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쥬가 문화인 나라에서도 이렇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정말 옛날에 어떤 대회에서 연이어 같은 사람에게 세번 상 받는데 내 손이 축축하고 기분 나빴을 건데 근데 나도 그 마른 손이 만지기 싫어서 악수 안하고 상 거부하고 죽고 싶었다. 상 하나 주는데 사진 엄청 찍는데, 그걸 세번이나 했다.

《이거 놔, 멍청이. 아프다고. ― 그럼 예쁘게 인사해 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앙다문 입술을 ― 처음으로 ― 물컹하고 냄새 나는, 꺼칠꺼칠한 부불의 살갗에 비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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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부분 읽는 중.
조금 놀랐다.

나는 딱히 성에 관한 이야길 피하는 편은 아닌데 내 인상이 그런 이야기랑 멀어보이는 건지 굳이 이야기할 기회는 잘 없다. 콘돔을 한박스 샀다는 이야기나 성인용품점의 기구 이야기는 자주 듣는 편인데, 음담패설과 성희롱에도 익숙해서 불쾌해 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갈 때도 참 많았는데, 정작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여서 그런지 낙태 이야기를 자주 듣진 못했다. 정작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아픈 일은 항상 혼자서 하는 거 같다. 다만 하혈이 심한 사람을 이따금 볼 뿐이다. 물론 그건 생리 때문 일수도, 유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낙태에 대한 윤리적인 이야기, 산모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그런 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막상 낙태 수술의 과정이라든가 주의할 점 요령 같은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 같다. 책임은 여성만 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경우, 같이 책임져줄 남성이 책임 질 수 없고 자신도 엄마 될 준비가 안 된 경우라면 피임 실패의 연장선상에서 낙태를 보는 편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태아에겐 안됐지만, 살해로 보기 이전에 산모의 생명활동도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태아의 뇌가 완전히 발달 되기 이전에 한해서. 예컨대 고등학생이 미혼모가 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만 낙태를 선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면 더더욱.물론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낙태가 나쁜 거 다 알아도 낙태가 현실인 어린 여성이 분명히 있을 거라서 어렵게 낙태가 결정된 이후의 이야기. 감정.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걸 그려낸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거 같다.
분명 누군가 유통기한 이내에 콘돔 한 박스를 다 쓸 동안 다른 쪽에선 완벽히 피임 되지 않아서 책임질 사람이 없는 아이가 생기는 수가 있을텐데. 정말 정말 최악의 상황이지만. 죄고 아니고를 떠나서 스무살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게. 사실 스무살이 아니고 서른 마흔이라도 그렇다. 몸에 무리도 가고, 아기 지운다는 게 마음으로도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낙태 경험이 있다면 속으로 죄인된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소설에서 낙태를 결정한 이후의 상황을 만나는 게 몹시 기이하기도 하지만 또 필요한 일이었던 거 같아서, 상황이 기쁜 건 물론 아닌데 슬프고 힘든 건데 근데 또 이 책을 어릴 때 만났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임신 계획도 없지만, 당장 인슐린 네번 맞고 시험관 시술 세번 복부 주사 맞을 거 생각하면 매일 7번씩 어떻게 주사를 맞지 싶어진다. 그냥 앞으로도 아기랑은 인연이 없을 듯. 그래서 정작 임신한 사람들은 모두 축복하고 싶은데, 이렇게 낙태를 하는 걸 보면 무척 마음이 아프긴 하다. 이해도 가지만, 낙태를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낙태를 좋은 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니깐.

참 그냥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정말 확실하다.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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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9-21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 내용이 담겨 있군요!! 아니 에르노는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주로 담는 편인가봐요. 여성들에게 성에 관한한 쉬운게 없는 듯 해요. 월경부터 임신, 낙태,강간. 성폭행의 두려움, 폐경😭

Persona 2021-09-21 14:13   좋아요 1 | URL
조금 놀랐지만 계속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는 내내 공부 안 하고 아주 잘 놀고 있습니다.
동네 꽃밭. 이천 호국원. 동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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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20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부하시면 당연히 안되죠! 복 달아나요!ㅎ 즐건 명절되시구요!

Persona 2021-09-20 22:56   좋아요 2 | URL
헐 복이 달아나나요? ㅋㅋㅋ
막시무스 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

scott 2021-09-2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르소나님 요기가 어디 인가여 ??

