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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평점 :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 이야기로 시작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처음에는 어린이였던 것을 잊고 사는 어른들에게 헌사한다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며, 읽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전에 고전 컬러링북으로 출간된 <어린 왕자>를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게 된 <어린 왕자>는 셍텍쥐페리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문체를 살려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던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몇 번은 읽은 <어린 왕자>이지만 처음 읽는 듯한 새로움과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에 매달려 있던 셍텍쥐페리에게 양 한마리를 그려달라며 불쑥 나타난 어린 왕자.
어린 왕자의 그림에서도 순수함과 왕자다운 면모가 느껴진다. 왠지 외로움도 느껴지는 듯 하다.
그려준 양들은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상자를 그려주고는 그 안에 양이 들어있다고 하니 원하던 거라고 말하는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그 많은 동물들중에서 왜 하필 양을 그려 달라고 한 것일까?
그리고 상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혼자 곰곰 생각해 보다가
우리에게 양은 착하고 순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때문에 어린 아이와 같다는 것과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는 그 속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담을 수 있다는 '꿈'을 말하는 것이라는 나 혼자만의 결론을 내려본다.^^
의자를 몇 걸음 당겨 놓으면 원할 때마다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아주 작은 별에 사는 어린 왕자.
"아저씨도 알 거야.... 그렇게도 슬플 때는 누구나 해가 저무는게 보고 싶지."
"마흔네 번 해넘이를 본 날, 그렇다면 너는 그만큼 슬펐단 말이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p29
이번에는 <어린 왕자>를 읽는 내내 어린 왕자가 외로워하고 있고 슬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별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 외로웠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없어서 외로웠던 건 아닐까 싶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행성을 빠져나와 다른 행성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그 무언가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가 배워게 되는 것들 혹은 배워야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길들인다>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p84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p 85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p86
어릴 적에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는 친구를 갖고 싶다면 길들여야 한다는 여우의 말이 참 좋아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든다.
<길들인다>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식에 따라 상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참, 어릴 때에는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또한 나의 방식이나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의 방식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결국 길들인다와 길들여지는 건, '나'와 '너'가 함께 공유하고 함께 간다기보다는 어느 한 사람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우선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길들이는 혹은 길들여지는 관계를 맺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나' 자신은 어디에 있나 하고 힘겨워지게 되고 더욱 외로워지게 되는 시간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뱀의 이야기로 시작한 어린 왕자는 뱀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셈이 된다.
자기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리게 되는 어린 왕자.
이야기를 보면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린 왕자는 죽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죽음은
우리 어른들에게서 잊혀진 어린 시절을 말하고 있는 듯 싶다.
그렇게 하나씩 삶을, 사람을 배우며 어른이 되고 보니 마치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던 것처첨 어린 아이들을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우리에게는, 어른들에게는 자신만의 어린 왕자가 다 존재한다.
다만 어린 왕자의 별이 너무도 작아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일게다.
다만 어린 왕자의 별이 너무도 작아서 그 별에게 우리가 빛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일게다.
이제 내 마음 어딘가에 묻어두고 있던 어린 왕자를 느낄 수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과 진정한 공감이, 진실하고 순수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이제 석양을 볼 때마다 내 속의 어린 왕자를 기억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들 성주의 눈빛과 모습에서 내 어린 왕자가 다시 돌아왔음에 기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