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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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 <해질 무렵>.

황석영님의 작품인 <여울물 소리>를 읽다가 단어들이 낯설로 왠지 어려워서, 바쁘다는 이유로 중도에 포기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황석영님의 작품을 읽어 봐야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겨둔 채로 시간이 흐르다가 그 분의 신작인 <해질 무렵>을 읽게 되었다.


반백의 머리카락과 휑한 정수리가 보이는 나이 든 남자 박민우.

어느 날, '구도심지 개발과 도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나오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그에게 쪽지를 주고 간다.

박민우는 그 쪽지를 며칠은 잊고 지내가 보게 되는데 '차순아'라는 이름과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차순아는 그와 어릴 적 달골에서 같이 살았던 여인이다.

달골에서는 유일하게 박민우와 함께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이쁜 외모에 동네의 소년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박민우는 다른 이들이 모르게 그녀와 만나기도 하였다.


<해질 무렵>은 박민우와 차순아의 미묘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열렬했던 첫사랑의 기억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처음에는 박민우의 현재 모습과 달골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정우희라는 스물 여덟의 젊은 여자의 현재의 삶을 묘사한다.

정우희는 연극의 각본을 쓰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반지하에서 살며 연극으로는 수입이 안되어 편의점에서 알바까지 해야 한다.

이 글의 후반에 들어설때까지 정우희와 박민우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왜 이 여자의 삶을 이토록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의아해 하며 읽어갔다.


차순아에 대해 쪽지를 건네 준 젊은 여자가 정우희였고, 차순아는 우희가 애인은 아니였지만 친하게 지내던 김민우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차순아의 아들이 자살하고 우희는 차순아에게서 박민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쪽지를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순아가 죽고 난 후에 그녀의 노트와 노트북에 옮겨둔 글을 읽어보고는 그걸 요약하여 박민우에게 메일로 보낸다.


박민우는 차순아의 메일을 보며 현재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잊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의 기억이란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심히 잊거나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왜곡된 줄거리로 남아 제각각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다. p129


차순아가 보내온 메일에서 박민우는 산동네를 잊은 것처럼 묘사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제각각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기도 하다는 것을 나도 가끔 경험하곤 한다.


박민우는 가난한 달골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며 예쁜 여자에게 정신이 팔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는 명문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러 저러한 이유로 자연스레 차순아에 대해 잊고 지냈던 것이다.


차순아는 토막이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자포자기한 듯하다.

그런 자신이기에 박민우는 자기에게 가당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박민우와 차순아는 고등학생 시절에 남몰래 만나고 민우가 군대가기 전에 하룻 밤을 같이 지내기도 하였지만 둘 사이에는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심지어는 서로에 대한 마음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지나갔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되돌아보아야 했었다. p 198


<해질 무렵>에는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과 함께 그 시대의 모습을 많이 담아내고 있었다.

마치 박민우와 차순아의 세대가 정우희와 김민우의 세대에게 업보를 전해주듯, 두 세대의 이야기가 공존해 있다.


차순아에게는 아련하고 아쉬움이 남아있는 사랑으로,

박민우에게는 어쩌면 잊고 싶었던 사랑으로...

그리고 정우희와 김민우에게는 지난 세대의 과오가 남겨준 힘겨움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또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떠한 업보를 남겨 주고 있는 것일까?.....


<해질 무럽>은 희미해지려 하는 옛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지금의 우리 세대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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