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즐거움 - 나를 성장시키는 혼자 웅크리는 시간의 힘
신기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현을 참 잘한 것 같다. 은둔의 외로움이 아니라 은둔의 즐거움이라 표현한 것은 은둔이 외로움이라는 안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사람들은 은둔을 힘들어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외롭다고 한다.

모르겠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아이도, 가족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정말이지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로 갖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다.

아이가 있다 보니 엄마로서의 아이에게 함께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집으로 들어가면 딸아이의 엄마로서만 산다. 대신 일찍 아이와 함께 자고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만큼은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은 5시 반쯤 일어나는데 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앞당기고 싶다.

5~7시까지. 2시간 만큼은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

그 시간에는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고 느낀 것을 글로 적는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야 하루가 건강하다.

30분만 더 일찍 일어나게 된다면 아침 산책을 나가고 싶다.

(조만간 그렇게 해야겠다. 글을 쓰다 보니 그 시간이 정말 갖고 싶어진다.)

그리고 회사 점심시간인 12~1시

코로나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 같다.

만약 그전 같으면 모두가 모여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회사 안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니 회사에서도 당분간은 혼자서 먹기를 추천하며, 자연스럽게 혼자씩 먹어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코로나한테 감사하다.

점심은 간단히 도시락을 싸와서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그때 듣는다.

영상을 보면서 혼자서 밥을 먹다 보면 1시간 동안 꽤 많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오후 시간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나만 은둔의 시간 갖기 비법이다.

책에서 말하는 은둔의 즐거움을 나는 안다.

그 시간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그리고 은둔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진짜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최소 하루에 3시간은 나를 위한 은둔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 시간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시간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그렇게 고독을 잘 활용하는 사람 중에서 멋지게 살아낸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고독한 사람들의 운명 속에는 남들보다 훨씬 큰 고독의 그릇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고독의 크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오아시스 같은 은둔의 시간을 만들어 고독의 사막을 건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생이 고난을 건널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는다. 그들이 그렇 수 있다는 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운명이 우리에게 깊은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우더라도, 그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은둔의 처세란 내가 언제 멈추고 나가야 할지 그 '때'를 아는 것이며, 사람들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 '거리'를 아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잠룡이라는 말은 은둔의 처세를 집약해서 표현한 말이다. 물속에 잠긴 용이라는 뜻의 잠룡은 하늘을 날아오는 용이 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자신을 감추고 힘을 키워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나섰다가는 제대로 비상하기도 전에 모함과 시기라는 예상하지 못한 불행에 빠질 수도 있다. 잠룡의 시기를 견뎌내지 못하면 결코 승천하는 용이 될 수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생업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끝까지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나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 기간은 간절한 기도로 새벽을 열며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완독하는 배움이 될 수도 있고, 주말이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고단한 성장의 발걸음이 될 수도 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봄이 오면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을 가슴에 꼭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겪은 삶의 위기가 위대한 기회로 바뀌는 마법 같은 필연의 봄이 분명 나를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전화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역할 전환의 공간에 '일과 가정이라는 별개의 영역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의식적인 설정을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나는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 부여가 확고할수록 그 공간은 실제로 내가 원하는 힘과 의지를 불러일으켜준다.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주는 긍정의 변화는 내가 만들어놓은 습관의 설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낯선 것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것에 적응하며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키운 힘은 내가 머무는 영역에서 남다른 실력을 갖게 해줄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꼭 나처럼 차를 마실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출구가 커피일 수도 있고, 요리일 수도 있고 와인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나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다는 건,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있다는 믿음이 들게 만든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정성 들인 음식처럼 내가 나에게 달여주는 차 한 잔은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줄 기쁨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러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은 고독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헌신의 은둔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랬을 때 고독은 나의 충실한 반려 감정이 되어 '좋은 고독'의 즐거움이라는 기쁨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말 1시간 엄마표 영어 - 이걸로도 엄마표가 안되면 학원에 보내라 엄마의 서재 6
이은미 지음 / 센시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지 3개월 차다.

나는 엄마표라는 말에 처음에는 질려 했다. 그렇게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억척스럽게 해내지도 못한다고 미리 겁먹었다.

그러다 지인들과 함께 컨셉을 바꿨다.

열정적인 엄마들처럼은 할 수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힘들지 않고 즐기는(?) 차원에서 시작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개월도 꾸준하게.. 매일매일 ... 하루에 10분씩!

언어는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10분으로 잡았다.

영어책은 한글책보다 글 밥도 적고 얇기 때문에 10분이면 무리 없이 한 권정도 읽을 수 있어서 하루에 10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의 첫 책이 <하루에 10분 엄마표 영어>라는 책이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바로 <주말 1시간 엄마표 영어>다.

