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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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필자는 간소하게 나마 글을 자주 쓰는 편인데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걱정과 조바심은 탈고(사실 요즘에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수시로 수정하기 때문에 ‘탈고’ 보다는 그냥 ‘포스팅’ 이라는 단어가 적절해 보이지만)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거나 글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나면 쫒겨 다니는 기분이 들기까지 하는데 내 스스로 좋아서 쓰기 시작한 글도 고통의 종류만 다르지 사실 부감은 거기서 거기이다.

 

 

필자는 최근 5년 정도 소설을 많이 안 읽고 있다. 1년에 2-3권 읽으면 많이 읽는 것이고 올 해는 그나마 지금 읽고 있는 월리엄 깁슨의 '뉴로멘서'와 미하엘 엔데의 '모모' 두 권이다 그나마 모모는 지난 해에 반을 읽고 올해 나머지를 읽었던 터라 정확하게는 1권 조금 넘게 읽은 것이다.  1년에 20권 이상씩 종류와 두께에 상관없이 읽기 시작한 것은 대략 7년 전부터 이다. - 독서 후 꼼꼼하게 리뷰와 감상 또는 책으로부터 시작한 잡다한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시점 이후부터는 읽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필자가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가 바로 파악이 되고 있다.

 

 

 

 

글쓰기와 읽기의 고통 그리고 몰입

 

글쓰기의 고통은 읽은 사람과의 고통과도 연결이 되는데 책을 읽다가 힘들어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필자는 간혹 전문서적을 읽은 경우가 있는데 올해는 '명령하는 뇌, 생각하는 뇌'와 '예루살렘 전기'을 읽으면서 책을 놓고 싶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이런 책들은 사실 내용 자체가 어렵고 필자가 공부한 분야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에 비해 전문 지식이 없거나 몰라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소설류인데 이런 소설을 읽다가도 힘이 빠지거나 읽기에 고통스런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독자로서 겪은 글 읽기의 고통을 통해 글쓴이의 고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거나 혹은 글을 쓰기 전까지 여러 가지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거나 고통 자체가 소설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책을 내기도 하는데 이 책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가 그런 경우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것도 책이 되는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 들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 순간을 모아놓았다는 것이 신기해서 읽어본 책이다. 책 내용에는 필자가 이미 읽어본 책들도 있어서 그 이야기에서는 좀 더 흥미로 왔다. 반면 읽어본 적이 없거나 재미없게 읽었던 책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좀 지리 하다. 예를 들면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 ‘어렵다. 뭐지 뭐지?’ 하며 읽었는데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뭐 그런 것...) ‘개츠비’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별 감흥이 없다. 반면 '어둠의 속' 같은 경우처럼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원작을 각색하여 만든 '지욱의 묵시록'을 감명 깊게 된 경우에서는 이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의 실제 모험담을 읽으면서 필자도 함께 긴장이 된다.

 

심지어는 ‘빨강머리 앤’ 부분에서는 감동의 눈물까지 나왔다. - 어린 시절 지브리 스튜디오(Studio Ghibli)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후반부에 같은 상황을 겪었었다.) 소설이 그냥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거나 인물과 사건을 단순히 이어 놓은 것뿐이 아닌 증거이다.

 

 

내가 글을 읽으면서 겪는 희로애락이 작가의 글쓰기 과정에서 그가 겪는 희로애락(喜怒哀樂)과 통하게 된다면 이것 이야 말로 바로 위대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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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부모역할 책 - 이제 막 부모가 된 당신이 알아야 할 ‘생후 초기 6년’ 자녀양육법
도현심 지음 / 지식채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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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2년간 신생아에서 부터 청소년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었다. 신생아에서 두돌까지의 양육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메뉴얼인 '베이비 위스퍼리 골드' 부터 청소년기의 뇌발달과 비행의 이유를 다룬 '10대들의 사생활' 등등... 10권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육아관련 책들을 읽었음에도 늘 손에 잡히는 것이 이들 서적이다. 또 이미 다른 책에서 다룬 내용인데도 여전히 익숙치 않고 심지어 새로운 것 처럼 느껴져서 눈에 불을 켜고 읽어보면 언젠가 읽어본 내용임을 알게 된다. 





자녀의 양육은 중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어려운 문제이다. 사람의 본능에서 가장 고도로 조직해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세포화되고 개별화된 가족구조와 고도로 세밀화된 사회 구조에서는  육아문제는 우리의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보편적인 방법을 거부(?)한다. 

