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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5
토마스 만 지음, 강두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토마스 만은 내게는 낯설은 작가이다. 전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토니오 크뢰거 」를 포함한 4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토마스 만의 단편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는 것은 작품 속의 인물들에게 몰입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이유를 옮긴이는 우리의 정서에 잘 맞는 서정적인 헤르만 헤세와는 달리 토마스 만은 철처한 산문 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소설의 소재로서의 현실 세계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현실 세계를 지성의 여과 장치를 통하여 정리하고 그 속에 깃들인 정신 세계의 맥락을 찾아낸 후에 그것을 기초로 하여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p269
토마스 만의 작품은 그렇구나~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는 인물들의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적인 묘사에 무언가에 대한 비판적인 느낌이 내게는 강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 책에는 토마스만의 대표 작품인 「토니오 크뢰거 」가 제일 먼저 이지만 <환멸>이 1896년, <트리스탄>이 1903년, <토니오 크뢰거>는 1903년, <마리오와 마술사>는 1930년에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환멸>
"힘써 노력했지만, 예상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실패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 낭패와 같은 그런 사소한 개개의 환멸이 아니라 넓고 일반적인 의미의 환멸 말입니다. 인생이 우리에게 마련하고 있는 전부인 그런 의미의 환멸 말입니다. 그렇지요. 당신은 그것들을 짐작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겐 어렸을 때부터 그놈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단 말씀이에요. 그리고 그놈 덕택에 저는 고독하고 불행한 그리고 좀 괴상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점 저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p112
마르코 광장에서 매일같이 광장을 오르락내리락 걸어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 다른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이상하고 낯선 사내가 군악대의 연주회가 있던 어느 날 들려준 환멸에 관한 그의 이야기이다.
넓고 일반적인 환멸...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환멸을 느낀 적이 있던가?
아주 오래전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환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는 않았나보다. 아니, 내 스스로 저 멀리 기억하지 않을 곳으로 날려보내 버린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리스탄>
정말 그녀는, 클뢰터얀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 부인은 그곳에 감명을 주고 있었다. 몇 주일 전부터 아인프리트에서 소일을 하던 한 작가, 그 이름이 마치 어느 보석 이름처럼 들리는 이 불쾌한 친구는 복도에서 그녀가 자기 곁을 지나가자 곧 안색이 변하더니, 우뚝 멈춰 서서 그녀가 이미 멀리 사라져버렸는데도 여전이 뿌리박은 듯 서 있었다. p 129
클뢰터얀은 기침을 하고 피를 약간은 토하는 결핵이 아닌 기관지가 안좋다하여 요양원에 들어왔다. 한 권의 소설을 내었다는 작가 슈피넬은 클뢰터얀과 대화 친구가 된다. 클뢰터얀은 아쁘다는 이유로 피아노도 치지 말라고 의사의 지시를 받고 있었는데, 슈피넬은 그런 그녀에게 결혼 전의 이야기와 할 수 있게끔 이끌어내고 피아노도 칠 수 있도록 한다. 슈피넬은 아름다운 클뢰터얀은 그렇게 관습으로 묶어버린 그녀의 남편에게 미움과 성스러움을 모욕하였다는 편지를 쓴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녀는 요양원에서 병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
나도 너처럼 되고 싶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해서 너와 같이 자라나고, 마음을 곧고 즐겁게, 그리고 순박하고, 올바르고, 질서 있게, 신과 사람들과도 뜻이 맞아 순진하고 행복한 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리고 잉게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한스 한젠 너 같은 아들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 인식과 창조의 고뇌라는 저주를 벗어나 복된 평범함 속에 살고, 사랑하고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 p 96
시를 쓴다는 것이 방종한 일이며 정당치 않은 것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시를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크뢰거.
크뢰거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선생님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한스 한젠을 그 역식도 사랑하며 부러워한다. 크뢰거의 집안의 몰락으로 크뢰거는 고향을 떠나고 작가가 된다. 그러나 자신은 여느 작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작가로 인정을 받게 된 후 고향을 찾았지만 오히려 사기꾼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에 잡힐뻔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여행지에서 무도 파티를 위해 온 무리들 속에서 자신이 짝사랑하던 잉게보르크 홀름과 한스 한젠을 보게 된다.
저는 두 가지 세계 속에 서 있습니다. 그 어느 쪽 세계에도 제가 안주할 집이 없고, 그런 이유로 산다는 것이 꽤나 어렵습니다. 당신들 예술가는 나를 속인이라 부르고, 속인들은 그들대로 저를 의심스러워하며 체포하려 하고 ……. 하긴 그 어느 쪽이 저를 더욱 쓰리고 슬프게 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p 104
하지만 저의 정말로 깊고 가장 은밀한 짝사랑은 금발 머리, 푸른 눈을 가진, 맑고 씩씩한, 행복스럽고 사랑스러운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꾸짖지는 마세요. 리자베타. 그것은 선량하고 진실 가득한 사랑입니다. 그 속에는 그리움이며 우울한 선망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멸시하는 마음과 아주 청순한 행복감이 섞여 있습니다. p 105
토니오 크뢰거는 최다니엘의 낭독으로 들었다.
최다니엘의 목소리와 글의 분위기가 어울리는 듯 했다.
낭독을 들으면서 왠지 이 작품은 토마스 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뢰거도 작가였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듯한 외로움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화가인 리자베타와 나누는 대화에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떤 실체들을 말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기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나의 느낌이 전혀 틀린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옮긴이의 해설에도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의 가장 자서전에 가까운 고백으로 가득 찬, 그의 문학관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마리오와 마술사>
토르레 디 베네레에서의 추억은 대체적인 분위기로 볼 때 불쾌한 것이 있다. 분노, 흥분, 과도한 긴장, 그런 것이 처음부터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고 결국에 가서 그 가공할 치폴라 사건이 폭발하고 말았다. p 189
토르레 디 베네레의 그랜드 호텔에 3,4주 정도 묵게 된 어느 가족의 불쾌하고 이상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가 기침을 하는 이유로 전염이 되는 병일까 싶어 원래 묵었던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기게 되는 가 하면, 8살 난 아이가 해변에서 옷을 다 벗고 뛰었다는 이유로 '중대한 사건'으로 치부되어 50리라의 벌금을 물게 되는 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치폴라라는 마술사가 금지된 최면술을 은근히 보이면서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조롱하다가 결국엔 관객이며 최면을 당하였던 마리오라는 청년이 치폴라를 총으로 쏴 죽이게 된 일이다.
이 작품을 토마스 만 자신이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탈리아에 떠돌던 공포 정치, 무솔리니 통치 시대의 분위기를 포착하여 담은 것이라고 한다.
토르레 디 베네레의 분위기도 그렇고 치폴라가 마술 공연을 하는 분위기도 정말이지 공포스럽기는 하였다. 너무도 긴장되고 왠지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그런 공연 분위기였다.
토마스 만의 단편선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묶기는 좀 어려운 듯 싶다.
2편은 문학과 음악이라는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두 편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고독하다.
그저 고독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작가의 삶이 고독했던 것일까?
아니 고독할 수 밖에 없을것 같다.
여튼, 낯설음으로 펼쳤던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그의 작품을 자신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 읽은 지금에도 머릿속에 무언가 잔상이 남아 있는 그런 책이었다.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토니오 크뢰거 > 낭독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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