책의 작가를 아들로 어머니가 그와 관련해 쓰신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많이 활동하는 분이어서 한번쯤은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집어들었다.언어에 능통한 만큼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보더라도 언어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원론적인 부분들을 다룰 것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그런 해석을 하는 저자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약간 주춤하게 되었다. 도대체 뭐가 시크하다는 걸까?

저자가 미술학을 공부하면서 겪은 프랑스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시크함을 느꼈고, 그런 이기적인 주관을 가지고 사는 프랑스인들과 그 와중에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해 다루고자 이 책을 썼다. 왜냐하면 그런 부분이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인으로써의 성향을 갖고 있는 저자가 프랑스 문화를 접하면서 가치가 충돌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온 것을 다루었고, 그들에게서 수용할 만한 태도와 자세가 있어서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프랑스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혁명, 그리고 아름다움, 개성, 포도주 등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뿌리부터 그리고 혁명에 이르기까지를 다룸으로 현프랑스의 모습으로 나타남을 해석하여 알려준다. 아름다움(예술, 패션 등)을 사랑하며, 포도주 등 음식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현실 자체에서 참 행복을 누리고 있지 않나 싶다. 과거 고등학교 때 공부로 다루었던 유럽의 역사 그리고 스쳐간 프랑스의 역사가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프랑스에서 기존의 것을 보수하고 유지해서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였다. 예를 들면 저자가 묵었던 곳은 1980년대식 보일러를 현재까지 몇가지 부품교체만으로 사용하고 있고, 구식이 생각되는 옛날 구두를 모으는 친구가 있었다. 저자가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가서 가본 식당이 지금도 있고, 6년 이후에 또 왔을 때 그 모습으로 있었다는 것 또한 우리와는 달라보인다. 편리함을 따르는 데에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살다보니 나는 온 세계가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프랑스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행복과 편안함을 누리는 프랑스인들이 또 존중할만 하다 여겨진다. 물론 나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이라 불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추억을 공유할 만한 곳이 점차 사라지고, 대체되는 데 잊고 있는데서 느꼈던 아쉬움이 떠올랐다.여전히 그자리에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프랑스의 모습은 부럽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오래 가지고 있는 물건은 어떤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해본 질문이다. 단 5년도 넘긴 물건이 다섯 손가락 갯수가 채 되지를 않는다.  

"버려요"', '그런 거 입으면 진짜 아저씨란 소리 들어요!" 20년이 다 되어가는 옷을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내가 늘 하는 잔소리다. 요 몇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미니멀라이프'가 대세라 할만큼 복잡스러운 짐들이 사라지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추구했다. 깔끔한 모습과 공간을 효율적이게 사용하는 것이 살림의 미덕이라 여겨져왔다. 과거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낮게 여기고, 새로운 풍조에 따르느라 여념이 없던 모습들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우리가 어른들에게 구식이라고 말하며, '누가 그런 걸 쓰냐!'고 말하는 것들을 프랑스인들은 자랑스럽게 여겼고, 당연하게 여겼다.

어떤 것이 옳다 맞다 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모방과 비교,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별 생각없이 남들을 따라 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

 

 그러면서도 나같이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은 프랑스에 살면 적어도 욕은 안 먹겠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적인 일과 감정에 대해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어른 스럽지 못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그런 모양이 프랑스에서는 당연하고 거창하게는 실존적 인생의 일부라는 해석으로 여겨진다는게 참 신기하며 위로가 된다.

그래서 감정을 서스럼없이 드러내고, 심지어는 다른 이들 앞에서도 싸우기도 한단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에서 한번 쯤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원체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나같은 자기 주관이나 주장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말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살짝 접어버렸다.

 

 지중해 문학의 철학을 다루며 '삶은 죽음이라는 엔딩이 있을 때만 의미있다.'는 프랑스의 모습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의 사랑에 충실했고, 자신이 먹고 마시는 포도주,... 삶의 순간순간에 누리는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집을 사기 위해 현실의 대출을 감수하고, 졸업하고 취업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입시에 뛰어들고, 스펙에 매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현재를 즐기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었을 때 허탈함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오랫동안 매달리고 인내했던 것에 비해 즐거움은 너무도 짧은 찰나이고, 또 다른 목표에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서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고 있는지, 우리의 인생에서 집이나 대학, 명예 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번 자문하게 된다.

 

 음식 또한 우리에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현재 맛을 음미하는 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군대 가서는 적을 대비하기 위해 빨리 먹고 빨리 씻어야 하며, 아이를 돌보기 위해 대충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식이다. 성적을 1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한 손에 숟가락을 다른 한손에 책을 놓지 않는다. 업무에 분주해서 점심시간 없이 보내려다 간편음식으로 끼니를 떼운다. 음식에 대해 어쩌면 지나쳐보이게 숭고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정말이지 낯설다. 하지만 그것을 여유롭게 먹고, 마시며, 그것들을 두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이들의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하는 등... '별걸다 .... 한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들의 그런 여유와 즐거움에 눈길이 간다.