안구 휴식, 머리 휴식
페르소나님 푹 쉬세여!

2021-09-21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9-2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뽀요

Persona 2021-09-21 20:34   좋아요 1 | URL
저도 왜 일찍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연휴 되었어요. 그레이스님도 남은 연휴까지 알뜰하게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eBook]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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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단편들은 아픈게 많았다. 아프고 아픈 걸 회피하고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는 진실도 있고.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고통을 끝까지 마주보고 견디는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치유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음식 이야기와 익숙한 골목. 가게 이야기 나오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그래서 특히나 <점등>이 참 좋았다. 물론 슬픔을 회복하는 자리에서 지은 이야기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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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르소나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Persona 2021-09-19 1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스캇 님께서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하은은 간장에 조린 당면찜을 제일 많이 담아왔다. 규옥은 무청나물과 월동초겉절이와 버섯탕수이를 담아왔다. 우무묵은 부드러웠고 미역줄기장아찌는 고슬고슬했다. 은형은 김부각을 두 접시째 갖다 먹었다.
“하은아, 니 엄마는 어려서부터 시꺼먼 음식을 그렇게 좋아했어.”
김부각을 부숴 먹고 있는 은형을 보고 규옥이 말했다.
“떡도 거뭇거뭇한 도토리떡을 좋아하고. 아파도 흰죽은 안 먹어. 흑임자죽씩이나 해줘야 쳐다나 볼까.”



“겨울에 회양목 화단에 눈 내려봐. 그게 꼭 쑥버무리 같아.”
규옥의 말에 “맞아” 하고 은형이 말했다.
진짜 그런 음식들이 있었다. 풀에 눈 내린 것 같은 음식들. 두부쑥갓무침 같은 것. 톳에 두부 으깨 무친 것. 쑥에 흰 쌀가루 뿌려 쪄낸 것. 쑥버무리, 쑥설기.
“너 가졌을 때, 알이 꽉 찬 양미리조림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11월행>중, 78%



양미리 그냥 구워서 고추장에 먹고 싶다. 알이 꽉 찼다니… 아가들에겐 미안하지만 너무 먹고 싶다. 선물 들어온 멸치나 좀 먹어야겠다.

쑥버무리 쑥설기 쑥 된장국 도다리 쑥국 정말 좋아하는데 그걸 왜 여기서 이렇게 보나. ㅠㅠ 11월행. 김부각은 없으니 명태 껍질 부각이라도 먹어야겠다.

새벽에 호국원에 다녀왔다. 내일부터 출입 금지니까 갑자기 다녀왔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면서 나는 빵에 클로티드 크림, 송편을 먹었다. 파는 송편에 참기름을 뿌리니 할머니가 만들어준 솔잎 넣고 찐 쑥 송편 같단 말을 하면서. 하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밀가루든 찹쌀가루든 상관없이 넣고 찐 쑥버무리이다. 아 먹고 싶다!! 올 봄엔 일하느라 바빠서 먹지를 못했다. 아쉬워라.

집에선 비가 안 와서 그냥 갔는데 이천은 비가 왔다. 바람개비가 태극기 무늬인 것이 볼 때마다 인상깊은데, 엄만 누가 태극기를 저렇게 접어놨어? 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들 이야기를 내내 했다. 그러면서 제사는 5대조까지 지내는 걸 보면 그 시간동안 구천을 떠도니 제삿날 제사하는 집 가서 식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란 질문이 시작됬다. 여기 호국원에 모시는 것도 120년간 가능한데, 그렇게 따지면 120년간은 구천을 떠도는 조상님들 제사는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린 너무 할머니 할아버지 빽믿고 사는 거 아니냐며. 온라인 성묘는 알아서 찾아 오실까 걱정도 되고. 뭐 암튼 그랬다. 제삿상 우리 거 받아도 성에 안 차시려나. 한달 내내 준비하는 것들은 조금 자신이 없고 제사도 주문 배달 시켜서라도 간소하게 할 수 있음 좋겠단 상상도 했다.
아 나 죽으면. 부모님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가 챙겨주나. 조부모님은 삼촌들이 챙겨주겠지만. 나는 주민센터에서 와서 처리해줄라나? 그렇다곤 해도 이제 납골공원 이야기 들으면 잘 들어둬야겠다. 혹시 모르니.
이제 독서실 가야지.




또, 방탄 이야기에 깜놀하기도 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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