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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미식가
박진배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6월
평점 :
내가 읽으려고 고르는 책들 중 반은 <윤고은의 EBS 북가페>에서 나온다. DJ 윤작가님이 마음에 착착 감기도록 낭독해 주는 책, 패널들이 나와 맛있는 음식 먹듯 재밌게 나누는 책, 그리고 북 카페에 나온 작가님들의 책...
인터넷 서점이 내게 베스트셀러 혹은 추천이라 보여주고, AI가 내게 맞는다며 알려주는 그런 책에는 사람의 냄새가 없어서일까? 내가 읽을 책은 내 귀로 듣고 내 귀를 착 끌어당기는 책들에 더 솔깃하고, 눈길도 간다. 그래서 (이렇게 라디오에서 알고) 읽은 책들 중 거의 90프로 가량은 '성공'이다!
(윤고은 라디오 작가님들 여기 보세요!!ㅎㅎㅎ 조용한 청취자도 이렇게 도움 잘 받고 있답니다. 흐흐흐)
아무튼, 이 책도 그 책들 중 하나다.
이 책은 내가 못 본 건지, 스친 건지 모르겠지만, 라디오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뻔한 책이다.
그런데다 두께가 보통 책의 두 배가량 정도 된다.
읽고 나서는, '왜 이 (좋은) 책을 나는 몰랐지?' 싶었다.
내용을 풍성히 뒷받침해 줄 사진이 가득 있으니 두께 또한 맘에 든다.
제목만큼은 신선했다. 공간 미식가! 한 손에 익혀질 제목이다. 다섯 글자가 한 손의 손가락의 숫자만큼이나 딱 맞다.
공간이란 단어와 미식이란 단어가 연관을 지을 수 있을까?
'공간'이란 데에 '맛'이라는 감각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의미 있고, 하나뿐일 듯한 공간을 누군가에게 맛집을 소개하듯 책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치 미식가의 역할과 비슷하다. 세계 곳곳에 있지만 모든 사람이 알 곳은 아닌 듯 보인다, 깊숙한 곳을 그리고 그 공간을 충분히 거닌 자가 아니고서는 잘 모를 것 같다. 공간에 대한 저자의 사색과 새로운 앎을 주는 내용도 참 좋았지만, 다양하고 아름답고 각 나라나 도시다운 공간을 이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감격스러웠다. 그 덕에 내가 알지 못한 공간을 보고, 시각을 경험하며, 삶을 느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기에 이렇게 다양한 공간을 접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을 즐겨 찾는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시골을 선호한다'라는 저자 소개 글에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저자가 간 미국을, 아일랜드를, 이탈리아를 내가 그대로 여행을 했더라면 그 공간들을 이토록 깊고 재밌게 이해하고 의미를 헤아릴 수 있었을까?
'물론 사람은 각자 경험이 다르니까 보는 게 다르지!' 얼버무리겠지만, 솔직히 나라면, 저 공간의 반 이상은 다 지나쳐버리고 유명한 곳에서 사진 찍기 바빴을 거다.
'가로등', '신호등', '간판', '계단' 등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가 다른 나라에선 이렇게 다채로운 모양과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옥스퍼드 대학이 영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몇 개의 주에 옥스포드 소재 대학이 있다는 걸 처음 알고 웃음이 났다. '우리(자그마치 10명이다!!) 애들 다 키우고 갈 거라고 텍사스로 갈 거라고!' 큰 소리 떵떵 친 그곳, 다른 한 명인 내 친구가 살고 있는 텍사스. 그곳 이야기가 나올 땐, 내 친구가 그렇게 광활한 주에 살고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뭣도 모르고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다니 무모했어... 그렇다고 못 갈 건 없지만)
파스텔 톤의 건물이 늘어선 마이애미 해변, 아르데코 지역을 걷고 싶고,
로보스 레일에서 고급스러운 기차 식사를 해보고 싶어 남아공에 가고 싶고,
커다란 도넛 간판이 있는 랜디스 도넛을 먹고 그 앞에서 사진도 찍으러 LA에 가고 싶다.
한번 다 읽고 난 지금, 책 속 사진을 한 장 한 장 다시 봐도 궁금하고, 즐겁고, 신기한 공간으로 가득하다.
이 책이 코로나에 꼼짝 못 하던 시기에 나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어디로 여행을 갈지 설레도록 하는 데도 좋을 책 같다.
나같이 여행을 갈 수 없거나 굳이 가지 않아도 좋은 사람에게도 사진과 내용만으로도 간접 체험하는 듯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해줬다. 이 책을 다른 사람들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설레는 마음을 함께 공유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