 

맛에 대해서 언어로 알려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기하다. 식자재의 모양, 냄새, 요리할 메뉴에 따라 재료를 고르는 것 등 아이들에겐 또 다른 감성교육이 될 수 있음에 또 하나 배운다.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무언가 다른 이들처럼 가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변화를 당연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프랑스인들에게 여유와 즐거움을 행복을 배우며 한번쯤 우리의 소소한 행복을 둘러보게 된다. 삶에서 하나의 길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길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갈래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활짝 열어보는 시간이었다. 현재의 삶에 반론을 제기당한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우리가 벌 수 있는 돈은 한정 되어있는데, 없는 돈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데 내 인생을 매진할까?"

"우리가 벌 수 있는 돈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시간을 함께 나눌까?"

남편과 이야기 해봐야 하는 것이고, 답은 다시 되돌아갈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에 답은 없다는 것을 다시끔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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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 차홍의 뷰티 에세이
차홍 지음 / 시드페이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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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잘 안 보는 편인데, 한 때 꾸며보겠다는 다짐으로 꼭 챙겨본 뷰티프로그램이 있었다.  메이크업, 헤어 등 각종 뷰티분야에서 내노라는 전문가들이 어떤 여성에게서 손만 대면 상당히 드라마틱한 효과가 일어났다. 대체로 강해보이거나 개성 넘치는 전문가들의 외모와 달리 묘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차분하게 이야기해 눈길을 끄는 이가 있었다. 바로 차홍! 이었다. 유행을 굳이 따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우아하고 은은한 모습이 꽤 인상적이어서 같은 여자가 봐도 참 예뻤다. 아름다웠다!

 

그 이후 그녀의 이름이 걸린 뷰티 아이템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번엔 책이다!

전에도 몇 차례 출판한 이력이 있는 작가(?)지만, 이 책은 그녀의 전문분야인 헤어 관련해 세부적으로 언급했던 기존의 책과는 달라보였다. 왠지 그녀에 대해 그리고 의미있는 미(美)에 관해 이야기할 것 같았다. 그와 더불어 그녀가 주는 뷰티관련 작은 Tip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예상적중! 딱 맞았다.

예상하고 기대한 것...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글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의 성격, 인품을 나타낼 수 있을까? 글의 성질(?)이 그렇다고 들어왔지만 이 책은 끝까지 갈 것도 없이 초반에서 이미 그녀의 여림, 애정, 섬세함, 배려, 확고한 신념, 열정... 그녀 자체가 글에 가득 담겨서 드러난다.

 

글에서 보이는 그녀는 솔직했다. 사랑이 많았다. 그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똑같은 아픔을 가졌다해도 그녀만의 부드러운 강인함으로 극복해냈다. 긍정적이었다. 섬세했고, 수용적이었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의지와 신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며 진정한 아름다움에 관해 고민했고, 그래서 그것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잠시 그녀의 단답형 대답을 기대했다. 그럴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질문으로 고민했던 글을 읽었을 때 뭔가 다름이 느껴졌다. 외적인 것만을 아름다움으로 여기지 않는 의식있는 뷰티 멘토 차홍의 면모가 돋보였다.

또한, 책의 시작에서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과정을 언급했는데, 그녀 또한 재능에 대해 두려웠고, 불안했던 한 사람이었다는데서 참 진솔함이 느껴졌다. 너무 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일상에서 행복이 되는 사물을 가지고 도란도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언급하는 책과 사색 가득한 생각을 보면, 그녀가 책을 정말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후 자신을 가꾸며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이런 총체적인 것들에서 비롯되었겠구나다.

 

셀럽답게 일상의 소재를 소개하는 그녀의 글에는 소비를 부르는 광고마냥 설득력있다. 그녀가 말한건 해 보고 싶고, 사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었다. 글에서 조차 그녀가 셀럽일 수 밖에 없음을 알겠다. 그래서 책 읽고 난 후 바로 하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매일 물 마시려는 노력을 하고, 의식적으로 팩을 찾아 얼굴에 씌운다. 조금더 일찍 자려고 침대로 향하고, 인스턴트보단 한식 위주의 식단을 지켜보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씁니다.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고 사랑하지 않으면 외면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프롤로그 中>

 

라고 그녀는 말했다.

위의 말이 어떤 기준을 제시하는 매체와 고정관념의 무의식적인 메세지와는 다름을 본다. 자신의 소중함을 자주 잊게 되고,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더욱 자신을 잃어가는데서 깊이 염두해 볼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한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우리가 말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거리낌이 없다. 바로 그런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게끔 동기를 발견하게 되는, 일상의 사물에서 활력을 느끼는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책이었다. 뷰티 Tip 정말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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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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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ㅇㅇ이 초등학교 가까운 괜찮은 집은 구했니?