우리 부모 이전 세대, 즉 조부모 세대에서는 육아는 집안 전체의 문제였다. 직계 가족들이 같이 사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의 육아를 모든 어른들이 분담하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같은 집에 살지는 않아도 아이의 성장은 이웃들이나 지역 공동체의 관심사여서 부모에게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을 자라날 수 있었다. 

베이비 부머라 불리는 시기 전후로 출생한 우리의 부모 세대에는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어머니는 아이들 정성스럽게 돌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났다. 청소년기가 되면 학교와 또래 집단안에서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이제 아이들은 그저 막연하게 정성으로 키운다거나 보편적인 육아 방법으로 키운다는 것이 어렵다. 우선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부모의 어느 한쪽이라도 온전하게 아이와 함꼐 지속적인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아이의 양육 만큼이나 부모들이 생활 수준(소비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 만큼 2세에 대한 기대치는 커져서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부족해자 누가 아이를 양육하는 가의 문제는 사회적 이슈화까지 되고 있다. 연로하고 거기다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에게 맏기는 것도 전문적인 보모에게 맏기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전문적 보모나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맏겨지는 문제는 유아기에는 커다란 스트레스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느끼는 기대치는 높아졌다. 세속적인 성공(?)과 보편적인 가치(도덕적 기준), 외모적인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기초적이며 필수적인 요소들(사랑, 관심, 존중)과 각 시기별로 필요한 교육방법들은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요즘 많은 아이들은 부모에 계획표에 따라 잘(?)나게 자라고 있지만 본인이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육아에서 부모가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은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며 부모는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스스로 가꾸어갈 수 있는 힘이 자랄 때까지 지원하는 서포터즈 그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부모교실이나 관련 책들을 습관적(?)으로 읽어서 각인 시키는 수 밖에 없다.
필자도 계속 세뇌 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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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라이어 - 전 세계 글로벌 리더 150명을 20년간 탐구한 연구 보고서 멀티플라이어
리즈 와이즈먼 외 지음, 최정인 옮김, 고영건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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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전폭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는 없다.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려는데 더 이상의 인력지원이 없다. 조직원의 능력 배가 만이 방법이다. 멀티플라이어

 

 


 

무거운 현실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더 이상 황금빛 미래를 약속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기업도 투자한 만큼 걷어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불안해 한다. 투자보다는 축소를 통해 미래에 닫칠 환란에 대비한다며 현금을 모으려고 한다. 그 동안 많은 기업들이 투자하면 몇 배의 이익을 회수하는 상황 속에서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투자를 해 덩치를 불려왔다. 다시 큰 덩치를 담보로 남의 돈을 빌려 투자하는 방법, 소위 '돈 놓고 돈 먹기'의 방법으로 배를 불려왔다.

 

그러나 이제 부실한 몸집은 자칫 순식간의 오판이나 외부적인 도전으로 쉽게 무너질 위험요인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섣부른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도 금융권도 개인도 쉽게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현금을 확보하려고 한다.

 

돈의 흐름이 막히면 잘 돌아가던 경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경제학 개론을 들쳐내야 하니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원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런 투자환경에서는 당연히(?)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 멘다. 나라도 살자는 아주 원초적인 방법으로 그 똑똑한 인재들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것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이윤 추구와 창출 기업의 존립 이유

 

기업은 그 존립가치와 속성 때문에 끊임없이 이윤이 발생해야 한다. 이윤 발생이 안 되는 상황은 물론이고 새로운 이윤창출이 되지 않으면 기업은 존립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설사 유지가 된다고 해도 이익을 만드는 기계처럼 변해(결국 기업을 부르기 어려운…) 간다.  기업은 이윤도 만들지만 기업의 문화와 구성원들 개인의 가치창출도 중요하기 때문에 유지비라도 벌어드리니 다행이다. ‘라는 것은 궁여지책일 뿐이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그 기업은 사라져 갈 것이다..

 

 

 

 

보급 없는 최전선 부대

 

보급이 끓긴 최전선 부대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비약이 심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적과 교전중인 부대에 보급이 끊기면 어찌 되겠는가? 우리 쪽만 보급이 중단되고 탄약 등이 떨어졌다면 선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항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몸으로라도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적도 같은 상황이라면 보급이 올 때까지 서로 눈치를 보며 상대가 먼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과 뛰어나가서 백병전을 하는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는 상대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무작정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뛰어 나갈 것인가? 또는 꼼수를 부려서 제3의 방법을 찾을 것인가는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문제해결 능력에 달렸다.  이런 상황은 어떤 매뉴얼로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백병전의 상황이라면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초인적으로 발휘되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목숨은 물론 부대 운명이 좌우된다.

