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철학자
로랑 구넬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철학자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젊은 철학 교수 빅터.

빅터의 아내는 기자의 신분으로 아마존 열대 밀림 속으로 갔다가 원시인들이 그녀를 제물로 바쳐져 죽었다는 사실이 몹시나 괴롭기만 하다.

그 어떤 철학도 빅터를 위로해 주지 못하고 급기야는 아내를 죽인 원시인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빅터는 아내의 시신을 찾으러 현장에 갔던 사람들인 크라쿠스, 가디, 마르코와 알폰소를 선택하여 아내가 만났던 그 아마존 원주민들에게로 간다.

과격파 군대에 있었던 크라쿠스 일당은 빅터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빅터는 크라쿠스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건, 그들이 죽을 때까지 일평생 동안 삶의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불행을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p 43


원주민들에게 도착한 빅터와 크라쿠스 일당은 원주민들을 자극하여 불행하게 만들려고 하였지만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친구여, 어제는 이미 사라졌어요. 지금은 오늘이에요. 우린 항상 오늘을 살 뿐이에요." p 62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이 주는 것들에 대해 모두 만족하고 불평할 줄 모르며 매사에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원주민들..


그런 그들의 상황에서 무언가를 뺏아거나 심지어는 애인이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해도 지금은 자신의 아내가 아니니 그건 자유라고 하며 전혀 화내거나 하지 않는 그들에게 빅터는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게 하고, 부정적인 일들을 자주 듣게 하도록 크라쿠스에게 지시한다.


"그들을 개인주의자로 만들려면, 먼저 그들을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어야 해요. 타인에 대한 두려움,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결핍에 대한 두려움, 양식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랑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p 200


빅터의 지시를 따라 크라쿠스 일당은 인디언들에게 그들이 가진것이 충분치 않다고 믿게 만들고, 쿠푸 열매로 화폐를 만들고, 방이 따로 있는 집을 만들어 가족과 공동체를 분리하게 하고, 그들이 가장 신성시 하는 나뭇 잎으로 가방을 만들어 여자들이 그 가방이 없으면 안될 것처럼 여기게 한다.


점점 무언가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불행해 하는 인디언들.

그런 모습을 보며 부족이 변해가고 있음을 오히려 병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엘리안타.

부족들의 병을 치유해지는 샤먼의 제자였지만 아직 정식으로 샤먼이 되지는 못한 엘리안타.


점점 불행을 느끼는 원주민들.

크라쿠스는 자신이 원주민들을 조종하는 듯한 기분에 만족해하고 있었지만 빅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자꾸 떠오르면서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엘리안타를 통해 자신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알게된 빅터.

빅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마음 먹지만 크라쿠스가 빅터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빅터는 결국 마지막 지시를 내리게 된다.


"당신이 그들에게 준 것을 모두 빼앗아." p362


원주민들을 그들의 방식이 아닌 우리가 문명인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방식을, 현대인들의 모습을 주입시켰던 빅터와 크라쿠스 일당.

그들이 주었던 문명의 것들을 다시 빼앗아 버린다면....


결말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원주민들의 마지막 행동은 어쩌면 문명화된 인간들의 역사에서 많이 보아왔던 그런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복수와 용서'라는 주제로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우화 소설 <어리석은 철학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기술의 발전에 탄복하며 더 많이 갖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우리의 모든 노력들이, 행복해하던 원주민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철학자>는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장들이 참 많다.

그냥 허투루 버려버릴 수 없는 문장들.

그 중에서도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거니?" p327


라는 질문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듯 하다.



긍정적인 면만 보고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던 원주민들에게 문명의 개인주의는 타인에 의해 심어졌지만 그들에게 불행이 스멀스멀 잠식하고 말았다.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그런 문명 속에 오래도록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불행을 심어줄 수 밖에 없는 문명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비극적인가!


아니, 아니 이것도 부정적인 것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을 우리가 아직 모르고 깨닫지 못했을 뿐이리라...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할까?' p327


 그 방법은 바로 <어리석은 철학자>를 읽으면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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