하루에 10분도 어려운 워킹맘들을 위한 <주말 1시간 엄마표>

<엄마표 영어>를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워킹맘들에게 주말에 아이를 위하여 1시간 만이라도 해보세요!라고 말한다.

헉...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루에 10분도 어렵다면 주말에 1시간.. 더 이상 회피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 마음 이해할 것 같다.

나도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려고 할 때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의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쏟아야 할 것 같고, 나는 없고 아이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싶은 엄마인데...

아이만 성장하는 건 나도 원하지 않는 컨셉이라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 입학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이의 학습에 엄마가 전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나처럼 무심경한 사람도 신경이 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10분만 하자! 딱 1권만 읽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 생일 때까지는 전혀 학습 쪽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학생이 되고 나니 달라진다. 엄마가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나 영어는 엄마가 신경 쓰는 것과 신경 쓰지 않을 때 전혀 다른 아웃풋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 확신하게 된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면서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다. 정말 엄마표 영어에 대한 책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

추천하는 책도 보면 비슷한 책들을 많이 추천한다.

추천 영상도 보면 비슷하다. 그중에 나와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내가 보기엔 나와 비슷한 컨셉을 찾아서 하면 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열정적인 엄마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이를 봐주거나 아이를 위해서 내 모든 시간과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하루에 10분 엄마표영어>컨셉이 맞고,

이것도 어렵다 하는 분들은 <주말 1시간 엄마표 영어> 컨셉을 따라 하면 된다.

이제 막 엄마표 영어를 시작해 볼까? 하시는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마 엄마표 영어라는 말만 들어도 나처럼 부담으로 다가오는 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엄마표 영어는 엄마의 희생이 아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여기면 된다.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하기 싫어진다.

하루에 10분, 그것도 어려우면 주말 1시간을 이용해서 아이와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이용하면 된다.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좋은 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고,

또 영어를 놀이처럼 할 수 있고, (나 같은 경우는 아이와 영상으로 찍어서 인스타에 따로 올려준다.

아이는 영상을 찍는 그 순간을 즐겨 한다. 매일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지인들과 함께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된다)

잊었던 영어를 다시 떠오르게 하고,

엄마도 함께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는 "너만 공부해! 엄마는 놀게"할 수 없다.

네가 하니까 엄마도 해야겠다! 가 진짜 공부이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면서 나도 영어공부를 한다.

다시 영어에 관심을 두게 되고, 쉬운 영어로 하니 자신감을 얻게 되는 건 보너스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려고 생각한다면 부담 없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을 대로 하라 :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단 하나의 일의 원칙 1
구스노키 켄 지음, 노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재미있는 커리어 상담이다. 어떤 문제를 제기하던 답은 "너 좋을 대로 하세요!"라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들은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울 것 같다. 기껏 큰마음 먹고 상담했는데 "네 마음대로 하라니..."

그런데 그 뒤를 읽어보면 구스노키씨만의 해결책을 두고 있다.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답은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묘하다.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 들으면 들을수록 작가의 답을 듣고 싶어진다.

결국 답은 질문하는 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칭스킬과 비슷하다. 코칭도 피코치가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에게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한다. 그 매력에 내가 코칭을 좋아한다.

작가는 질문자의 질문을 분석한다. 질문 속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준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다. '너 좋을 대로 하세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국엔 책임을 질문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러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건 그 선택한 것에 대해서 덜 후회한다.

그리곤 스스로 길을 찾게 된다.

코칭은 그래서 적합한 질문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적합한 질문을 하려면 피코치들의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

작가도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자신의 답은 이미 정해졌지만, 질문자들을 위해 최선의 코멘트를 해 주려고 질문자들의 질문을 파악하는 것이다.

결국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른인 만큼 선택에 있어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면 된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이 삐뚤어진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 스스로도 의아해질 때가 많은데, 전에 어떤 사람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불쾌하다는 건 네 어딘가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이야. 네 관심의 저변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그 기사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거야." 이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제 자신과 그 내용이 어딘가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글이 제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면 불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재미없다며 지나치고 말았을 테니까요.

