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정(華政)'의 의미는 '빛나는 다스림' 혹은 '화려한 정치'라고 한다.

이는 정명공주의 말 속에서 보여주는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명공주는 누구인가?

정명공주는 1603년에   51세의 나이의 선조와 17세의 인목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때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으며,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대에 걸쳐 조선 역사의 5분의 1을 경험한 당시로는 드물게 83세까지 장수한 공주라고 한다.

 

이 책은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도 오래도록 살아온 정명공주에 대한 궁금증을 찾아내어 기록한 것이다.

또한 정명공주와 대척점에 있던 광해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각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이야기에서 '빛나는 다스림'을 찾고, 우리의 삶이 가야 할 내밀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화정>의 구성은 16개의 주제로 정명공주가 태어나는 시기부터 83세의 죽음까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정명공주를 둘러싼 역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명공주의 삶은 태어나기 전부터 순탄치 않았다.

인목대비의 태기에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은 낙태시킬 일을 꾸며 왕비를 놀라게 하고 미워하였단다.

오히려 대군이 아닌 공주로 태어나서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동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나고 그와 함께 광해군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면서 부터는 영창대군을 본 체도 하지 않았다고 하며, 왕위에 오른 이후에는 정명공주는 항상 불안해 했을 것이다.

11세에 천연두에 걸리기도 하고, 16세때는 인목대비와 함께 서궁에 유폐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이 서궁에 제공한 것이라고는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양식뿐인데다 지저분하고 불까지 질러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절에 정명공주는 '화정'을 비롯한 서예 작품을 여럿 남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조선 최고의 여성 서예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화정'은 글자 하나의 사방이 각각 73cm나 되는 대작이며,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글씨라고 한다.

인조반정의 이후, 21세에 드디어 서궁 유폐 생활을 끝내고 창덕궁에 들어오게 된다.

정명공주보다 3살 아래인 홍주원과 혼례를 치르게 되고, 인조의 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하였지만, 영화로울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그렇게도 잘 대해준 인조가 인목대비가 죽고 나자, 저주 타령을 하며 정명공주를 의심하였다고 한다. 인조가 죽기 전 17년 동안 감시를 받아야 했으며 ,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쓰지도 못했다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피난을 갈 때 자신의 배에 실린 재화들을 다 내리고 백성들을 태워 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송시열은 정명을 가리켜 "존귀하면서도 겸손하고 공손하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p 193

 

광해군의 삶 역시도 순탄치 않다. .

저자는 광해군을 '조선의 햄릿'이라 표현하고 있다.

 

자아를 불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이 현실 왜곡 전략은 광해군 정권에 영향을 미쳤다. 억압의 잘못된 분출, 그것이 광해군 정권의 한계였다.

p56

 

광해는 치도(治道)의 도리를 소금에 빗대 대답했다.p 79

 

광해군도 올바른 정치를 하고자 하였고, 그렇게 빛나는 다스림을 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유폐하고 동생을 죽이고 정명공주를 서궁에 유폐하기 까지 한 광해군...

광해군은 왕위에까지 올랐으나, 정명공주와는 다르게 생을 마감한다.

 

죽음의 문턱을 숱하게 오르내리기도 하였지만, '화정'을 쓰며 자신을 다스렸던 정명공주는 존경과 후손들의 복을 보며 생을 마감하였지만, 광해군은 18년의 유배생활 끝에 혼군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조는 도망간 군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선조가 도성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 조선은 일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왕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라의 명맥은 이어졌다. 선조가 도망간 것에 대해서는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 37

 

이 책에는 이처럼 광해군의 정치와 정명공주의 '화정'과 더불어 임진왜란 이후 부터 현종때의 예송 논쟁이라는 역사이야기와 함께 새로운 시각을 갖을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글들이 많았다.

 

사실 이렇게 긴 역사 이야기를 서평으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약간 아쉬운 점은 '화정'이라는 정명공주의 정치 기술, 혹은 처세술이라 할 수 있는 어떠한 자세한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명공주가 어떻게 조용히 움직여 사람을 얻고, 행동을 했는지, '빛나는 다스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정명공주의 막내 아들에게 전해준 글을 통해 그리고 송시열과 다른 문헌을 통해 정명의 삶을 유추하고 오랜 세월동안 살아왔던 세월들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하긴,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스스로 '빛나는 다스림'을 찾아내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p7(정명공주가 80세 되던 해에 막내아들 홍만회에게 내린 글)

 

존귀함, 겸손, 공손, 어짊 과 후덕..

정명공주가 지키려 했던 것들이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국민을 대신해서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