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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이 책을 두 번 읽었을 땐 몰랐다. 문화가 달라서, 내 가치관과는 안 맞아서 이해도 안 되고, 이해도 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더러 있었다. 아이의 시선이라기보단 어른을 아이 몸에 끼워 넣은 아이어른의 시선과 같았다.
이번 세번째 읽고서야 '이래서 추천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뭉클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다. 이제는 이 책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를 내가 받아들이고 있구나 싶었다.
많은 아이들이 똥을 싸지르고,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자기의 치매 끼를 도리어 장난으로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로자 아주머니가 애처롭고 안쓰러울 뿐이었다.(나 같았으면 같이 빽빽 소리 질렀을 테다. '조용히 하지 못해!!!!') 누군가의 시선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훔치고, 장난을 주도하는 모모의 어긋난 듯 보이는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지금은 늙어버린 아주머니를 비디오테이프처럼 돌려서 아주머니를 젊은 시절로 바꿔주고 싶은 모모, 모모를 향한 돈이 끊겨도 끝까지 모모를 책임진 로자 아주머니, 그리고 모모가 너무 커버려 떠나게 될까 봐 나이를 낮춰서 가르쳐 줬던 로자 아주머니의 모모를 향한 마음, 아주머니가 죽어서도 화장을 해주며 그 곁을 지킨 모모의 애절한 사랑을 절절히 마음으로 느꼈다.
프랑스 하면 '파리'를 떠올리고, 파리를 떠올리면 낭만과 역사와 자유를 생각한다. 그런데, 파리의 어느 빈민가에서는 이런 이들이 살고 있는 걸 누가 알고 있기나 할까? 이들이란, 아프리카에서 온 이들, 아랍인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말한다. 이곳에선 여자들이 몸을 팔고, 그 여자들의 어린아이들이 빽빽 울어대고, 소수 성애자가 살고 있고, 포주가 살고 있지만, 각자 자신들의 고향에서 받아온 정체성을 갖은 채이지만 서로 어우러져 사랑하고 배려하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토라를 외우고, 기도 시간에 기도를 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하지만, 그것은 자기만 살아가겠다는 개인만을 위한 방식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 기도문을 외우고,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하러 성지를 찾고,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부족 방식으로 주문을 외운다. 어쩌면 가장 처참하고, 어둡고, 여유는 눈곱만큼도 없을만한 곳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이들에게 '사랑'이 있다. 종교도, 민족도, 빈부도, 남녀노소도 다 가리지 않는 '사랑'을 말이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도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307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건물 이야기를 굳이 맨 첫 문장에 이야기한 것은 늘 로자 아주머니가 제일 안쓰러워하면서도 사랑한 모모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모는 이미 로자 아주머니를 향한 사랑으로 살았다. 그리고 로자 아주머니 또한 모모를 향한 사랑으로 그녀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냈다.
어른의 현실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버틸 수 있고, '사랑'이 있기에 견딜 수 있고, '사랑'이 있기에 삶을 지속할 수 있다.
모모 아닌 하밀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그 기본적인 진리라도 던져 버리고 '사랑 없이 살 수 있어!'라고 바꿔 말할 것 같아서였을까?
저자는 사랑을 간절히 믿고, 그걸 붙들고 사는 어린이의 시선이 바로 맞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모모'라는 어린이를 통해 딱 그 어린이가 믿는 사랑의 그 시선과 믿음까지가 맞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사랑이 없이 살 수 없다고,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말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