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웃는 장례식 별숲 동화 마을 33
홍민정 지음, 오윤화 그림 / 별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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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월에 있을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정해주신 책이었다. 지난 번 하브루타 모임에 함께 했던 분이었는데, 그때 자신의 순서에 '장례식'이란 주제로 모임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장례식도 있다면서 이 기사를 소개했었다.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이었다. 살아계신 중에 지인들과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갖는 작별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김병국 할아버지의 장례의도가 담긴 부고장이,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장례식을 지인들과 보냈다는 사실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장례식은 으례 그렇듯 한 사람이 죽어야만 열리는 예식이다. 여러 예식 중 유일하게 주인공이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병국 할아버지는 '어떻게 주인공이 빠질 수 있냐'듯 기존의 관습을 뒤엎고 자신의 소신대로 장례식을 진행하셨다. 그 용기와 소신에 감탄했다.


서론이 길었다만, 이 책에서 나온 윤서의 할머니 또한 '생전 장례식'을 치루기로 한다. 언제올지 모르는 죽음을 앞두고 당신의 생일에 장례식을 하겠다고 자식들에게 준비하라고 명령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단호함에 (비록 책이지만) 생전에 어떤 분이셨을까 궁금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이 깨어있으실 것이고, 자신의 소신대로 사는 분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할머니는 그리 보이지는 않는다.(아동소설이라서 주인공이 아이의 시선이라서인지 할머니의 성격은 납득할만큼 충분히 드러나진 않았다.)


아마 위 기사를 접하지 않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장례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행에 신선함을 느꼈을 거다. 하지만, 오히려 이 기사를 먼저 알아버린 탓에 작가님이 오히려 이 책의 모티브를 '김병국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잡으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장례식 뿐 아니라 가족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던가, 어린이들이 행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들이 '윤서'라는 한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읽힌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 세상을 읽는 방식을 공감이 할 것 같다. 일단 장례식이란 주제가 어린이들이 쉽게 접하거나 와닿지 않을 텐데 이 동화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동화가 되겠다.


최근에 다녀온 장례식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이렇게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감사한 걸까? 본인에게는 너무 힘든 시간의 연장이니 그렇지 않은 걸까?

아이들에게 미리 내 죽음 이후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해둘까? 글로 써둘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돌아다녔다.


"아이고 형님. 제가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서 통 가 보질 못하네요.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참. 형님은 어떠셨는가 몰라도 저는 형님 만나서 참 좋았어요. 나중에 저세상에서 또 만날 거니까 안녕이라는 말은 생략합니다. 나는 거기서도 형님 옆에 딱 붙어서 순댓국집 하면서 살 거니까 그때 모른 척이나 마세요." p.117


'또 만날 거니까 안녕이라는 말은 생략한다'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면서도 속쓰리도록 가슴아프게 읽히던지...

최근 다녀온 장례식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어른이 보기엔 전개나 섬세함 면에선 조금 아쉬울 책,

하지만 새로운 장례 개념이 담긴 쉽고 따뜻한 감동이 담긴 이야기로 아이들에겐 좋은 동화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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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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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처음 읽어낸 책!

E마트도 아닌 H마트는 무엇이고,

마트에서 장은 안 보고 왜 우나? 싶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책 표지색도 강렬했고 내가 좋아하는 면과 젓가락 그림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저자의 에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

한국음식을 해 먹는 데 마늘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말이다. ... 그 앞에서 나는 엄마의 계란 장조림과 동치미 맛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둘이서 식탁에 앉아 얇은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올리면서 만두피 한 덩이를 든다. 그러다가 건조 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10


책의 초반부터 그녀가 왜 H마트에서 우는지 말해준다. 왜 마트는 E마트가 아닌지, H마트는 대체 어딘지 알 수가 있다. 저자는 왜 마트에서 울 수 밖에 없는지 납득을 하게 된다. '물어볼 사람이 없는데'란 구절에 한국음식을 저자에게 알려준 엄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추측한다.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라는 마지막 한 문장에서 나를 '나'되게 하는 한 근본을 잃어버린 저자의 상실감을 보게 된다.


