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기도 - 우리가 잃어버린 하늘 권능을 되찾는 기도
손기철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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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주일학교에서 받은, 사무엘이 두 손을 예쁘게 모으고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그림을 빼앗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지금까지도 기도에 대해서는 평생 해도 더 알기 어렵고 신비해서 피조물인 인간이 하는 말은 그다지 미덥지 않았다. 그래도 기도에 대한 책들은 꾸준히 <5만번 응답받은 조지뮬러의 기도비밀> <아내의 기도로 남편을 돕는다> <중보기도><4차원의 영적세계>  등 지금까지 수 십 권이 넘는 기도에 관한 크고 작은 책들을 읽어 왔다.

 

하지만 동생이 교회에서 받은 상을 강제로 빼앗아 내 것으로 간직하는 이런 모순된 인간성은 아직도 기도를 통해 그리 크게 변화된 것 같지 않다. 내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소원을 빌기 위해,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혹은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길 소망하기 때문에 하기도 하지만 더 주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어린아이가 장에 갔다 오시는 어머니 손에 맛있는 과자 한 봉지가 먹고 싶어서 어머니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딸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시는 어머니 곁에서 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고 편안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기도가 피조물이 일방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서 더 강하고 높이 활을 쏘듯 쏘아 올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성 앞에 서서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내가 왔으니까 그 닫혀 있는 성문을 열어달라고 아버지를 부르는 것과 같다. 기도를 시작한 처음엔 내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 하지만 이 <왕의 기도>의 손기철장로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일들, 내 의식이 만들어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말들이 내 입에서 술술 나오는 신비한 일을 경험한 후로는 훨씬 더 듣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손기철장로는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를 만나고 오신 어머니에 의한다면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며 매우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사람을 치료해주겠다며 억지로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도 그가 사람들을 어떤 심정으로 치료하는지, 아니 하나님께 병인들의 나음을 위해 어떤 심정으로 구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5) 그는 하나님께서 고치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도 책에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게 알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책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설명이 다소 모호하면서 추상적인 것이라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직접 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어떻게 형이상학적 기도에 대해서 똑 부러지게 벽걸이 TV 매뉴얼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서 기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왕의 기도는 종전의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신하가 왕에게 간청하는 식의 기도와 달리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역시 그 왕권을 가지고 세상을 쥐고 흔드는 악의 세력에게 명령하는 기도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며 용기 있는 결단이다.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에도 ‘고쳐주시옵소서’란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지만 ‘나를 약하게 만들고 상하게 만드는 이 악한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라고 명령하는 것은 자연적인 질병이 아닌 악의 대장인 마귀에게 행하는 것이란 점에서 분명히 그 차이가 있다. 대개는 신자들이 병에 걸렸을 때 일차적으로 병원에 갔다가 그것도 별 효력이 없으면 다음으로 목사에게 가서 기도를 받기 원한다. 그런데 왕의 기도는 목사만 할 수 있거나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이다.

 

다만 어려운 점은,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의식도 되지 않는 허공에 뜬 착각같은 악의 세력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나가라! 물러가라!’ 라는 식의 민망하고 쑥스러운 명령을 하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서 기도할 때가 아니라 여럿이서 기도한다면 감히 입 밖으로 소리도 못 낼 신자가 태반일 것이다.

그런데 책에 손기철장로는 반드시 소리를 내어 외치라고 썼다. 이유가 무엇일까? 속으로 대적기도를 해도 마귀는 떠나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능력에 반도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갈보리산에서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사건을 기억하신다. 예수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구원에 이른 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가 아니라 그 아들의 이름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마찬가지로 마귀 역시 그 십자가사건의 패배를 기억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 무릎을 끓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사실, 많은 기도를 주제로 한 간증집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복음교회 조용기목사의 <4차원의 영적세계>인데 주로 응답받은 각 사례별로 되어 있어서 읽기도 쉽고 재미와 흥미까지 굉장한 책이다. 그에 반해 이 <왕의 기도>는 사례도 들어 있지만 인간의 입으로 기도를 설명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래서 좀처럼 쉽지 않고 오히려 응답의 비결을 알려주겠다는 것인지 아닌지가 애매하게 들린다. 문제와 병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하나님으로 부터 이끌어 내겠다는 사람에겐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하나님이 누구시고 왜 기도에 응답하시는 지, 그리고 에수 그리스도가 다만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만 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 그 기도시간을 통해 교회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깊고 놀라운 내가 느끼는 은혜를 체험하고 싶은 이에게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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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의 비밀 - 찌푸린 지구의 얼굴, 자연의 아이들 지구 환경 이야기 3
허창회 지음, 박재현 그림 / 풀빛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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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다이달로스 이야기를 신화적 입장이 아닌 과학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것이 재미있다. 단순히 ‘그래, 그러기에 아버지 말씀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지!’ 라고 교훈적으로 아이들에게 겁도 줄 겸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실은 말이야 하늘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대기의 온도는 낮아지니 밀납이 녹아 죽은 것이 아니라 날개가 얼어서 움직이지 못해 떨어져죽었다는 것이 맞아!’ 라고 가르쳐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초등학생아이들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분명이 있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들도 종종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현상에 관해 알려주는 어느 학습만화보다도 훨씬 알찬 내용이 담겨있고 비록 조금은 어렵지만 지국에 대해, 환경에 대해, 우주에 대해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다면 충분히 교재로 삼을 수 있는 책이란 확신이 들었다. 물론 부모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교재이다.




