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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 - 감옥으로부터 온 기쁨의 서신 ㅣ 빌립보서 2
화종부 지음 / 두란노 / 2016년 6월
평점 :
빌립보서 강해인 화종부 목사님의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
화종부 목사님의 빌립보서 강해가 1권이 있었고,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는 2권이라고 한다.
빌립보서 강해는 말씀을 남서울교회에 부름을 받고 설교를 하였던 것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 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보내는 옥중 서신으로 4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는 빌립보서 3장과 4장의 말씀을 담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바울이 처음부터 예수를 간절히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바울은 이름은 본디 '사울'이었다, 사울은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율법을 엄격히 지켰으며 당시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상당히 탄압했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를 만나게 된다. 진짜 예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사울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사도가 된다.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는 빌립보서 3장과 4장의 말씀으로 바울을 통해서 성도들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 누리고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구별된 삶으로의 부르심'으로 성도로서 삼갈 것들과 바르게 행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빌 3:1~11)에서 부터 땅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본향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함(빌 3:17~4:3)을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주님을 알고 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자체적으로 나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본질적인 가치가 해가 되는 장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나란히 놓고 보니까 그것이 해가 될 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의 최고 가치이고 영광이고 유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위험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가치 있고 고귀하신 예수님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꼐로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p 44
예수를 만남으로써 예수로 인하여 변화와 전환이 일어났던 바울..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는 전혀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들이 자꾸만 나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 예수를 만나서 변화가 있었지만 바울처럼 전환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로 나의 온 관심이 전환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기쁨이 있을텐데...여전히 해매이고 있는 나의 믿음에 고개가 떨꾸어진다..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의 2부에서는 '막힌 담을 허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준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며 (빌 4:1~9) 기뻐하고, 기도하고, 서로 문안하며, 주 안에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빌 4:10~20)에 대해서 들려준다.
걱정하고 염려하여 주는 것이 누군가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지나친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라고 말한다. 하긴 성경에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다.. 이미 받은 줄 알고 감사하라 하셨다..
빌립보서 4장을 통해서 본 성도의 재물 사용에 관하여서는 화종부 목사님은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에서 세 가지로 전해주고 계신다.
첫 째, 주 안에서 자족하기를 배우라
둘 째, 쌓아 두지 말고 잘 사용하라 ( 재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셋 째, 하나님께 기쁘고 향기로운 제물
우리가 재물을 이웃에게 흘려보낼 때 이웃의 필요를 공급하고 우리의 하늘 구좌에 예금을 쌓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너무나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p239
이외에도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에게서 우리가 성도로써 갖춰야 할 마음과 행동,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구체적인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허나 <기쁨을 더 풍성하게 하라>를 읽으면서 난 왜 이리도 마음이 무거워지는것인지..
주 안에서 살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면서 항상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변화와 전환'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나의 모습...
그렇게도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왜 나는 화종부목사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런 신앙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다메섹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신 주님..
이후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던 바울처럼..
주님, 제게도 나타나주시길..
주님을 뵙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