제 기본적인 신조는 '사람이여, 99%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자유 의지, 즉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xx 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제일 나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누가 그러라고 했나요?"라고 정곡을 찔러 버립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어쩔 수 없어' 아저씨 (혹은 아줌마, 언니, 오빠, 형, 누나)를 만난다면 "누가 그러라고 했나요?"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그 상황 자체의 이득은 '위치 에너지'와 같습니다. 현시점에서 스카이마크와 ANA의 위치 에너지를 비교하면 ANA 쪽이 앞설 것입니다. 중요한 위치 에너지 중 하나인 '주위 사람의 평가'도 그렇습니다. 'ANA로 옮겼어'라면 부모님과 친척들이 "그래? 그거 참 잘 됐구나"라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회사와 관계없이 '내가 거기서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 하는 운동 에너지에서 일의 내실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치 에너지를 추구하면 운동 에너지는 그만큼 줄어듭니다. 세상에는 위치 에너지만 가득하고 운동 에너지는 텅텅 빈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공기관의 고위직이 그 대표입니다. 실질적인 일은 전혀 안 하는데도 모두가 그들에게 머리를 숙입니다. 위치 에너지가 너무 높아서 그들의 권위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체력과 재정 등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언제나 '무언가를 얻는다' '무언가를 한다';는 선택은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동반합니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한다'라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를 '트레이드오프'라고 합니다.

자원이 무한하다면 트레이드오프는 사라질 것입니다. 자원이 무한하니 애초에 의사결정도 필요 없습니다. 무엇이든 마음껏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당연한 ㄴ말이지만, 세상에 시간과 돈과 체력이 무한한 사람은 없습니다. 초인처럼 보이는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 씨, 손정의 씨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나 한정된 자원을 갖고 일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트레이드오프의 본직적 특성 때문에 '무엇을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전자보다 후자의 결정이 훨씬 어렵습니다. 결정하는 순간 무언가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트레이드오프가 세상의 원리인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지 않고서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사결정은 동시에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잡아줄게요
착한재벌샘정(이영미) 지음 / 더블:엔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샘정님과의 인연도 벌써 3년 차가 되는 것 같다.

그림책 강연으로 우연히 만났다가 필연이 된 인연. 샘정님은 나뿐만 아니라

샘정님을 만나게 되는 어떤 사람도 필연으로 만드시는 그런 분이다.

나처럼 사람에게 들이대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늘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늘 멀리고 바라보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미 그녀의 주변에는 많은 여성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늘 나는 멀리서 응원하는 빅팬이다.

그런데 이렇게 또 따뜻한 책으로 만나주셨다.

우선 책 제목이 너무 좋다. "손잡아 줄게요"

이 제목이 샘정님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떤 분이시라는 것인지 이 한 줄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고 있다.

샘정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손 내밀어 주시는 분이다.

몇 십 년 동안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고, 그 학생의 부모들에게도 손 내밀어 주신 분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내가 알기론 더 많은 분들에게 손 내밀어 주신 분이시다.

대구에 계셔도 팬들이 원하면 어디든 와 주시는 분이시다.

벌써 일년살기에서도 두 번이나 모셨고 이번 6월에는 줌으로 모실 예정이다.

벌써부터 샘정님의 강연이 기대가 된다.

울고 웃기는 샘정님의 강연. 배꼽을 잡고 깔깔 웃다 보면 뼈 있는 한 마디로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신다.

샘정님을 만나고 가는 그날은 집에 가면서도 마음이 따뜻했다.

매년 잊지 않고 책으로 만나주셔서 감사하다.

6월에는 줌으로 뵈어요. 샘~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철길은 왜 서로 닿지 못하는 거리를 두면서 가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로 등을 돌린 뒤에 생긴 모난 거리가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 말이다.

<나란히 함께 간다는 것은, 안도현> 중에서

"나는 당신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고,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당신 맘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는 건 당신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지만 상대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 되어요. 나는 척 보고 알고, 눈빛만 보고 아는 그런 능력은 없거든요.

아무리 접어도 모서리가 반듯해지지 않는다.

다시 펴서 쓰다 담고 당겨 본다.

귀퉁이를 접으니 또다시 비스듬하다.

이 비스듬한 주름 살들은 따라 물들이 흘러깠던 것이다.

< 빨래의 힘, 노혜경> 중에서

새 옷인 듯 태어나려고,라는 시인의 표현에 짠함이 밀려오고 내게 꼭 맞는 껴안음을 내게 주려고,

라는 표현이 너무 감동적이라 혼자 울컥했습니다.

아무리 펴도 새것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 구김이 주는 뭐랄까 삶의 흔적의 느낌이 좋아 빨래를 만지는 손이 느려지더군요.

구김이 좀 있으면 어때.. 좀 낡아 보이면 어때..

빨래가 주름이 늘어가는 나인 듯

빨래가 여기저기 나잇살 붙은 나인 듯.'그래서 이렇게 말해봅니다.

"굳이 새 옷인 듯 태어나려 하지 않으면 어때."

홍성남 신부님의 <긍정적으로 살면 인생도 술술 잘 풀립니다>에 이런 글이 있어요.