해마다 신문과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는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후변화가 맞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이유는 기후변화란 반복되는 기상현상이 아니라 일단 변한 기후가 다시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 혹은 ‘남자 아이’ 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반해 엘니뇨는 ‘여자 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신문지상에 떠드는 먼 나라 태풍이 우리나라에 어떤 해를 끼칠까라는 근시안적인 사고만 하다보니 이렇게 대기현상을 그 밑바닥부터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과학자의 설명이 그렇게 고맙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지구온난화의 위험과 그 파괴력을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이 어떤 특성과 구조를 갖고 있으며 왜 갑자기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곧바로 추운 겨울이 오는지를 쉽고도 정확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한 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1970년대의 겨울과 1990년대의 겨울, 그리고 2008년의 겨울이 어떻게 다른 지를 한 눈에 보고 알 수 있는 그림도 훌륭했고 또박또박 연필로 직접 쓴 노트필기를 보는 재미도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재미있었다.




만약 이산화탄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면 실재하는 자동차 배기가스 속의 CO2를 보여주는 것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왜 한 여름에 차의 시동을 켜 놓고 공회전을 하면 공기가 나빠지고 더 온도가 올라가는 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면 나중에 직접 운전을 할 만큼 자랐을 때 제 식구만 시원하자고 창문을 열고 지내는 이웃의 집에 자동차매연을 마구 뿜어대는 짓은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된 상태에서의 교육은 어린아이 시절에 한 교육의 효과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어린시절부터 지구는 돈 주면 하나 더 살 수 있는 자동차 같은 물건이 아니라 망가지면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유일무일한 소중한 삶의 터전임을 분명히 알려준다면 극지방에서 빙하가 무너져 바다에 빠져죽는 백곰과 펭귄들도 더 이상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들에게서 경쟁에서 친구를 물리치기 위해 과학상식 하나라도 더 알아야 되는 수준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작은 강아지부터 전 인류, 나무에 찾아오는 노래하는 새들까지 거대한 생명을 품고 기르는 이 소중한 지구라는 별에 대한 예의와 그 원리, 함께 감사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미 이 책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마음 밑에는 ‘사랑’이 깔려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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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queen님의 "부의 역사의 유랑자에서 뿌리를 내린 정착자로! "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마음이 풍요로와지는 것 같아요.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로처님도 꼭 힘을 발휘해 주실 분 같아 좋은 친구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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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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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여사의 <동행>을 읽으며 잠시 책 내용에서 벗어나 역대 대통령부인 가운데 이희호여사 외에 누가 책을 썼는가, 아니 책을 읽기라도 했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그이들은 소비의 만용, 더 나아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기에 혈안이 되어 퇴임 후에도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은 상당한 인기와 힘을 누리며 보장된 안락함을 자랑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동행>이란 책 제목은 제대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그 거목에 빌붙어 고난 끝에 마침내 영화를 누린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다수의 의견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독재의 암흑 속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남편과 함께 한 몸이 되어 현재의 80 노구가 되기까지 끝까지 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동행>을 통해 우리나라의 5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는 현대사를 어느 정도 균형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동행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전혀 동방의 작은 나라-한국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함께 가야할 필연적 운명의 아무런 역사적 부담도 없는 한 이방인이 이토록 곧은 소리를 절박하게 질러대고 있는 것을 보니 또 하나의 <동행>을 발견하게 되어 그 놀라움과 반가움이 남다르다. 이미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할만큼 성장한 덕분이라할까, 그의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자세에 더 신뢰와 관심이 가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매력이다!