2.너는 지금도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니?(성취, JOB,인품 등)

3.가족들은 모두 건강하니?

4.두 아들 녀석들을 여전히 에너자이져니?

5.네 마흔이 된 삶의 주요 키워드는 뭐니?


마흔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주로 물을 것이다. 고작 몇 년 후겠지만, 내 질문은 삶에 대해 여유나 즐기는 것보다는 해결해야 할 일들및 현실에 대한 고민들이 주로 엿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나와 반대로 마흔이라는 나이 언저리에 있는 이들에게 대답해주는 듯하다. 삶과 관련해 조언을 해 준다고나 할까? 자신의 경험과 삶, 그리고 이론에 근거해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내 삶을 들여다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던지는 책이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다.


내일 모레면 40이 되는 나이지만 '죽음'에 대해 '나이 듦'에 대해 잊고 살 때가 많다. 지금의 충만한 생명력과 열정 그리고 건강함이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에 충실하게 사느라, 앞의 일들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20대 때와는 또 달라서 몸도 의지도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점차 일에서 가정에서 주도했던 자리로부터 밀려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이 어떠한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아들러 이론을 근거로 나이 듦에 대해 우리의 그런 일반적 통념과는 반(反)하여 말한다.

'지금 여기'

그가 말하는 키워드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마흔에게'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즐기고 누리고 자신과 어울리라고 했다.


 젊은 시절엔 '생산성'에 주목한다. 살아남기 위해 생산성을 키우려고 한다.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것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돈과 연결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 도전하는 것이 더이상 경쟁이 아니게 된다. 배움을, 도전을 즐길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된다.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향하는 것을 말이다. 뺄셈의 인식이 아니라 덧셈의 인식으로 우리가 이루어낸 것에 주목했다. 바로 '지금, 여기'다.


'지금, 여기'는 내 삶에 일어난 일들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타인 그대로를 인정하고, 나 또한 그대로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거기서 나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까지 확장된다.. 이 부분에서 또 친정 아빠가 생각이 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할아버지가 되면 바뀔거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결같은(?) 아빠의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 연세가 드실수록 자신의 삶을 더욱 보호하고 지키려는 이기적인 모습에 서운했다. 예전에는 꾹꾹 눌러 참던 것이 아기를 낳고 나니 폭발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보고 격해진 감정이 누그러졌다. 아빠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70세가 되신 아빠에게서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내 감정을 있는 대로 쏟아붓기) 싸운들 무슨 득이 있을까? 우리 서로를 위해서는 나는 아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 또한 그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해보는게 낫지 않을까?  


저서 중간에 저자는 '간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주제가 과연 마흔에게 하려는 글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걸까?

먼저 '간병'이라는 주제가 생뚱맞게도 느껴졌고, 삐딱한지 몰라도 그에 대한 저자의 말(아래 참조)이 너무 교과서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 나이 든 부모에게 남은 시간, 부모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화내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겁니다.

필요한 것은 그런 일에 일일이 화내지 않겠다는 각오와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뿐입니다.

p.121

 

하지만 저자가 실제로 부모님 두 분을 간병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라도 숙연함으로 마음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간병을 통해서 알게 되는 삶에 대한 것, 그리고

나이 듦, 부모님과 관계의 재발견 등 뜻밖의 일이 일어날 수 있음 알았고, 그런 면에서 '간병'이라는 주제가 독특하지만 저자의 메시지와는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간병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떨까? 내가 자식에게 받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삶에 대해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간병 자체에도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충실한 삶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 간병을 통해 공헌감을 느끼고, 주어진 삶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지 생각은 해보지만 경험해 보지 않아 막연하긴 하다.


 이 책은 마흔이라는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라선지 글자 크기와 자간이 다른 책과 구별된다. 또한 군데군데 삽화로 편안한 마음으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 자체에 주목한 게 아니라 나이 듦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저자가 마흔에게 말하고 싶었던 주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 우리는 두려워한다.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안티에이징 하려고 하고, 덜 늙어 젊음을 유지하는 삶을 자기계발을 잘한 사례로 꼽는다. 조금 더 편안한 삶의 위해 현재를 반드시 희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는 그때까지 우리는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사회적 경향과는 달리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편안하게 나이 듦의 삶으로 초대하고 있다.

 삶을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경쟁과 도태됨에 피로감을 느끼는 내게는 앞으로 살아갈 내 삶에 응원처럼 다가왔고, 위로가 되었다. 더욱 노력하고, 견디지 않고도 삶을 이렇게 즐거이 여기고 나이 드는 삶에서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누군가는 분명 희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덧! 인문학에 대한 도전으로 저자가 추천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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