 

평소에 잘 훈련되고 지휘관의 영향력이 큰 부대라면 백병전은 물론이고 자폭하는 상황에서라도 조직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말도 안 되는 승리를 이끌어 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극한 상황 일수록 극적인 반전은 오히려 더 쉽게 일어나는 듯 하다.

 

 

 

개인의 능력과 조직의 능력 끌어내기


전쟁이야기에서 다시 회사로 돌아오자.

조직은 더 이상 새로운 투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가 자원(인력, 자금) 조달은 매우 어렵다. 특히 신규 인력 지원은 자금 문제 보다는 더 어려운 문제이다그러나 회사는 꾸준한 이윤 창출을 해야 한다. 더구나 기존의 꾸준한 이익 보다는 새로운 이윤 창출이 조직과 조직원들에게는 더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지금의 자원, 특히 현재의 조직원들 내에서 새로운 자원을 끌어 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현재 인력으로 부족해서 추가 인력을 요구해야 할 판에 현재 인력만으로 추가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빙고~ 바로 자~ 야근이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필자의 경험상 야근은 절실할 때에만 효과가 있다. 갑자기 당한 부상 중에도 결승선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것은 한 두 번으로 족하다. 일상화된 야근은 오히려 극단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 쉽게 말해서 내일도 야근해야 하는데 이 저녁시간까지 피 터지게 일 할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제한된 현재의 자원에서 새로운 힘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조직에 에너지를 활성화 하고 조직원 개개인 안에 묶여있는 능력을 밖으로 끌어내주는 리더십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도 없는 리더십을 얼핏 들어왔고 사용해본 리더십도 꽤 많을 것이다.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필자의 글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만 기왕 이야기의 흐름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ㅋㅋㅋ)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해봐야 하겠다.

 

 


 

리더십에 관한 책의 한계 현실의 문제

 

리더십들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고 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의 문제 때문이다.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저술은 적어도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리더십에 대한 책에서 언급하는 성공사례들은 적게는 2-3년에서 10년이 넘은 이야기들도 많다. 이야기 하나만 놓고 보면 그럴 듯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을 뿐 더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같은 결과로 귀결되지 않는다. 설사 당시에 바로 그 리더나 팀원들이 대응한다고 해도 같은 방법이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가 늘 듣고 바로 그 이유,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 후에는 이미지 지나간 시대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더십에 대한 공부(?)나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많은 리더십이 이론들이 공통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세부적인 방법론의 차이로 구분한 것은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가 강하다.

따라서 다양한 리더십을 경험해 보는 것은 말하자면 반복학습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멀티플라이어 동기부여

멀티플라이어라는 리더십은 방향성에서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는 조직원들에게 적절한 책임과 권한을 주어 주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골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사실 그 원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다만 요즘 같이 세계적인 장기 불황 속에서는 조직문화가 경직되고 고용불안으로 인해 인사고과 권을 가진 리더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생기고 그로 인해 리더는 자의던 타의던 간에 디미니셔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모든 사안을 자신의 통제권 안에서 유지하려고 하고 조직원들을 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디미니셔들은 조직원들의 능력을 리더 수준 이하로 끌어내린다. 자신의 생각에 맞는 방향, 방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조직원들은 특별히 기발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휘할 필요가 없다. 설사 좋은 생각을 제안하더라도 리더의 생각과 틀리면 무시되거나 심지어 지탄을 받을 것이며 같은 방향이라고 해도 그것은 결국 리더만이 일하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멀티플라이어는  권한과 의무를 조직원들에게 분산하고 자신은 조직원들의 관리(성장)에 주력한다. 문제가 발생하더라고 늘 조언자로 한발 짝 뒤로 물러서있고 개입을 하더라고 다시 자기 자리고 돌아간다. 멀티플라이어가 구성하려는 조직은 자기가 물러나도 조직원 누군가 조직을 이끌 수 있고 또 다른 조직의 리더로 활약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키우는 곳이다. 따라서 조직원들은 늘 활력이 차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많은 아이디어 중에 하나가 제대로 발전하면 그것이 바로 말 그대로의 대박인 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도 이 조직은 조직원이 성장하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한다. 늘 새로운 인재들이 충원이 되고 성장하고 떠난다.