엄마와 함께 한 추억, 엄마와 대립했던 애증의 시간들, 엄마를 떠나 살았던 삶, 그리고 엄마에게 돌아와 안정감을 누리게 해준 (한국) 음식들, 그리고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의 모습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적었다.


엄마와 딸이라면 서로가 느끼는 상반된 양가감정을 이해할 것이고,

한국음식에서 안정과 안식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나도 그게 뭔지 안다'며 공감할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음식과 문화와 놀이에서 저자에게 악수를 건내고 싶을만큼 반가워할 것이며,

소중한 이의 마지막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아픔과 상실에 눈물 흘리며 슬퍼할 수 있을 책이다.


(토종한국인이라는 표현은 조금 차별적인 단어 같아 조심스럽지만) 토종한국인보다 한국음식을, 한국의 문화를 세세하고 찰지게 묘사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상세한 설명을 읽으며 등장하는 음식들때문에 내내 침을 삼켜대느라 혼났다. '화투' 설명은 보드게임 설명보다 쉽고 친절해서, 화투판 자리가 내 눈 앞에 있었다면 끼고 싶을 정도였다.

혼혈로써 이 무리에서도 인정 못 받고, 저 무리에서도 환영을 못 받는 애매하면서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랐다. 내가 살아온 생전동안은 절대 알 수 없는 차별이었다. 한국인들 안에서만 살아온 내 삶의 테두리의 영향과 환경만이 너무 익숙했던 사람으로 책에서 읽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과 자신이 살아온 문화에서 흔들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이가 그 과정을 잘 극복한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다. 더불어 한국인으로써 많은 부분 공감과 환영을 받을 내용들이 많아 읽으면서 흡족 하다.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는 세계 공통인건가 싶다. 여전히 '엄마'는 많은 이들의 귀소 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며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딸들에게 특히 추천하며,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감각적인 묘사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길!

**외국은 에세이 숙제가 많아서 이렇게 글을 잘 쓰나 싶게 문장문장들이 참 좋았다. 아니겠지, 저자가 글을 잘 쓰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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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몸을 챙깁니다 - 바디풀니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첫걸음
문요한 지음 / 해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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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끝나가니 리뷰는 짧게^^

책읽기 모임 <책마실>에서 두번째로 읽는 책이다.


사실 정신감정관련 책은 읽을 때 우울하거나 쳐지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에 선호하진 않는다.

아마도 책모임에서 이 책을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딱히 찾아 읽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역시 내 선호대로만 책을 읽으면 배울 것도 못 배우게 된다.

알면 좋을 내용도 모르고 살게 된다.

한문장으로 알게 될 것을 이것저것 경험하고 돌아서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바디풀니스!

내 몸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다.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대하는지

나의 생활습관들은 어떤 생각과 경험에 기인하였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구부정한 자세를 돌이켜보고,

내 운동종류는 한 곳에 정착 못하고 계속 바뀌는지,

다이어트는 왜 요요가 올 수밖에 없는지,

나는 왜 누군가를 기쁘게 만나고서도 지치는지,

내 이야기같은 내용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간간히 숨쉬기를 하며 내 몸에 느껴지는 숨을 돌아본다.

자기 전에 심호흡을 통해 나 자신을 이완하며 '레드썬'에 빠져 숙면을 취한다.

머리와 귀를 항상 멀리하려고 의식한다.

머리가 아프거나 신경이 쓰일 땐, 무조건 나가기로 한다!


항상 긴장에 움츠리고 나를 돌아보지 않고 닥치는대로 살아오는 일상을 돌아보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나눠보기 좋은 책이다.


너무 바쁘게 달려온 당신!