10대 자녀가 부모인 당신에게 대들고 심술을 부린다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뜻이고,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가 살 만하다는 뜻이고,

옷이 몸에 조금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사록 있다는 뜻이다.

닦아야 할 유리창과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뜻이고,

빨래거리, 다림질 거리가 많다면 옷이 많다는 뜻이고,

가스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지난겨울을 따뜻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정부에 대한 불편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뜻이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자꾸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뜻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빈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가 차까지 있다는 뜻이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고,

이른 아침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시작한다는 것은

안된다는 걸 믿는 것이 아니라'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시작한다는 것, 이동식> 중에서

불행의 무게를 잴 때는

눈물만 올려놓을 것

저울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절대로 온몸으로 올라서지 말 것.

<인생의 무게를 재는 법, 양광모> 중에서

불행의 무게를 잴 때는 온몸으로 올라서지 말고, 불행의 무게를 잴 때 행복의 무게도 함께 재라고,

행복의 무게를 잴 때는 저울 위에 살짝 올라서도 좋다는 시인.

맞아요. 저울에 무엇을 올리고 무게를 잴 건지는 내 자유니까요.

어느 날 나는 왜 이럴까 싶어

깊은 수렁으로 던져지지만

그 속에서 우린 인생을 배우지 않은가.

<긍정의 힘, 조미하> 중에서

요즘 나 왜 이러지.. 하는 일은 원하는 만큼 풀리지 않고, 마음은 계속 조급해지고,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봅니다.

시인이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다고, 다들 그럴 때가 있다고, 나도 그랬다고,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우는 거라고.

한꺼번에 벌떡 일어서지 않고 조금씩 채워가며 일으켜 세워도 된다는 말에 응원을 받습니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주어진 기회를 붙잡으렴.

<낙엽이 나에게 건네준 말, 홍수희> 중에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자고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전하며' 살겠다고.

지루함을 이겨내는 인생을 살려면 항상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그 무엇을 스스로 찾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지루함, 조병화>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라는 세계 (리커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복샘과 나르샤님이 추천한 책.

누군가가 추천한 책이면 읽고 싶어진다. 이미 한번 검증된 것이니까...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추천해 준 거라 바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감탄했다. 어린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정중하게 불릴 수가 있구나... 어린이가 그냥 아이는 아니구나..

이 분의 글에 표현된 어린이들은 한 사람의 인격체였다. 일상의 어린이가 아니라 대접받는 일 인분의 사람이었다.

이미 이런 사실은 다 알지만 아무도 어린이들을 이렇게 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내 아이니까 사랑스럽게만 보고, 예쁘게만 봤지 이렇게 인격적인 한 사람 그대로 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어린이가 된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나를 존중해 주는 이 사람이 궁금했고, 생각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이 되었다.

작가님은 아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책을 써도 되는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은 아무나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야지만 쓸 수 있는 글 같다.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 이런 선생님이라면 내 아이도 맡기고 싶다. 이런 분과 함께 생각하며 글을 쓰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한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님의 마음이 가득 담긴 책이다. 어린이날 이 책을 리뷰하게 돼서 감사하다.

다시 한번 내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냥 아이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 한 사람으로서 아이를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날 읽으면 더 좋은 책. 추천해 본다.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인하 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다.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나는 개성이라고 하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장점이나 장점으로 봐 줄 만한 무언가여야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 덕분에 개성이란 '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들이 저마다 가진 고유한 특징을 몇 가지만 꼽아 보아도 알 수 있다.

더불어 아주 뜻밖의 사실도 하나 깨달았다. 어린이와 나 사이의 우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답이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너무 보고 싶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것임을 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으니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 보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어른스럽게 들리는지 알게 된다.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진짜 권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회적인 대화를 어린이도 사양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런 대화가 몸에 밴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아무 고민 없이 할 때보다 고민을 할 때가 더 힘들기 때문에 못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런데 생각해 봐. 어느 쪽이 더 잘 그리겠어? 그러니까 이럴 땐 괴로운 게 더 좋은 거지." 이런 말을 할 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내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하는 듯해서다.

만일 그때 누군가 내게 "글쓰기도 수영처럼 연습이 필요한 거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돼. 글은 자기만을 위해서 쓸 수도 있어. 그러면 내 생각을 내가 읽을 수 있거든. "너무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써도 돼. 오늘 쓰고 내일 읽어도 돼" 같은 말을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글쓰기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도 작게나마 영향이 있지는 않았을까?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에게 그런 말을 해 준다. 그러면 요란한 시간 여행 없이도 이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좋은 점이 또 있다. 그 말을 드디어 나 자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럴 때면 내 삶도 새로워지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