  한참 옛날에 살다가 갔을 법한 촌스런 박노자라는 이름의 저자가 쓴 짤막하면서도 명확하며 구체적인 비판적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보수와 진보의 갈림길을 처음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우선은 속이 쓰려왔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의 실체인 그 뿌리가 어디쯤에 있는 지 손에 잡힐 것 같은 묘한 예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이건희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하는 것을 반대했다가 출교당한 고대생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특히나 아팠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만난다면 그들에게 유학을 떠나 당분간 돌아오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도피가 최상의 방법일 수 없지만 차선의 선택일 순 있다. 이 사회가 신분고하를 넘어 모든 개인에게 자존심을 허용할 때까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지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 국적을 갖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 출신의 외국인 대학교수가 한국사회의 실체에 대해 이런 뼈아픈 진단을 내렸다니,더더구나 같은 한국인교수조차 나서서 이런 충고를 하는 이가 없건만 타문명권에서 온 박노자는 교수로서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은 있는 모양인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신이 몸담았던 한국의 대학이 한국연구가 주 목적인 ‘상아탑’이 아니라 힘과 돈으로 뒤죽박죽이 된 탁한 ‘구정물통’이라는 것도 전혀 거리낌 없이 폭로한 것을 보면서 왜 대다수의 교수들이 수치심도 없이 일말의 정의감과 자신의 소신도 훌러덩 벗어버린 채 출교당한 자신의 제자를 비호하기는커녕 그저 이사장과 대기업 후원자들에게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호스티스로 전락했는가를 새삼 한심스러우면서도 피가 얼어 붇듯 온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권위주의 사회엔 권위가 없다’ 역시 저자의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재학 중엔 교수에 대한 강요된 복종과 줄 서기에 마음에도 없는 충성심을 보내지만 졸업식 당일, 비로소 그 군림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에 일순간 안면을 바꾸는 행태를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이와 같은 모습을 자주 접하는가! 일례로 강남의 중대형교회의 교구목사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즈음 성도들은 그들과 마주쳐도 인사조차 건네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떠나는 목사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유는 앞의 대학원생들과 거의 흡사하다.

 

목사들이 교회에 재직하고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성도를 섬기고 존중했다면 대부분이 그래도 순한 양으로 구성된 성도들이 그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신학대학원에서 갓 나온 젊은 목사들은 자신들이 큰 교회에 뽑혀 온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함께 ‘나는 너희를 섬기러 온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러 왔노라!’라는 그들의 스승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기에 성도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성도들에게조차 아랫사람 대하 듯하며 인사를 받기 위해 교회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접받기 원했다면 애초부터 목사의 길에 들어서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유교와 달리 낮아짐을, 겸손을 가장 먼저 가르치는 기독교에서조차 이놈의 병든 ‘권위주의’는 망신살이 굵게 굵게 뻗혀있다.

 

주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쓴 이 글들은 겁이 날 정도로 거침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시각으로 본 것에 대해 혹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내가 외국인이라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일체의 주저함이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입 밖으로 낼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자신감이 무모함으로 비춰질 정도이다. 그렇게 박노자의 붓은 양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롭고 정확하게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부패한 의식과 조직, 권력층의 횡포를 과감하게 베어내고 있다.

 


그 점이 사무치도록 부럽고 또 한편은 불편하게 다가왔다. 왜? 그의 글을 비록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병폐들에 대해 여기저기 쑤셔보고 찢어보고 껍질을 벗겨서 그 시뻘건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았지만 막상 나를 구속하며 불편하게 하던 우리 사회의 그 흉하게 병든 실체를 눈 앞에 대하니 예상과는 달리 전혀 속이 후련하다거나 맞아도 싸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괜히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의식수준에 머물러 있는 오천만 한국인과 수 많은 피를 흘리며 독재권력과 싸워 이루어 놓은 민주화의 성과가 고작 이 뿐이라는 생각에 불쌍타여겨지니 내가 내 속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아도 나는 민주화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고작 내 맡은 일을 내 팽개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소시민이다.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기가 막히게 운이 좋으면서 한 편으론 염치없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작된 거짓의 역사 세우기에는 도저히 분을 삭일 수 없음은 웬일일까! 외국인조차도 한 발 물러나 나 몰라라하며 현재의 기득권층에 기대어 개인적 영달(榮達)을 좇는 대신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한국역사에 대해 그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이 나라의 역사적 실책에 대해 여과없이 정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 때, 어쩌자고 부끄러운 과거의 과오를 권력을 동원해서 그럴듯한 속임수로 화려한 공적비를 세워 덮으려는가 이 말이다!

 