이 책을 읽고 한번 심호흡하며 새해를 혹은 새로운 다음 시기를 맞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요한 선생님의 블로그도 이웃신청했고,

앞으로 작가님의 책도 간간히 읽으며 바쁜 일상에서 책으로 숨돌리기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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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1-0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렛잇고님 작년 잘 렛잇고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

렛잇고 2023-01-01 16:31   좋아요 1 | URL
서곡님 새해 인사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봅니다. 2023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부지런한 사랑 (리커버)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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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 끝나가니 리뷰는 간단히^^


이슬아작가님이 아이들의 글쓰기 교사로 있던 시절.

아이들의 글쓰기를 가르치며 드는 생각을 주로 담은 글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란 책이 생각났는데,

그 책을 읽을 때처럼 아이들의 순수함과 똘똘함을 보며 흐뭇해하거나 사색하게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글쓰기에서 오히려 내가 배운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이들이 글을 너무 잘 쓴다.

그리고 아주 재!밌!다!


무언가를 의식하며 쓰는 어른들의 글쓰기에 비해,

아이들의 글쓰기는 솔직해서 뜨끔하고,

꾸밈이 없어 와닿고,

생생해서 오감이 반응하며 읽힌다.


이슬아작가님의 솔직한 속내를 섬세하게 표현한 글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속시원하고 공감할만 했다.

자신의 글을 일정 기간 메일로 보내며 구독비를 받았다던 이슬아작가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역시 다르다!' 생각했고, 이런 사람이니 '작가'구나! 싶었다. 그러나 글의 '재능'에 대해 간절했던 글을 읽으니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이들의 간절함과 고민은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아이들로부터 받은 당돌하거나 당혹스러운 말에 목이 땅겨지는 느낌을 받고, 동시에 유치한 감정이 솟은 작가님의 모습을 글로 읽으며 난 속으로 박수치며 웃었다.(나는 그런 적 더 많아요 작가님 ㅋㅋ)


아이들의 글은 솔직히 조금 많았다.

아이들의 원고지 글을 보며

어떤 필체는 알아보기 힘들었고,

글자를 알아차리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했다.


오히려 읽으면서 좋은 글도 많았지만,

그런 글들이 많아서 좀 피로한 감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이 책을 읽을까 고민한다면!

읽어보라고 추천할테다.

특히 글쓰기에 있어서는 아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분명 있다.^^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싱그러움처럼

그들의 글은 참 생생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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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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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빨갱이가 어딨어?

누군가가 분노에 차서 말하는 '빨갱이'라는 사회주의자는 책에만 나오는 줄 알았다. 과장하자면, 전쟁을 겪은 어른들의 '환영'과도 같은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이 책을 보니 환영이 아니라 실재였다.

사회주의자 아버지라니 딸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아버지에 대해 어떤 이미지와 감정을 갖고 있을까?


자식으로써 그 사상하나 붙들고 사는 아버지를 향한 애증과 조소가 초반엔 엿보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p.7


첫문장, 첫문단이다. 참 강렬했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로 사회주의자의 사상으로 뼛속깊이 채운 아버지를 둔 저자의 글이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다는 사람의 부고를 들은 적은 나도 없었다. 이건 뭐지?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아버지의 사인을 독자에게 던져놓고, 저자는 자신에게 차근차근 다가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한다. 저자는 외동딸이었다. 아버지의 삼일을 치르며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들과 엮였던 아버지의 인생을 마주하고, 아버지 인생에서 은은히 비추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마주한다.


