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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새해 처음 읽어낸 책!
E마트도 아닌 H마트는 무엇이고,
마트에서 장은 안 보고 왜 우나? 싶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책 표지색도 강렬했고 내가 좋아하는 면과 젓가락 그림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저자의 에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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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을 해 먹는 데 마늘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말이다. ... 그 앞에서 나는 엄마의 계란 장조림과 동치미 맛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둘이서 식탁에 앉아 얇은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올리면서 만두피 한 덩이를 든다. 그러다가 건조 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10
책의 초반부터 그녀가 왜 H마트에서 우는지 말해준다. 왜 마트는 E마트가 아닌지, H마트는 대체 어딘지 알 수가 있다. 저자는 왜 마트에서 울 수 밖에 없는지 납득을 하게 된다. '물어볼 사람이 없는데'란 구절에 한국음식을 저자에게 알려준 엄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걸 추측한다.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라는 마지막 한 문장에서 나를 '나'되게 하는 한 근본을 잃어버린 저자의 상실감을 보게 된다.
엄마와 함께 한 추억, 엄마와 대립했던 애증의 시간들, 엄마를 떠나 살았던 삶, 그리고 엄마에게 돌아와 안정감을 누리게 해준 (한국) 음식들, 그리고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의 모습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적었다.
엄마와 딸이라면 서로가 느끼는 상반된 양가감정을 이해할 것이고,
한국음식에서 안정과 안식을 누려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나도 그게 뭔지 안다'며 공감할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음식과 문화와 놀이에서 저자에게 악수를 건내고 싶을만큼 반가워할 것이며,
소중한 이의 마지막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아픔과 상실에 눈물 흘리며 슬퍼할 수 있을 책이다.
(토종한국인이라는 표현은 조금 차별적인 단어 같아 조심스럽지만) 토종한국인보다 한국음식을, 한국의 문화를 세세하고 찰지게 묘사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상세한 설명을 읽으며 등장하는 음식들때문에 내내 침을 삼켜대느라 혼났다. '화투' 설명은 보드게임 설명보다 쉽고 친절해서, 화투판 자리가 내 눈 앞에 있었다면 끼고 싶을 정도였다.
혼혈로써 이 무리에서도 인정 못 받고, 저 무리에서도 환영을 못 받는 애매하면서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랐다. 내가 살아온 생전동안은 절대 알 수 없는 차별이었다. 한국인들 안에서만 살아온 내 삶의 테두리의 영향과 환경만이 너무 익숙했던 사람으로 책에서 읽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과 자신이 살아온 문화에서 흔들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이가 그 과정을 잘 극복한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다. 더불어 한국인으로써 많은 부분 공감과 환영을 받을 내용들이 많아 읽으면서 흡족 하다.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는 세계 공통인건가 싶다. 여전히 '엄마'는 많은 이들의 귀소 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며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딸들에게 특히 추천하며,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감각적인 묘사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길!
**외국은 에세이 숙제가 많아서 이렇게 글을 잘 쓰나 싶게 문장문장들이 참 좋았다. 아니겠지, 저자가 글을 잘 쓰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