아픈 곳, 흉한 곳, 부러진 곳, 벌레먹은 잎사귀 한 장 없이 사시사철 푸른 잎으로 가득한 나무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면 그것이 진짜 살아서 성장하는 나무가 맞을까? 아니다! 그 나무는 생명이 없는 인간이 만든 조화일 뿐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렇게 완벽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에 속았다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남 보기 창피한 부러진 가지와 벌레 먹은 잎사귀가 있더라도 살아있는 진짜 역사를 원한다. 생명력이 있어 앞으로 더 키가 크고 뿌리가 깊어지고 가지가 뻗어가며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진짜 역사 말이다!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우겨서 미화시켜 놓으면 지금 당장은 보기 좋아도 그 자리는 곧 썩고 말 것이다.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을 가짜 나무 만들기를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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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Fat Cat의 세계에서 제일 간단한 영어책 - New Edition
무코야마 아츠코.무코야마 다카히코 지음, 다카시마 데츠오 그림, 김은하 옮김 / 윌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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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영문학교수로 있다는 무코야마 아츠코 할머니에게 1: 1 영어과외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영어를 처음 접하는 누구에게나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고집스런 의지가 느껴졌다. 마치 피아노를 처음 쳐 보는 아이에게 악보를 보여주면서 '반짝 반짝 작은 별'의 멜로디를 피아노건반에 직접 치게 만드는 것처럼. 복잡한 높은음 자리표, 낮은 음 자리표, 장조, 단조 등을 가르쳐주지 않고 단순하게 악보를 보고 그대로 피아노건반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바로 그 기분이다!

일본여자가 미국유학을 거쳐 다시 일본에 와서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그 교습법에 대해 대단히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법과 리스닝 등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영어를 읽는 방법'에 대해 독특한 자신만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만 통하는 문법용어가 이렇다.

 

배우= 명사

화살표= (술어) 동사

부록= 부사

화장품= 형용사

특별한 화장품= 관사

접착제= 전치사

기본형= 제3 문형 SVO

 

영어와 본격적으로 씨름하게 된 고등학교 때 나는 서울대 영문과에 다니는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는 남자선생님에게 친구와 함께 과외를 받았다. 자신이 공부를 잘 한 사람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결함- 자신의 수준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에 무척 딱딱하고 어렵게 가르친다-처럼 그 선생님은 나에게 영어의 어려움을 제대로 가르쳐주었다!

송성문의 <성문기본영어>와 <성문종합영어>로 초반부터 영어의 즐거움,재미보다는 '영어는 괴로워 괴로워!를 입에 달고 다니며 중고등학교시절을 보낸 나에게 영어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일종의 억지주장 내지 역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광고에서도 오히려 반어법을 이용해서 대단한 효과를 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영어교육에 대해서까지 이런 전략을 의도적으로 쓸까싶어 납득이 될 때까지 뭔가 있겠지하며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영어가 제일 쉽다니.....

속임수가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 나오는 단어가 고작 cat, the pie,scratched  등 정말 몇 단어가 안 나왔다. 문법에 대해서도 별 설명이 없고 그저 A 와 B 상자 안에 눈으로 따라가며 게임을 즐기듯 알맞은 단어를 쏙쏙 던져 넣으면 되는 것이어서 나도 모르게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게임의 정답을 맞추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요즘 노인들에게 까지도 히트를 치고 있는 <ENGLISH RESTART>1,2 권과 비교하면 중학교 수준의 잊었던 단어나 숙어를 되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어에 대해 두려움으로 더 이상 가까이 하기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영어는 재미있다~, 영어는 쉬워~ 하며  영어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낸 책이다.

 왜냐하면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일단 읽는 방법만 가르쳐준다.

문장구조도 1형식부터 5형식으로 생선 토막치듯 가르쳐주는 대신 훨씬 간단하게 문장구조를 나누어 가르쳐주었다. 이 문장구조만 이해하고 단어의 뜻을 알면 장난감 조립하듯 연결해서 왠만한 문장을 읽어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신기하고 쉬웠다. 영어는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텔레비전을 매뉴얼을 보면서 그 작동법을 익히 듯 실용적 도구라는 취지의 저자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그런데 예문 가운데 'RED BOOK'은 스토리가 다소 부적합한 것 같아서 이왕이면 아름답고 감동이 있는 예문으로 바꿔주면 좋을 것 같다. 다소 무서운 것이 아니라 공포스럽다! 

영어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초등학생 수준의 단어 몇 개만 알고 있어도 바로 문장을 읽게 될 수 있게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중학생 이하와 왕초보 성인들에게 적당한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는 이들에겐 재미로 읽어야하겠다.  

내가 영어를 처음 접하던 중학교 1학년때를 되돌아보면 영어는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는 세련된 언어라고 배웠다. 물론 서양사람의 의식구조와 동양인이 나의 의식구조가 달라서 어순이 우리말과 다르고 그래서 무조건 어렵고 힘든 낯 선 언어라고만 배웠다.

게다가 그 발음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반장이라고 영어선생님의 호출로 자주  큰 소리로 교과서를 읽으라는 명령을 받을 때면 얼마나 가슴이 뛰고 발음이 신경이 쓰여 연습에 연습을 거쳐도 아이들 앞에서 폼나게 읽는 다는 것은 꿈이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영어를 보니 아니, 읽고 알아들으면 되지,...뭐가 어려워!!! 

영어교과를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먼저 읽고 영어를 쉽고 재미있다고 확신하며 가르쳐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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