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강 : 회복하는 인간 Convalescence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24
한강 지음, 전승희 옮김, K. E. 더핀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6월
평점 :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수상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읽고는 독특한 매력에 심취되어 그녀의 작품중에 하나인 <회복하는 인간>을 읽어보게 되었다.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으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런 기대를 갖고 읽어보았지만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내 생각과는 전혀달랐지만, <회복하는 인간>의 전체적인 느낌은 <채식주의자>와 다르지 않았다.
우울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한강>님의 작품 특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회복하는 인간>은 화상을 입은 지도 모르고 닷새 동안이나 방치해 두었다가 커다란 상처가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화상을 입게 된 닷새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화상을 입게 된 이유와 언니와의 관계로 초점이 맞춰진다.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혈윩을 향해서만 느낄 수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친숙한 감정을 당신의 내부에서 깨우지 않기위해 애썼다. 당신의 마음을 최대한 차갑게, 더 단단하게 얼리기 위해 애썼다. p 36
유년시절에는 무척이나 다정하고 친하게 지냈던 언니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언니는 소파수술에 동생을 데리고 갔고 그 이후로 동생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며, 그렇게 관계를 다시 회복하지 않고 끝내 언니는 병으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당신은 자꾸 잊어버린다. 방금 전까지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지금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건지 잊는다. p 14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게 된 건 언니를 땅에 묻고 난 후의 일이다.
언니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었던 동생은 끝내 언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일까?
아니, 누구에게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에겐 더 큰 힘겨움과 고통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회복하는 인간>에서는 동생의 마음의 고통을 드러나보이는 고통인 화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화상을 입었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그저 발목을 접질러서 아픈 것인줄 알았다.
언니가 죽었기에 그래서 아픈 줄 알았다. 그러나 죽음보다도 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 동생에게는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온 것은 아닐까?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p 64
<채식주의자>에서처럼 <회복하는 인간>에서도 주인공이 죽음을 원하는 것 같다.
육체의 고통은 고통이 아닌듯, 마음의 고통이, 육체의 고통이 회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대로 다시 일어서지 않기를 바라는....우울하다.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회복하는 인간>은 체감하게 해준다.
아마도 언니는 동생이 더 힘들어 할까봐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회복하는 인간>은 어떠한 해답도 던져주지 않는다. 언니와 동생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없다.
그저 독자에게 수많은 화두만 던져줄 뿐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떠한 것에서도 우리는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들에서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회복하는 인간>에서 도드라진 특징중의 하나는 주인공을 이름이나 '나'라는 표현이 아니라 '당신'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동생이며, 정작가인데, 당신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나'가 되어버린다. '당신은..'이라는 표현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더욱 빨려들어가게 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의 결론은 동생의 화상도, 마음도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회복하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저자 한강님은 회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죽음으로 본 것일까?
그렇게 본다면 언니는 회복이 되었고, 그래서 동생도 다시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한 것일까?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그건 육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동생도 언니와 같은 회복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만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좀 암울하다.
<채식주의자>와 <회복하는 인간>, 두 편 모두 죽음과 연관이 되어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처럼 그려진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랑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랑과 희망으로 삶의 아픔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말하며...
나와 나이도 비슷한 작가 한강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