 

나서서 일을 맡고 싶고 늘 새로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늘 일이 많다. 금요일이 되면 몸은 녹초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운차게 일하고 행복해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이길 방법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의 10%도 못쓰고 죽는다.

 

잘 알려진 연구결과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의 대부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대부분의 시간을 조직에는 필요치 않은 엉뚱한 것으로 하면서 보낸다. 또 조직의 80%는 적절한 능력을 발휘를 못하거나 안하고 있다.

조직의 능력을 두 배로 늘려라~’ 라고 해도 이론 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조직은 부적절한 조직 문화.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고 부적절한 리더가 부적절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명령이 되어 버린다.

 

부적절한 문화와 구조와 리더 밑에서 일한다고 해도 스스로 멀티플라이어가 될 필요는 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문제투성이는 아니다. 나쁜 조직이라도 좋은 리더가 있을 수 있고 나쁜 리더 밑에 좋은 조직원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엉망이니 나도 엉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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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목을 친 남자 - 프랑스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
아다치 마사카쓰 지음, 최재혁 옮김 / 한권의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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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목을  남자프랑스혁명의 두 얼굴사형집행인의 고백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특히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직업은 더 세밀해진다어떤 직업은 직업명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꼭 부연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되는 것도 있다.





 

사형집행인


사형집행인은 어떤가굳이 설명이 필요한가?  현대의 사형제도는 그 존재의 의미를 의심 받고 이미 사형이 중지된 나라들도 많다또 현대의 사형집행은 일반인이 알 수도 없는 곳에서 집행되기 때문에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이다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망나니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하다이는 조선시대의 참수 형을 집행하던 칼잡이를 말하는데 근대 이전의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대를 이어 세습이 되던 것으로 인간백정이라 별칭에서 알 듯 있듯이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

 

근대 프랑스에도 세습되는 사형집행인 제도가 있었다이들은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받거나 법원에서 봉급을 받고 귀족들과 같이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등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시대의 망나니들 처럼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았다다른 직업 군들과의 결혼은 물론이고 생필품 구입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프랑스의 사형집행인들 모두가 이런 천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 상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습 사형집행인 집안이 있다.
이 이름은 몇몇 프랑스 작가의 책을 통해 등장하는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인 뒤마발자크 등의 저서에 상송이라는 이름과 집안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는 한다당시 천시되던 사형 집행인이 작가들의 걸작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앙리 상송


사형집행인 앙리 상송은 무슈 드 파리로 불리었다파리의 선생님 정도로 해석이 될만한 이 별칭은 찬양 수준은 아닐지라도 천대와는 거리가 먼 별칭이다앙리 상송은 4대 세습 사형집행인이다그가 단순히 사형집행인이었다면 이런 별칭으로 불릴 리가 없었을 것이다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형집행인들은 일정 지역내의 상인들에게 세금을 받아서 사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이 들은 이미 상당히 부를 축척하고 있었고 귀족이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또한 직업의 특성상 사체를 보관하고 매장하는 일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연고 사체를 해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이렇게 익히 의학적 지식은 병이나 부상을 치유하고 약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여 이 들은 대대로  병 의원과 약국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또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회개(?)와 반성(신앙적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에 애를 썼다그리고 천대 받던 다른 사형집행인들의 지원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상송 집안은 1대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신실한 삶을 살았다죄를 짓고 죽어야 하는 사형수이지만 집행을 하는 순간까지 사형수의 권리를 지키고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이런 이유로 사형집행인이라는 천대받는 일을 했지만 오히려 존경 받았던 것이다.

상송이 주목 받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프랑스 혁명과 맞불려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루이 16세를 처형에 참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그리고 최초로 상송 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소개한 작가인 뒤마가 상송’ 집안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뒤마는 프랑스 혁명단두대(기요틴)과 관련한 저서에서 상송가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상송의 회고록


사형 집행인이 본 프랑스혁명’ 이라는 주제의 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송가에 전해지는 회고록 덕분이었다.상송 가는 사형집행에 대한 기록과 의술에 대한 정보를 후대의 전하기 위해 대를 이어 회고록을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었다.이 회고록은 그 진위나 가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기는 했지만 후대 작가들과 학자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기에 이제는 그 가치에 대해 부정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사형인의 기록으로 본 프랑스 혁명


