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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평점 :
미소속에 눈물이 흐른다.
편안함 속에 긴장감이 맴돈다.
가벼움 속에 진한 의미가 다가온다.
잔잔함 속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를 방금 다 읽었다.
마음을 정화해주는 산뜻한 눈물을 훔쳐내며 그 감동을 조금이나마 담아보고 싶어 늦은 시간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본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려본 듯 하다. 눈물은 슬퍼서이기도 하고, 감동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일곰 살짜리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p 11
일곱 살짜리 주인공은 엘사이다. 엘사는 우라지게 짜증나는 아이로 표현되지만 똑똑한 아이다. 아빠를 닮아 단어에는 완벽하다. 잘못된 단어나 문법을 보면 그냥 지나지치 못한다. 궁금한것은 위키디피아를 찾아 익힌다.
일곱 살짜리 엘사에게 슈퍼 히어로는 할머니다.
"남들과 다른 사람들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평범한 사람은 세상을 코딱지 하나만큼도 바꾼 적이 없다." (p140)
라고 말하며 무조건 엘사편을 들어주는 할머니이다.
엘사의 할머니 역시나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 복잡하고 제멋대로이고, 정말 남들이 보면 테러리스트 같은 할머니이다. 자신의 딸인 엘사의 엄마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할머니이지만, 손녀인 엘사의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서고, 모든 것이 엘사를 위한것인 그런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엘사에게 미아마스 왕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엘사의 똑똑함과 다름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엘사를 위해서 할머니는 이야기를 통해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러던 할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친구가 없던 엘사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할머니였기에 엘사는 할머니가 죽어서 밉기도 하면서 미워할 수 없기에 더욱 외롭기만 하다. 할머니는 유언으로 엘사에게 숨겨놓은 편지들을 찾아내어 배달하게 하는 보물찾기 임무를 준다.그리고 엘사에게 성을 지키라고 한다.
엘사가 전달하게 되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엘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민들..
뭔가가 냉랭하게 흐르던 분위기의 사람들..
전혀 친하지 않아보이는 오히려 서로를 볼때마다 으르렁 거리는 듯한 사람들.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공통된 내용은 '할머니가 미안하다'는 것..
엘사는 용기를 내어 한 사람 한 사람에 편지를 전하게 되면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이웃들에 대해서 알게 되어간다. 모두가 할머니랑 연결되어 있었고, 할머니가 들려주던 상상의 나라 미아마스 왕국의 등장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가 보기에 전적으로 사실이거나 전적으로 허구인 이야기는 없었다. 전부 다 모든 면에서 진짜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았다. p 258
엘사의 이웃들에게는 모두가 아픔이 있었다. 그 아픔에 할머니가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었고, 할머니의 '미안하다'는 편지와 엘사를 통해서 이웃들은 하나 둘 아픔을 치유하게 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에서 우라지게 많은 것들을 하면 안된다고 했겠지. 그래도 너희 할머니는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너희 할머니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도 사람들은 여자들이 무슨 빌어먹을 투표냐고 했지만 지금은 여자들도 투표를 하잖냐. 너더러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 하는 개자식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맞서 싸우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지게 밀어붙이는 거야." p415
"나는 어렸을 때 뭐든 무서워했거든. 그때 너희 할머니가 가장 무서워하는 일을 하라고 했어. 공포를 비웃어야 한다고." p 443
이웃에게 할머니의 편지를 전달하면서 엘사는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먼저 할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이, 엘사의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기도 했다는 사실에 할머니가 밉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그럴수록 할머니는 엘사의 '슈퍼히어로'였음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또한 이웃들을 통해서 엘사도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을 알게되고 용기와 친구를 얻게 되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새아빠를 더욱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과거 속에 묻어두었던 꺼내기조차 싫었던 사람들의 아픔들이 할머니의 편지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아픔들을 서로가 공유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가장 무서워서 숨겨두었던 것들을, 그 일을 하면서 공포를 비웃는 것이 그 공포에서,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이웃들과 엘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제목이 살짝 와닿지 않아서 읽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책.
그러나 너무도 인기가 많았던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라는 사실에 읽어보게 된 책.
나의 고민이 어색하리 만큼 절실하게 다가와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였다.
나와 할머니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엘사의 할머니가 너무도 부럽기도 하면서, 정말 일곱 살 아이에겐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다. 아니 꼭 일곱 살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겐 누군가가 엘사의 할머니와 같은 '슈퍼히어로' 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정말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우라지게' 멋진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