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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ㅣ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측근으로 두고, 최근 산에도 오르다 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산을 타본 이들의 장비를 빌려서 (동네더라도) 높다는 산에 올라가 보니, 나 또한 제대로 된 산을 타본 듯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저자는 초반엔 열정을 갖고 일하다가 점차 그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이유를 찾다가 결국 찾은 게 산이었다. 산 때문에 매 주말을 등산하는 데 썼고, 일하면서도 온통 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산'과 관련된 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 산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된다.
산을 사랑하게 된 과정과 등산에 이어 산악 마라톤까지 도전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 같은 일반인들은 몰랐던 산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종합운동장에 그렇게 줄을 지어 서있던 차가 산악인들의 버스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각 대학에 그렇게 산악부가 존재했다는 것도. '비박'이라는 단어도 이 책에서 알았다. 요가복이나 운동복으로 산을 다니며 등산복으로 쫙 빼입은 사람들을 볼 때, 오버스럽게 여긴 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산복과 장비의 필요성을 조금은 알게 됐다. 우리가 흔히 아는 등산 브랜드들의 대부분이 한국에 본사가 있다니!! 조금이지만 알수록 이거 흥미롭네!!
깜깜한 산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말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전파가 터지지 않으니 핸드폰은 무용지물.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의 모두가 취침에 들어갔다. 나 또한 꾸물거리며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계획에도 없었던 생애 첫 비박이었다. p.23
...여름 산, 가을 산은 신축성 좋은 추리닝 정도로도 충분히 소화할 만했다. 하지만 겨울 산은 달랐다. 생애 첫 설산이었던 강원도 강릉 괘방산에 솜 점퍼와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올랐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로 괜찮은 등산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솜 점퍼와 코듀로이 바지는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흘린 땀을 전부 흡수해버렸고, 옷은 이내 차갑게 식어 얼어버렸다. 하마터면 저체온증에 걸릴 뻔했다. p.87
한국 산은 세계 등산 브랜드의 전시장이라 할만했다. 그리고 마무트, 파타고니아, 라푸마, 고어텍스 같은 아웃도어 시장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직접 방한할 만큼 큰 시장이었다.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고산 원정대에 대한 브랜드들의 지원과 후원도 과감해졌다. 제품의 우수함을 입증하고 홍보해 줄 모델로는 산악인이 재격이었다. ...
흥미로운 건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고산에서도 끄떡없는 이 고기능성 의류와 신발이 국내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사실이다. 블랙야크, K2, 코오롱, 네파, 국내 매출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등산 브랜드는 한국에 본사가 있었다. 글로벌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업계 부동의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은 해외 수입 라인이 아닌 국내 생산라인에 있었다. 체인젠 크램폰으로 유명한 한국 브랜드 스노우라인과 부산 사상구에 본사가 있는 등산화 전문 브랜드 캠프란인은 뛰어난 품질 덕분에 제작 기술과 일부 제품을 해외 시장에 수출하기도 했다. p.89
어떤 주제든 그렇지만, '산'은 인생을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산에 오르는지, 이 산을 계속 올라야 하는지, 지금의 이 길을 계속 가야하는지 저자가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이 내 자신에게도 주어지는 질문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p.58
전문가가 느끼고 성취한 경험은 훌륭한 누군가의 것으로 나와는 먼 사람의 이야기로 보인다. '아무튼'에서 씌여진 주제 이야기는 그것과는 다르다. 뭔가를 알아가고, 실패하고, 몸소 체험하는 일들을 통과하며 지나온 과정이 완벽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소하면서도 그 자체로 행복을 알아가는 모습이 나랑 가장 근접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게 '아무튼' 시리즈만이 가진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