이 책, ‘왕의 목을 친 남자은 상송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팩션이다책의 전체 흐름은 앙리상송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며 세부적인 상황과 책의 서두와 결론 부분의 내용들을 저자가 재 구성하였다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믿을 필요는 없다특히 루이 16세에 대한 보통과는 다른 긍정적인 평가는 앙리 상송의 개인적인 평가에 기반한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들었던 부분은 프랑스혁명 전후의 사건들을 별 부담 없이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워야 할 것들을 교과서 보다는 훨씬 깊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고 재미까지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혁명이라는 사건 가운데에 던져진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면서 역사 속의 프랑스혁명이 아니 나도 겪을 수 있는 좀더 생생한 프랑스 혁명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의 기록은 승리자를 위해 씌어지지만 삶의 역사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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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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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산다나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살펴봐야 알 수 있는 존재인데 그럴 시간을 못 내고 외부의 요인들(지위남의 평가 같은 것들.)로 나를 정의하려고 한다진짜 나는 내 자신만이 아는 것인데도 말이다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게 된다정작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자신 스스로인데 남을 통해 정의하려니 상처를 많이 받는다타인들이 보는 나는 피상적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평가는 일시적이거나 박하기 마련인데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다 보니 늘 상 외부로부터 오는 상처를 앓는다.

 




자존 감의 시대


요즘처럼 인간이 물성화되고 개인이 객체화 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를 세우는 자존 감이 매우 중요하다나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름이 뭐라는 남자이런 일을 하고 어떤 회사의 과장이런 식으로 인지된다클래식을 좋아하고 주말마다 아이와 외출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등의 지극히 개인적은 것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으며 알려는 생각을 했어도 시간이 없어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어떤 일을 해서 매출을 올리거나 어떤 사고를 쳐서 재판을 받는다 등의 사실만이 중요하다이것은 새로 출시하는 고성능 스포츠카나 세련된 디자인의 신상 구두에 대한 관심과 다르지 않다.


내 스스로를 세우지 않으면 나는 그냥 2010대한민국을 사는 5000여명의 사람 중에 하나 일뿐이다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 다가가기


나를 알고자 한다면 세상의 번잡한 것들을 잠시 잠깐 내려두고 마치 가만히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늘 하던 업무는 물론이고 짬짬이 즐기는 오락거리도 내려 두어야 한다때로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 얼마간의 짬을 내어서 늘 잠잠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묵상’, ‘수행’, ‘큐티(?)’, ‘’ 이라 물리는 것들을 해도 좋고 생각을 정화해 줄 만한 잔잔한 수필음악이나 시를 음미해 보거나 좋은 그림으로 눈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도 좋다무엇이든 간에 정신을 한군데 몰아서 나를 나에게 묶어 둘 방법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등을 정리해보고 내가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나의 가치관에 맞는 삶을 사는가를 생각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당장에는 실천 가능성이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이미 오래된 습관으로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도 있을 것이다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쉽게 고쳐질 것이면 이렇게 오래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인지했고 앞으로 오랜 기간 개선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방해꾼들


하지만 오늘날은 우리에게 이런 소박한 사치(?)를 인정하지 않는다출근하지 않는 날이라도 나를 자극하는 여러 유혹이 존재한다남이 만든 일정한 패턴에 의해 수행되는 오락거리 (특히, TV, 비디오게임들은 너무나 널려있어 피하기 어렵다또 남에 대한 필요이상의 관심은 인터넷 서핑채팅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새로운 방법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은 남의 대한 필요 이상의 관심으로 생겨남 어떤 공간(서비스)으로 인해 아이러니 하게도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콘텍스트 들이 인터넷에 많다는 점이다찾아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찾아보고 묵상해 볼 수 있다특히 트워터’ 처럼 가볍지 않은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공간은 상업적으로 왜곡된 콘텍스트가 난무하는 다른 인터넷 공간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곳이다.

혜민도 이곳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는 그저 소소한 생각들을 공개한 것이지만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되었다이 책은 그런 선한 일들의 결과를 묶여 나오게 되었다.





모음집의 특성상 글마다 편집 기술(방법레이아웃?)은 늘 생각의 흐름을 방해한다같은 주제를 일정한 흐름이 되도록 묶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끊긴다그리고 책값이 좀 비싸다삽입된 그림들을 위해 부분 컬러 인쇄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책값을 부추겼을 것이다이것은 아쉬운 점이다그림 자체는 훌륭하다글과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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