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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멋진 신세계>에서의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놀라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또다시 '올더스 헉슬리'의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이 책은 <멋진 신세계>가 출간된 10년 후인 1958년에 나온 작품으로 '사고방식을 장악하는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들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이 기사들은 인구 과잉과 조직 비대화 그리고 선전 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직면한 자유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는 이러한 기사들을 총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분류하였으며 그 당시의 모습과 점점 발전 되어 가는 사회가
미래의 예언적 내용을 담았던 <멋진 신세계>의 모습과 얼마나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래의 다른 모습을 담은 '조지 오웰'의 '1984'하고도 비교하여 주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계 대부분의 서민들이 걱정하던 것은 앞으로 닥쳐올 시대는 우주 시대가 아니라 인구 과잉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p
57
헉슬리는 이 책에서 인구과잉으로 인하여 여러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한동안 인구 과잉으로 산아제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추세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인구보다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산을 장려한다.
<멋진 신세계>는 인구를 세계가 원할하게 움직이는데에 필요한 만큼만 인간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시대는 정부와 세계에서 선전을 통하여 인구 수를 조절하려고 하는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쯤 후에는 세계에서 인구 과잉에 시달리는 모든 저개발 국가들이 어떤
형태이든 전체주의 통치를, 아마도 공산당의 통치를 받게 되리라고 확실하게 예언할 수 있다. p 62
중국의 자녀 1명만 낳기를 예를 들기도 하였는데, 헉슬리의 이 예언이 맞는지는 얄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1984」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고통을 가하며,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보다 덜 굴욕적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쾌락을 가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 p
83
두 책에서의 조직의 통치자들의 방법 중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백성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수단으로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고, 성적인 자유를 합법화하는 방법으로
조직의 운영에 불평을 갖을 시간이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일과 오락 그리고 쾌락 모두 그들에게 모두 수면 학습된 방법들에 의해 자유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독자인 나에게는 '노예'로 보일뿐 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와 발전하는 기술의 결과로 조직의 숫자와 복잡한 구조가 심화됐고, 관리들의 손아귀에 집중된 권력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그와
역비례하여 투표자들이 행사하던 통제력이 축소되었으며, 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덩달아 감소했다. 현대 세계에서 작동하는 막강한
비인간적 세력들에 의해 이미 약화된 민주적인 기구들은 이제 정치가와 선전가들에게 내부로부터 침식을 당하는 중이다. p 125
이 글은 왠지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말하는 듯하다.
아니 우리나라 뿐이 아니리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곳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인구의 과잉, 투표자들의 통제력 축소, 처음에는 국민들의 일꾼이 되어줄것처럼 떠들어 대던 선거운동에서와는 달리 당선이 되고 나면 그들은
일꾼이 아니라 권력을 갖게 되고 오히려 그들이 결정한 일에 온갖 선전과 상술을 통해서 국민들이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지적했듯이 자유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실에 관한 가치관의 교육
- 개인적인 다양성과 유전적 특이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의 당연한 추론적 결과인 윤리적 자유와 관용과 상호 박애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p196
「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 보호구역'에 살았던 '존' 문명인, 그러니까 신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음을 알게되고 그들에게
자유를 찾으라고 하지만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를 못한다. 그리고 존은 자유를 찾아 도망을 치지만 신세계 안에 있었기에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하였다고 본다.
헉슬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자유와 사랑에 대해 알아야 우리에게 선전 활동을 심판할 기준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주 오랫동안 저항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 저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아 있다. p 217
「멋진 신세계」가 출간 되었을 당시에는 비평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유럽에서 파시즘이 기세를 올리고 세계가 경제적으로 흔들리고 있던 시대라 하찮은 말장난이라고 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논하지 않았다고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비평이야 어떻든 지금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인기있는 고전이 되었다.
멋진 신세계는 충격적이고 그런 미래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진정한 자유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는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세계가 얼만큼 멋진 신세계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더욱 아찔한 사실들을 담고 있는
'문명사회 비평론'이었다.
발전이라는 것이 그저 좋게만 생각하기에는 「멋진 신세계」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에서 보니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의 비평론이었기에 읽기에 쉽지는 않았다.
과학에 조애가 깊은 헉슬리이기에 이렇게 사실들을 근거로한 비평이 가능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예언하는 그런 미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자유가 없고, 학습된 감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나 결국 노예와 같은 그런 삶...
지금도 조금은 그런 삶들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두려워지기도 하지만..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