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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지난달 20일, 메르스 확진자가 발표된지 한 달여쯤 되어가고 있는 지금에도 메르스는 진정되는 것 같지가 않다 .
메르스 첫 발생지였던 평택은 재난 수준의 분위기와 두려움이 가득하다고 한다 .많은 학교들이 휴교를 하고 격리 대상자가 많아지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메르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읽게 되었다.
페스트라는
질병이 어떤 결과를 일으켰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 속에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는
194X년 ,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인구 20만 명의 항구 도시 '오랑'에서 너무나도 끔찍했던 페스트의 시작과 그 힘겨운 질병에의 싸움과 끝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해변이 있어 여행객도 많이 찾아 오는 오랑, 평온하고 다른 도시와도 다를 바 없던
오랑에, 어느 날 쥐들이 죽어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환자의 죽음에 이상함을 느낀 의사 리유는 '페스트'임을 알게되고 정부에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한다.
시 당국은 쥐들이 수 백마리나 죽는 것을 보고도 수거하고 소각한다는 명령만 하고 낙관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리유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증상에 대한 발표로 페스트로 확정을 하지는 못하지만 페스트와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수구에 독가스를 분사하여 과학적으로 쥐를 박멸하기도 하고, 시민들에게는 극도의 청결을, 의사의 진단을 받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신고 해야 하며, 환자는 특별 병실에 격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랑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성문들을 닫아버리게 까지
되었다.
오랑시의 시민들과 여행이나 다른 목적으로 오랑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일체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 되었으며, 도시 밖의
사람들도 오랑시에 들어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감금과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전염병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자신들은 아직까지도 그들은 초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p121
나 역시 메르스에 대한 반응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초조하다기보다는 조금
불안하고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강렬한 희망을 품고 있다.
리유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페스트에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의사인 리유는 그저 페스트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페스트에서 살려내고 싶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만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환자를 치료하여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하고 격리실로 옮기게 하고,
사망을 확인하는 일 밖에 안되었던 것이다.
그와 너무나도 가까웠던 한 인간의
형상이 이렇게 창끝에 찔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악의 불구덩이에서 불태워지고, 하늘이 내린 증오로 가득 찬 바람에 온몸이 꺽이고 휘어져
그가 보는 바로 앞에서 페스트라는 강물에 가라앉고 있었지만, 이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에 비통한 마음뿐,
무기도 없고 대책도 없이 또다시 이렇듯 참담한 패배 앞에서 그는 그저 강 저편에 그대로 있어야 했다. p370
의사인
리유뿐만 아니라 보건대를 조직하여 봉사를 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언제 페스트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위험 속에도 환자들을 치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 중에서도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겼으며,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이 또다시 그들의 일을 도왔지만 페스트에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랑베르는 오랑시에 들어 온 기자로 성문이 닫혔으나 사랑하는 여인을 보러가야 겠다는 일념으로 페스트는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겼으므로 밀수업자를 통해서 도시를 떠나려 했으나, 리유의 모습에서 마음의 변화를 겪게되어 리유를 돕게 된다.
작가를
꿈꾸던 시청 직원 그랑. 그는 페스트에 전염되었으나 완치가 된다. 그랑 처럼 병이 낫게 된 사람들이 몇 명 되기는 하였으나, 어떠한 원인으로
완치가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죄인으로 연금 생활을 하던 코타르는 페스트가 도시에 퍼지게 되면서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고 할 수
있다. 페스트가 끝나갈 무렵 자신은 다시 잡혀 감옥에 가게 될 거라 했으며 정말 경찰에 잡히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파눌루 신부 역시도 리유와 함께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리유가 새로 만든 혈청을 죽어가는 아이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놓아주지만 아이는 오히려 더욱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 신부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을 사랑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신부는 병에
걸리지만 그 당시에는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신에 대한 믿음에 위반되는 것이었는지, 진찰은 거부하였으나 당국의 절차대로 격리되고 결국엔
병명미상으로 죽음
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리유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고 할 수 있는 타루.
나는 우리 모두가 페스트에 처해 있음을 깨닫고 계속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또 어느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적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지금도 여전히 평화를 찾고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더 이상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희망하도록 한다는 것,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편안한 죽음이라도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p
323
단언하건데 내가 확살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p 323
타루는
삶과 죽음에 초연한 사람같다. 아니 그의 말대로 삶에서든 죽음에서든 평화로운 사람같다. 그런 그 역시나 페스트가 시들어가는 막바지에 페스트로
죽게되는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우정을 나누었던 리유가 그의 죽어가는 모습에서 더욱
괴로워한다.
페스트의 주요 인물들이 페스트라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대하는 자세들이 각기 다르다.
시민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끼다가 방화 사건이 생기기도 하고, 성문에서는 탈출하기 위한 총격전도 벌어지고, 혹시나 페스트에 걸리게 되지는
않을까 서로를 의심하며 거리를 두기도 하고, 광적인 향락에 빠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알베르 까뮈는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우선 부조리(不條理)에 의미를 보면, 도리에 어긋나거나 불합리한 일을 듯하며, 알베르 까뮈에 의해 인생에서 의의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 인간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뜻으로 실존주의적 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까뮈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방인」이 개인에 국한되었다면, 「페스트」는 폐쇄된 도시, 오랑시로 그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또한 까뮈는 오랑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점령하에 탄압받았던 프랑스를 상징하며, 인물들은 항독 저항 운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페스트」에서 부조리와 항독 저항 운동보다는 페스트라는 질병의 무서움과 폐쇄된 도시에서의 사람들의
비참하고도 힘겨운 삶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의 사람들이 행하는 자유라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데카메론에서 '페스트가 모든 규율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부여한다.' (고전 천천히 읽기, 데카메론 p49)고 했다. 이 말의 의미를 페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페스트에
비하면 메르스는 치사율이 낮다. 그렇기에 조금은 덜 두려운 전염병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절대 나는 걸리지 않으며 그 치사율에 내가 포함되지
말라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
까뮈는 죽음에 있어서는 인간은 어쩔 수 없으며, 대항할 수 없는 패배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비쳐주고 있지만,
그 죽음이 있기에,고통과 고난이 있기에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고,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는 대단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사회의 부조리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 내용이
다가왔으며, 어둡고 우울함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 그리고 삶에 대한 예찬을 느꼈던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지금 우리나라를 불안하게
하는 메르스가 소멸되기를, 치료제가 나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