아버지를 혹은 한 인물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분량이 적든 많든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필자의 기억을 통해, 사건을 통해, 사물을 통해 그렇고 그런 식으로 기억되었는데, 이렇게 장례식의 며칠을 토대로 한 사람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잘 버무려내는 책은 처음이었다. 내가 알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학수, 그리고 황사장, 사부님의 아드님에, 혼혈의 어떤 미성년 아이, 아버지의 옛 부인의 여동생에, 어머니의 옛남편의 시동생, 잘 죽었다며 지팡이 짚고 오던 어르신, 증오하며 원망하던 작은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을 외롭게 하지 않으려던 이들이 이렇게 많던가? 이 책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 친정아빠를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한테도 내가 모르는, 우리의 어처구니 없는 가정사를 드러낼 사람들이 나타나려나? 앞으로도 아빠와 연관된 것을 떠올릴 때 이 책이 바라보는 아빠의 시각을, 인물들을, 그 사람들과 아버지와 나 사이에 어우러진 따스함이 생각날 것도 같다.


사회주의자였지만 아버지였고, 아버지였지만 냉정한 현실주의자였고, 현실주의자였지만 여느 다를 것 없는 남자였다. 사회주의자였지만 '노동'은 힘들어 했고, 아버지였지만 딸아이 앞에서 다른 여인의 엉덩이를 만졌으며, 현실주의자였지만 '긍게 사람이제!'를 외치며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무조건 도와주러 달려갔다. 남자였지만, 어머니의 남편으로 남았다.ㅋ


저자의 조소를 따라 나도 수차례 웃어댔다. 솔직히 '더 있나' 즐기기까지 했다. 앞뒤가 다른 부모님의 모습에 웃음지으며 지적하는 건, 우리집만의 일이 아니라는 공감의 웃음이었다. 아버지가 감옥생활을 보낸 6년 후, 딸과 아버지 사이는 어색하게 변해버렸다. 딸은 아버지와의 옛적 추억을 떠올렸고, 그리워했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많은 시간이 지났다. 딸과 아버지 사이에 공간을 만든 멈춰버린 6년의 세월은 장례식이라는 뜻밖의 시간에 들이닥친 조문객들이 보내어준 아버지와의 이야기 덕에 조금씩 좁혀져간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의 띄워진 사이가 가까워질 무렵, 차디찬 침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드디어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을 저자는 쏟아내고야 말았다. 초반에 같이 웃었듯, 이 장면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울컥하며 뜨겁게 올라온 신음을 휴지로 꾹꾹 눌러닦았다. 그제서야 웃음은 멈추고 누릉지를 맛있게 눌러주던 아버지, 나를 데리고 장에 데리고 가던 아버지, 다른 아들보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버지, 내가 화장실에 던져놓은 담배꽁초를 모른 듯 치운 아버지가 보였다. 눈에 띄게 보이진 않아도 은근한 정과 배려가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네 그래요. 저는 저만 생각하는(제가 받지 못한 것만 떠올린) 그런 딸입니다. 아빠...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업적과 공로를 보며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시대의 너무 아까운 인물이자 별이 떠났다'며 말이다. 대단한 사람의 죽음을 대할 때,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씁쓸해 했다.

그런데 기존에 읽었던 <튜브>라는 책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그렇고 모든 인생에서 작게나마 남긴 흔적이, 작아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을 준 이의 자취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

여러가지에서 실패한 인생을 보였다고, 죽음 직전까지 무언가 대단한 걸 이룩하지 못하였다고 인생의 성패를 논할 수 없는 걸 이 책으로 더욱 절감한다.


또한, 우리 아빠를 다시한번 바라본다. 내가 아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나중에 남들이 알려줄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줄 아버지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그것은 데칼코마니의 접은 종이처럼 일치하고 있을까? 나는 아버지를 다 알고는 있을까?


이 책을 읽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붓고, 얼마 전에 다녀온 친정을 한번 더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친정엄마의 생신을 축하해드리고 훌쩍 서울로 가버린 첫째딸과 대화의 시간을 넉넉히 못 가졌다고 친정아빠는 적적하고 서운해 하셨단다. (엄마한테 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오지 말란다. 엄마 일하느라 우릴 상대하기에 평일은 힘들다고... 친정은 조만간 가긴 글렀고, 아빠한테 전화나 한번 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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